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사기는 향기를 남기고
우리 마나님 입장에서야
“사기당한 사람이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라고 구박할 수도 있겠지만, 억울함이라는 게 한처럼 서려 있는데,
말이라도 실컷 풀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하며, 이미 끝난 것 같던 지난 이야기를
세포 단위까지 파헤쳐서,
다시는 이런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주입식 교육 멘트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 본다.
나는 유튜브 채널을 구상 중이었다.
성격상 MBTI의 ‘I’와 ‘E’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애매한 포지션을 가진 나는,
누구에게도 과하지 않은 말상대였고
너무 멀리 소외되지 않는
인공위성 같은 관계를 지향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위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고 느꼈다.
(죽음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제는 결혼식보다 장례식을 더 많이 다니는 것으로 그 사유를 갈음한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또 풀어보자.)
아무튼,
가까웠든, 원수처럼 눈빛만 교환하는 사이였든
대화 상대가 줄어들고 있다는 건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일터에서도 내 나이는 결코 적지 않다.
직급도 짬밥만큼 차 있는지라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전처럼 편하지 않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대화를 시작하다 보면 그들의 불편한 행동이 보인다.
‘이 어르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
또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더 설명해야지!’
같은 결의에 찬 손짓과 발짓 말이다.
너무 장황했으니 짧게 정리하자면,
주위에 편하게 대화를 이어갈 상대가 없다는 뜻이다.
아… 이렇게 말하니
왕따라고 선언하는 것 같다.
아니다. 나 왕따 아니다.
다만 조금 까탈스럽고,
조금 예민하고,
조금…
혓바닥이 길어지는 걸 보니
왕따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또 아무튼, 나는 새로운 대상이 필요했다.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고,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유튜브였다.
너무 편리한 세상이었다.
누구나 1인 방송국을 꿈꿀 수 있는 세상이라고
어느 카피라이터의 문구에서 본 것 같다.
우리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기계를 제법 다룰 줄 안다.
어릴 적 십자도라이바로
라디오도 뜯어봤다.
이러면 꽤나 준수한 손재주 아닌가?
그 라디오가 정상 작동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차치하고 말이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는 일은
라디오를 뜯는 것만큼 복잡하지도 않았다.
십자도라이바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화면을 몇 번 두드리면
간단히 나만의 세계가 열렸다.
콘텐츠 주제 선정은 더 간단했다.
내가 가장 많이 보는 채널을
알고리즘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내 화면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건 정치였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면서
가장 무식한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여의도에는
사람 수만큼 카메라와 마이크가 있었고,
그곳의 이야기는 액션, 멜로, 추리물까지
모든 장르를 망라하는 환상의 세계였다.
이야기의 놀이공원 같은 이 세계에는
그 이야기를 전하기 바쁜 사람들도 즐비했다.
하지만 하나같이 앵무새처럼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을 따라 할 뿐,
그 속에 깊이 박혀 있는 그들의 위대한
속뜻을 파악하고
널리 사람을 이롭게 퍼뜨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나서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사명감이 확실하다.
나는 그들보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뛰어나고,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 있는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왕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대화 상대가 필요했다.
여기에 MBTI의 ‘I’,
즉 내향적 성향도 한몫했다.
얼굴을 보지 않고
글로만, 혹은 목소리로만 대화한다니
참 좋지 아니한가.
그렇게 나는 유튜브의 세상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유튜브는
쉽사리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나는 준수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진짜다. 믿어주라.
나는 그 목소리로 사람들을
현혹… 아니, 믿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목소리만 나가면
모든 신도가 나를 찬양하며 두 손 모아
다음 설교를 기다릴 거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화면 따위야, 자막이나 효과 같은 것들이야
대충 만들어
내 목소리만 얹으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대충’이 참 힘들었다.
분명 내 목소리면 되는데,
왜 이놈의 화면 구성이 안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인터넷과 유튜브를 뒤져본다.
그러다 적당한 해결책이 담긴 콘텐츠를 발견한다.
유튜브 콘텐츠 제작 강의였다.
신세계였다.
썸네일, 초반 훅(Hook) 같은 개념은
처음 접하는 신문물이었다.
하나하나 따라 해 보니
무언가가 만들어졌다.
어릴 적 완성 직전에 부러졌던
라디오 안테나가
덜렁거리면서도 주파수를 잡아내던 것처럼,
일단은 그럴싸한 콘텐츠 하나가 완성됐다.
당연하지만 반응이 있을 리는 없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인터넷을 검색한다.
그러다 또 다른 강의 콘텐츠를 발견했다.
이번에도 또 다른 신세계가 열렸다.
단, 만 원짜리 신세계였다.
강사는 라이브 방송도 했고,
그 방송을 유료 콘텐츠로 만들어
만 원에 다시 보기를 제공하고 있었다.
콘텐츠의 열기와 강사의 열성은 대단했다.
다른 강의에서 알려주지 않던
약간의 꼼수 같은 기술도
과감하게 오픈했다.
그리고 오프라인 강의까지 권유했다.
나는 궁금해졌다.
만 원짜리 강의에서 이 정도라면,
30만 원짜리 강의는 얼마나 대단할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결제했다.
결제하고 나니 걱정이 밀려온다.
돈은 내 용돈으로 충당한다지만,
늘 일을 저질러 놓고
나중에 수습한다고 타박하던
마나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큰일 났다.
그제야 강의 시간과 장소를 확인한다.
제목: 유튜브 어쩌구, 나도 할 수 저쩌구
장소: 수도권 어딘가
일자: 일요일
시간: 오후 6시
애매한 일자와 시간이다.
지방에 사는 나는
점심 무렵에는 출발해야 한다.
마나님이 모를 수 없는 일정이다.
하루 맞아 죽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말을 던진다.
“나 이러이러한 강의가 있는데,
배워보고 싶어서… 갔다 와도 될까?”
반응은 예상보다 심플했다.
“그래? 갔다 와.”
하늘의 계시인가?
올해 10년 대운이 풀렸나?
미심쩍은 찝찝함은
잘 나가는 내 운수를
질투심으로 방해하려는
내 정직한 마음 탓이라 치부해 버린다.
사실 이번 강의에서 배운 방법들은
그리 정직한 기술은 아니었다.
알고리즘의 약점을 파고든
편법에 가까웠다.
크게 위법하지는 않지만,
그리 깔끔한 방법도 아니었다.
강의 하루 전까지
결제를 취소하고 가지 말까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론은!
내가 무슨 고결하고 순결한
천손의 자식도 아니고,
법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이 필요해서 만든 규칙인데
조금 벗어났다고 누가 뭐라 하겠어?
자기 합리화 끝내준다.
그렇게
나의 편법 기술이 하나 더 늘어가리라
다짐하며 강의에 참석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