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라 쓰고 사기라 읽는다
서울은 무서운 곳이다.
누군가 눈을 살짝 감은 사이
코가 베여 갔다는 흉흉한 이야기가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는,
고담시티와 맞먹는 장소다.
나는 그곳을 향해 떠난다.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
간단한 유서 작성을…
죄송합니다. 너무 나갔습니다.
인구 천만의 도시, 서울.
예전에 같이 근무하던 어떤 이가 말했다.
“나는 여기서 일하면서
서울을 처음 벗어나 봤는데,
이곳(지방)까지 오면서 논을 처음 봤잖아.”
농담 아니다. 진짜 이렇게 말했다.
물론 20대 초반에 만났던 인연이라,
그 또한 20대 초반에 서울을 처음 벗어나
신기한 지방살이에 대한
소회 정도였겠지만, 나 또한 신기한 경험이었다.
‘논을, 벼를 처음 봤다니.
쌀나무에서 자라는 쌀은 봤을까?’
서울은 커다란 빌딩만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찾아가는 장소에 가까워질수록
빌딩은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 결국 3~4층짜리 연립주택 단지를 배회하게 되었다.
번쩍이는 도심과 달리
이곳에는 삐쩍 마른 가로등 몇 개만이
어두워지는 골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곳에 강의실이 있다고?’
의구심과 함께 뱃속의 장기를 하나하나 점검하며
휴대폰의 비상 호출 버튼을 미리 확인한다.
‘중국으로만 끌려가지 않으면 된다…
유서를 미리 써야…’
죄송합니다.
이야기가 자꾸 산으로 가며,
재미있게 각색하려는 이유는
그날의 기억이
그만큼 신기하고 진기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강의실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연립주택 사이로
화사한 하얀색 건물이 딱 하나 서 있었다.
주변과 대비되는 전면 유리창은
그 안을 훤히 내비쳐주고
깨꼬롬한 소파와 간단한 칸막이 등
전형적인 비즈니스 사무 공간으로 보였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도 밝고 깔끔했다.
계단참에서 이미
강의실 내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닫힌 듯 열려 있는 공간이었다.
층고도 높았고,
하얀 도색과 인테리어 소품까지
깔끔하게 치장된 강의실이었다
일찍 도착한 덕에
한두 사람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만 보일 뿐
전반적인 분위기는 한적했다.
계단과 강의실을 구분하는 벽과 문 역시
전면 유리였다.
문을 살짝 열자
강의실을 정리하던 젊은 남자가
“강의 들으러 오셨어요?” 하고
화사한 얼굴로 묻는다.
천사의 표정이었다.
그는 자리로 안내하며 줄곧 미소를 보였지만,
대화를 길게 이어가지는 않았다
곧 자신의 일로 돌아갔다.
한 시간가량을 기다리며
드문드문 들어오는 사람들,
명단을 확인하고
자리를 안내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리를 찾아 앉는 사람들에게 짧은 인사를 나누던
천사표 얼굴의 젊은 남자는
이윽고 강의 준비에 들어갔다.
Part 1. 강사
육사를 나왔다고 했다.
키는 165cm 정도였고,
악수하는 손이 참 고왔다.
대위 전역을 했다고 한다.
갸름한 얼굴이
군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사 시절 차석으로 졸업했다고 했다.
나중에 내가 하는 일을 밝힐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사관생도의 생활사를 조금은 알고 있다.
상위권 사관생도들이
대위 전역을 선택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하지만 그의 가정사를 들었을 때
조금은 이해가 갔다.
아이가 아팠다고 했다.
간 이식 수술이 필요했고,
자신의 간을 떼어주는 바람에
전역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나중에 마나님과 입을 맞추며 되돌아본 거지만,
군이 아무리 냉정한 조직이라 해도
아픈 가족을 돌봐야 하는 장교를
그렇게 쉽게 내치지는 않는다.
간 이식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이미 모금 운동부터 시작됐을 것이고,
아이가 치료받는 동안
안정적인 군 생활을 돕는 게
상식적인 흐름이다.
사관생도 출신이라면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
이 녀석은 초반부터 장난질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몰랐다.
Part 2. 강의 내용
유튜브는 3년 정도 전에 시작했다고 했다.
전역 직후 시작했고,
6개월을 헤맨 뒤
1년 차부터 유의미한 수입이 생겼다고 했다.
이후로는
자신의 치적과 자랑을
구독자 수만큼 늘어놓았다.
