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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육아휴직

by 미세스 박

"엄마는 휴직 들어가면 가장 먼저 뭘 할 거야?"


며칠 전 잠들기 전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된 민서의 질문


"글쎄."


"너희들 학교 보내고 탄천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좋아하는 커피 한 잔 테이크 아웃해 와서 거실에서 햇살 받으면서 커피 마실래."


둘째 민지를 가지고 키우기 위해 했었던 육아휴직 3년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간 회사는 얼마나 낯설고 많이 변해있었는지 모른다.


복직 후 새로 발령받은 부서였던 양평광주서울지사에서 4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회사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사표도 냈었고, 3일 만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다시 나가기도 했었다.


100km 왕복 출퇴근길은 매일 무섭고 두려웠고, 몸과 마음이 힘든 날이면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퇴직 때까지 변함없을 주말부부 생활은 여전했고, 이로 인하여 주중에 함께 지내는 엄마, 아빠에게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그리고 남편에게는 남편의 책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잘 커주었고, 엄마 아빠도 크게 아픈 곳이 없었고, 남편과 나도 부딪히기는 해도 이혼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작년에 승진도 동시에 하게 되었다.


"차장님, 휴직을 하는 이유가 뭐예요?"


얼마 전 나의 가장 소중하고 특별한 동료인 최 과장님께서 물어보셨다.


"둘째가 이번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잖아요."


"아니 진짜 이유요."


"사실은 너무 지쳤어요. 보시면 아시다시피 저는 모든 면에서 조절을 잘 못해요. 일도 사람도 대할 때 시간과 에너지, 돈을 너무 써요."


"그래서 이쯤에서 잠시 컷 하고 쉬어야 해요. 멈추는 법도 모르고 너무 달렸어요."


"네." "그런데 쉬지 않고 계속 달리는 저 같은 사람도 있어요."


"네. 너무 안타까워요. 과장님도 기회가 되시면 꼭 쉬셨으면 좋겠어요."


치열하고, 숨 가빴던, 그리고 넘치게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비록 아플 때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행복했었던 양평에서의 회사생활을 잠시 STOP 하고 회사원이라는 옷을 벗어낸 나로 돌아가려고 한다.


어떻게 시작되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몇 개월 전부터 수시로 하고 있었는데, 브런치가 답이었고 사실 알고 있었다.


조금 그리고 살금 나와 당신이 느끼지 못하게 스며들어가 보려고 한다.


회사를 떠나지만 회사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기도, 엄마 글에 내 그림을 콜라보하고 싶기도, 진한 불륜 소설을 써보고 싶기도, 유튜브를 해보고 싶기도 하다.


회사에 잡혀있었던 나의 시간들을 멋지게 잘 해방시켜 주고 싶다.


이 와중에 선미 언니의 말이 또 뇌리에 스친다.


"옥아. 제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좀 쉬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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