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돌팔이 글쟁이 시점 영화 vol.3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였다.
검은 장막 위로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삐걱거리는 의자에서 일어나 터벅터벅 계단을 향해 내려갔다. 가끔 오르내리던 계단인데, 오늘따라 전혀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
암막 커튼으로 무장된 출입구가 열리자, 그 따스한 햇볕 아래 나의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이 열린다.
“집합! 1중대 1구대 기준! 사열종대 해쳐 모여!”
나는 군인이었다.
그리고 다시 군대였다.
강인한 훈련으로 몸과 마음이 단련된, 당장이라도 북으로 보내준다면 김정일—요즘 기준으로는 김정은—의 목이라도 따올 수 있을 것만 같던 3주 차 훈련병이었다.
약 두 시간 동안 꿈을 꾼 것 같았다.
인생을 통틀어 이토록 몰입해서 본 영화는 처음이었다. 어둠이 걷히기 전까지, 나비가 군인의 꿈을 꾼 것인지 군인이 나비의 꿈을 꾼 것인지 헷갈리는, 호접몽과 같은 상태였다.
나는 아직도 그 영화를 잊지 못한다.
더 록(The Rock)
1996년 개봉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이 영화를,
훈련소라는 기묘한 장소에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알카트라즈 교도소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약 2.4km 떨어진 바위섬에 세워진 곳이다.
남북전쟁 당시 군사 교도소로 사용되었고, 이후 연방정부 교도소로 29년간 운영되다 현재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사방이 거센 파도로 둘러싸인 이 요새에서는 수차례 탈옥 시도가 있었지만, 성공으로 기록된 사례는 단 한 번뿐이며 그마저도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참고로, 당시 내가 머물던 훈련소 역시 그 감옥 못지않게 혹독했다는 사실을 살포시 흘려 독자들의 동정심을 유발해 본다.)
영화는 이런 난공불락의 공간에서, 도심을 향해 테러를 시도하는 해병대 장군과 이를 저지하려는 정부 요원들의 사투를 그린다.
그 안에는 수많은 군인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당시 내 눈에는 모두 같은 군인으로 보였다.
‘저 사람도 유격 훈련 했겠지?’
‘화생방도 받았으려나?’
‘미국 군인은 “다”나 “까” 안 쓰나?’
그 당시의 처지와 동화되어서였을까.
그들이 묘하게 불쌍해 보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생화학 무기 전문가 니콜라스 케이지와 늙은 첩보원 숀 코넬리였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정한 히로인을 한 명만 꼽자면, 단연 해병대 장군 역의 에드 해리스일 것이다.
그는 전형적인 악당이 아니다.
부하를 소모품처럼 버리는 국가 시스템에 환멸을 느낀 군인이다. 영화의 초반, 전투 중 고립된 해병대원들이 지원 요청을 하지만 끝내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한 채 몰살당하고, 이어 장군이 그들의 묘지를 찾는 장면은 그가 테러의 명분을 얻게 되는 결정적 순간이 된다.
그가 알카트라즈를 점거하고 미사일로 도시를 겨누는 이유는 파괴가 아니라, 죽은 부하들에 대한 보상이자 시스템에 대한 항의였다.
이른바 ‘선한 악역’이라는 표현은, 이 영화에서 유난히 잘 어울린다.
그의 심리 변화는 네이비 실(NAVY SEAL)이 알카트라즈에 침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샤워장 전투 신을 통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수많은 전쟁 영화가 화려한 액션을 앞세우지만, 군인의 복종과 헌신, 그리고 전우애를 이토록 비극적으로 그려낸 장면은 흔치 않다.
침투에 실패한 실 팀을 포위한 해병대 장군은 의미 없는 희생은 필요 없다며 항복을 권유한다. 그러나 실 팀 역시 군인에게 후퇴란 없다는 신념으로 맞선다.