무엇이 켕겼는지
채널명 등 주요 정보는 가린 채
구독자 수만 보이는
여러 개의 채널 화면을 띄웠다.
10만에서 100만 사이의 채널들이었다.
채널 하나당
월 100만 원에서
3~400만 원이 나온다는 자랑은 덤이었다.
버린 채널도 몇 개 있는데
월 20~30만 원 용돈벌이만 하고 있다는
여유 섞인 멘트도 덧붙였다.
수강생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 탄식을 기다렸다는 듯
강사는 말했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가능한 일입니다.
강의만 잘 듣고
그대로 따라오시면 됩니다.”
순간, 안도와 환희가 강의실을 휘감았다.
Part 3. 강의 내용 II
지금은 AI의 시대라고 했다.
곧 AI가 글을 쓰고,
촬영하고,
편집까지 일사천리로 해줄 것이고
우리는 간단히 엔터키만 누르면 될 것이라,
얼리버드가
먹이를 많이 먹는 법이라며
지금 실행해야 한다고 했다.
여러분은 행운아라고도 했다.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기억이 조금 몽롱하다.
그 녀석,
구미호는 아니었을까?
아니다. 그 순간만큼은
천사가 맞다.
딱 한 번 정신이 살짝 돌아왔던 기억이 있는데,
다음 강의와 컨설팅을
15,000,000 원에 소개했을 때였다.
나는 ‘0’의 개수를 세느라 바빴다.
처음엔 150만 원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정확히 1,500만 원이었다.
그리고
450만 원까지 할인해 주겠다는
속삭임이 들렸다.
1,500만 원은 실망스러웠고,
450만 원에서는
약간의 안도감이 생겼다.
그리고 바로
강사의 말이 이어졌다.
“여러분은 저의 강의 1기생입니다.
그래서 조금 더 할인해 드리겠습니다.”
스크린 속 금액은
390만 원으로 바뀌었고,
10회의 컨설팅은
‘무제한’이 되었다.
지금은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그때의 나는
폭풍 한가운데 서서
천둥과 번개, 바람을 맞이하는 심정이었다.
Part 4. 강의라 쓰고, 사기라 읽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스피커폰 너머로
반가운 마나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대화는 이어진다.
1분, 2분…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를 2차선으로,
규정 속도에 맞춰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간다.
5분, 10분…
대화가 길어질수록
밝고 확신에 차 있던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천상의 합창단 같던 내 목소리를
단번에 줄여버린
마나님의 첫마디는 이거였다.
“오빠~!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내 마음은
이 한마디로 정리된 것 같다.
나도 의심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군중심리,
그 분위기에 휩쓸려 다녔고
마음이 동했을 것이다.
초반에 내가 설명했던 이야기들을
항목별로 조목조목 반박하는
마나님의 목소리에
내 대답은,
“네… 그렇지… 그치…” 정도였다.
그것도 힘없는 목소리로.
내가 마나님을 만나고,
사랑하고,
20년 가까이 순종적으로 모시고 있는 건,
그녀의 미모와 지성이 아니다.
아이들을 끔찍이 여기는 모성도 아니고,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는 효심도 아니다.
나는 그녀와의 대화에서
평화를 얻는다.
정돈되지 않아
엉켜 있는 내 머릿속 의식들을
종류별 혹은 가나다순으로 정리해
꽂아 넣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나는 안정을 찾는다.
(위의 ‘아니다’는 반어법이다. 반어법!
쓰고 나니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결론을 지을 시간이다.
특별한 이벤트 없이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온 내 인생에
이번 경험은
어두웠다 하여도
삶에 작은 활력소 같은 것은 되었다.
이 이야기로
몇 편은 더 쓸 수 있겠지만, 이야기 성격상
말이 길어질수록
내 얼굴에 침 뱉기만
계속되는지라 그만하려고 한다.
이번 일을 겪고
나는 사람을 조금 더
유심히 보게 되었다.
손이 부드러웠던 녀석이
군인이었다 칭했을 때,
나는 이미 이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을 돕는 팀원이 많다고 했을 때,
당장 강단에 혼자 서 있던
그 녀석의 사정이 궁금했어야 했다.
그렇게 조금만 더
세상을 천천히 바라본다면,
거짓은 걷히고
진실만 남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마나님의 눈을 빌려 그 진실을 보았지만,
다음부터는
내 눈에 초점을 더 맞춰보겠다는
다짐으로 이야기를 마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