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일째 글을 못 쓰고 있었다. 업무가 바쁘다는 핑계로, 잠을 못 자 뒤엉킨 감정들을 다스린다는 핑계로, 각종 핑계들은 끝도 없이 만들어졌고, 돌파구가 될 만한 글감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되레 쓰고 싶은 글의 주제는 괜스레 겁이 나서 쓰지도 못하고 있다. 이건 나만의 단점일 텐데, 비슷한 주제로 쓰인 타인의 훌륭한 글을 읽고 나면 짧은 지식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인지 썼던 글도 초라해 보이고, 쓰려던 글도 ‘과연 내가 이런 글을 풀어내도 될까’ 하는 소심해진 마음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이런저런 글이라도 일단 써보려고 한다. 나는 돌파구가 필요하니까.
‘마중물’
어릴 적 시골 외갓집에 가면 마당 한켠에 수동 펌프식 양수기가 있었다. 작두펌프라고도 불렸는데, 손잡이가 작두와 비슷해서일 것이다. 그 수동 펌프는 파이프가 아래 우물물에 담겨 있어 펌프질을 해야 물이 올라오는 구조였다. 그러나 작두펌프는 그냥 물을 끌어 올리지는 못했다. 평소에는 파이프가 비어있었기 때문에 한 바가지 정도의 마중물을 부어주어야 파이프에 물이 차고 밀도가 높아지면 아래의 우물물이 끌려 올라오는 구조였다.
글쓰기도 비슷한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중물과 같은 실마리가 있어야 마음 아래에 담겨있던 감정들이 길어 올려지곤 한다. 지금은 그 마중물을 붓고 있다.
... 그 마중물을 채웠는데도 적당한 글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죽어야 하나?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합니다.
본성을 버릴 수 없다는 뜻과 오래된 습관은 쉽게 바뀌지 못한다는 중의적 표현으로 저는 해석합니다.
요즘 들어 열심히 글을 쓰다 보니, 결국 제 마음에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이유도 그 바람에 정신이 팔린 탓도 있습니다. 그리고 벌써 한 회 정도의 분량과 주인공이 손주까지 보는 스토리 전개가 끝나버렸습니다. 하하하.
...이러다 또 제 글에 실망하고 좌절하고 싶지 않은데 큰일입니다.
콩깍지가 씌었다고 하지요. 저도 글을 쓰는 동안은 콩깍지가 씌곤 합니다.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냉정해져야 하는 시간이 돌아와 제 글을 보게 되면, 그렇게 유치 찬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는 자신 없어하지요.
그래도 일단 써 봐야겠지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흘러가 보려 합니다. 차후에 소개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여기에 살포시 올려보겠습니다.
이 글이 또 다른 마중물이 되길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