수비하는 쪽보다 공격하는 쪽이 훨씬 불리하다는 사실은, 어느 고지전이나 마찬가지다. 샤워장 아래에 고립된 실 팀과 위층을 점거한 해병대의 대치는, 시작부터 이미 결말이 정해진 싸움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총격과 죽음.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뒤에도, 사지임을 알면서 계단을 올라가는 군인의 모습에서 군인이었던 나의 동질감은 극에 달했다.
그 장면 이후, 이 영화는 더 이상 단순한 액션 영화로 보이지 않았다.
총알보다 무거운 것은 명령이었고, 폭발보다 치명적인 것은 복종이었다.
아마 이 영화를 상영했던 당시의 훈육관들 역시, 군인이 가져야 할 덕목을 이 장면에서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총알이 빗발치고 자신의 죽음을 예견할 수 있는 자리로, 단지 동료가 그곳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함께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라면 모르겠다.
아내와 아이, 부모님께 먼저 묻지 않을까.
“나 가도 돼?”라고.
하지만 20대의 나라면 또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객기’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20대 남자들에겐 가족도 사랑도 모두 내려놓고서라도 지켜야 한다고 믿는 ‘의리’ 하나쯤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젊은 남자들을 군대로 보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그 사건 이후, 장군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해군 십자장을 비롯한 훈장을 달고 있던 전쟁 영웅이자, 해병대의 존경을 받는 베테랑 지휘관으로서 그는 부하의 생명만큼 타인의 생명도 존중했을 것이다. 미사일로 정부를 겁박할 수는 있었지만, 실제로 발사해 무고한 생명을 해칠 마음은 애초에 없었던 듯하다.
이 영화는 《지옥의 묵시록》(1979)이나 《플래툰》(1986) 같은 전쟁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의 한 전투 신에 이토록 많은 감정을 할애한 이유는, 그 안에서 군인 정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임전무퇴, 살신성인 같은 단어를 빼면 이 영화는 완전한 오락 영화가 된다. 늙은 첩보원과 어설픈 생화학 무기 전문가의 조합은 그 사실을 분명히 증명한다.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이 던지는 대사가 있다.
“케네디를 누가 죽였는지 알아?”
전직 영국 SAS 특수요원이자, FBI의 특급 비밀이 담긴 마이크로필름을 탈취한 죄로 재판도 판결도 없이 평생을 갇혀야 했던 늙은 첩보원. 그는 미국 대통령의 죽음에 관한 정보까지 담겨 있던 필름의 위치를 생화학 전문가에게 알려준다.
두 사람은 요새 같은 알카트라즈를 침투해야 하는 실 팀의 길 안내자와, 미사일을 해체해야 하는 전문가로 처음 만난다. 실 팀이 몰살당한 후, 이 두 민간인은 좌충우돌하며 미사일을 하나씩 해체해 나가고, 그 과정에서 싹튼 우정은 늙은 첩보원에게 자유를, 전문가에게는 임무 완수라는 결과를 안겨준다.
사실 늙은 첩보원은 혼자 도망칠 기회가 있었다.
수십 년을 갇혀 있던 그에게 자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유 대신 미사일 해체를 선택한다. 미사일이 향한 도시에 딸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의 도심 추격신 역시, 그가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결국 딸의 얼굴 앞에서 멈춰 서는 장면이다. 미사일의 목표를 알게 된 그는, 누구보다 절박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해체 작업에 나선다.
영화는 곳곳에 기억에 남는 장면과 소품을 숨겨 놓았다.
먹음직스러운 초록색 구슬로 표현된 VX 가스는 이후 대중매체에서 생화학 무기를 형상화하는 전형이 되었다. 이 영화가 남긴 이미지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모든 이야기를 정리하며, 나에게 이 영화는 애증의 대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군인이 정의롭지만, 동시에 또 다른 시선에서는 정의롭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군 생활 동안 이 영화와 함께 깨달아 갔다.
덧붙임.
생화학 무기 전문가로 출연한 니콜라스 케이지는, 조만간 《패밀리 맨》으로 내 맘대로 평론을 써야겠다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남긴 채, 영화 속 그의 역할에 대한 설명을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