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6일 어느 겨울
대학교 2학년 마지막 수업과 함께 겨울방학 시작. 기말고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바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나 수능 끝난 날 대학 가면 외국에서 1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했잖아.
나 내년에 갈래, 스페인."
아빠는 그때 "그래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지" 딱 한 마디 남기고 쿨하게 전화를 끊었다. 언제나 여행 기행 프로그램을 보며, 여행계에서 일정 돈이 모이면 엄마와 여행을 갔던 아빠는 어쩌면 세계를 돌아다니는 자신의 평생 소망을 나에게 선물했을지도 모른다. 스페인에대한 내 평생 첫 기억은 11살 텔레비전 속에서 날아다니는 스페인 토마토와 인간탑쌓기였다. '와! e - 멋진 세상', 뭐 저런 신기한 축제가 다있지? 재밌을까? 라고 생각한 나의 당시 느낌이 항상 남아있었다(10여 년 뒤 토마토 축제에 갔지만 이미지와 현실은 달랐다.).
그렇게 2011년 3월 연고도 없는 유럽 땅에 나 혼자 갔다.
2011년 3월 출국 날
인천공항에 엄마와 큰언니가 배웅 나왔다. 막 들어갈 무렵 작은 언니가 일을 마치고 왔다. 나는 울고 있는 엄마를 꽉 껴안고 돌아섰다. 돌아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입국장으로 들어가며 펑펑 울었다는 것을 아직도 가족들은 모른다. 당시 나는 눈을 뜨면 '1년이 지나 다시 한국에 돌아오는 날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대담한 척했지만 사실 설레면서도 혼자 해외에서 산다는 게 두려웠다.
2020년 3월
그 후 삼십 대가 된 현재의 내가 "엄마, 나 해외에서 일하면 어떨 거 같아"라고 묻자 사실 그때 막내딸을 혼자 유럽에 보내 놓고 엄마는 하루도 편히 못 잤다고 했다. 아빠는 친척들과 술을 마시다 "그때 혼자 떠난 쟤는 내가 봐도 참 멋진 '여성'이야"라고 했다. 아빠가 '내 딸'이 아니라 나를 '여성'이라고 지칭한 게 사는 내내 큰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