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리 Mar 14. 2020

옷이 날개다

매년 3월 세탁소로 가야하는 귀찮음은 언제쯤 설렘이 될까요.

각 잡고 화장하고 차려입고 나가야 하는 날은 나오자마자 집에 들어가는 상상을 한다. 


화장하고 옷을 관리하고 다려 입는 그 시간 자체가 하나의 추가 스케줄이니 외출하자마자 피곤하다. 그냥  편한 옷에 외투 하나 걸치고 나오는 날은 이리저리 비비다 집에 들어가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귀가 시간이 점점 늦춰진다. 내게 옷의 편안함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적당하게 편한 옷과 적당하게 격식 차린 옷을 입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생각하며 통번역을 고른 게 3순위 이유쯤은 될 거다. 몸도 기분도 훨훨. 옷이 '날개'다.


정장보다는 운동복에 눈이 뒤집어지고, 일할 때 입는 옷은 같은 디자인 블라우스를 5가지 색상- 블랙, 화이트, 버건디, 네이비, 인디핑크- 으로 돌려 막으며 옷을 사는 시간, 고르는 시간마저 단축한다. 심지어 이 5벌은 얼마 전 운동 브랜드에서 구매한 레몬 바지 하나보다 싸게 샀다. 저렴한 블라우스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내 기준에 바지가 비싸기도 했다. 처음엔 '무슨 운동복 바지가 이렇게 비싸'하다가 결국 그런 류의 바지를 365일 중 100일 정도 입었으니 누구보다 옷장에서 열 일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오늘도 값비싼 바지를 위한 자기 합리화) 내 옷장에서 가장 비싼 코트가 햇빛을 본 횟수는 연간 5회 미만으로, 감가상각 연 수만 까먹고 있다. 경조사용 원피스 또한 한 두벌. 집에 놀러 와 나의  신발장을 보게 된 친구는 "너도 지네구나"라고 한 마디 했는데 그 안에 구두는 고작 2켤레다. 물론 편안함을 추구하는 데 불편한 사실도 있다. 그 '각'을 멀리할수록, 한참 지나서야 '아 나 살쪘구나' 한다. 사실 그 '각'도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옷차림이 후리하다고 해서 상대방을 후리하게 대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 후리한 응대에 상처 받아 스스로 초라하다고 생각하는 건 더더욱 금물.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백석 시인의 시 한 구절처럼 이렇게 초라하지 않은 생각으로 살아가 보자. 이 옷을 입고 결혼식, 장례식에 가도 될지, 지나친 자가 검열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단정하게 입으면 된다. 사실 자리에 참석해 온기를 더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이렇게 힘든 시기일수록 절실하게 느낀다. 상황에 맞는 옷이 중요한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어떤 경우는 별게 별것이 아닐 수도 있다. 



마스크 뒤 가려진 얼굴은 숨을 제대로 못 쉬어 답답하기도 하지만 약간의 해방감에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화장은 자기 개성 표현이 아닌 예의가 되었을까. 아직도 매니큐어 바른 남성을 보며 어색함을 느끼는 나는 언제부터 누가 만든지도 모르는 이 틀 안에서 '적어도' 깨어있고 싶다. 틀을 깨고 나올 수 있을지는 사실 모르겠다. 이렇게 사소한 틀에서 깨어있다 보면 언젠간 서로 손잡고 함께 틀을 깰 수 있지 않을까. 



세탁소에서만 세탁소에 의해서만 관리해야 하는 경조사 원피스를 언제 맡겨야 하나 7일째 고민하다 이 글을 쓴다. 1년 내내 고생한 건 룰루 바지인데 1년 10차례도 안 입은 경조사 원피스는 세탁소에 가서 거금 내고 귀한 대접받고 나오니 조금 억울한 생각도 들지만 이 옷이 결국 나를 다시 귀한 곳으로 데려다주는 세상 아이러니. 어떻게든 '옷'이 날개다.



작가의 이전글 그렇게 스페인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