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그렇게 다시 어떻게든 온다.
처음 나를 위해 꽃을 산 건 19살 때였다.
입시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고등학생이 되었고 몇 달에 한 번씩 모의고사를 보고 나면 왜 그리 힘이 빠지던지. 하루 종일 시험지에 내 열정 청춘 시간 꿈을 받쳐야 했던 나에게 무언가 보상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싫은 것에 좋은 것을 껴서 '싫음'을 조금이나마 상쇄하고 싶었다. 고3 봄. 모의고사를 보고 지나가다 꽃집 앞에 있는 프리지어가 보였다. 어쩌면 꽃이 나를 잡아당긴 것 같다. 5000원. 당시 떡볶이 2인분을 살 수 있는 이 5000원으로 프리지어를 샀고 떡볶이만큼이나 내게 주는 기쁨이 강렬해 그렇게 모의고사가 끝난 날이면 집에 가는 길에 꽃을 샀다.
수능을 치르고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꽃은 더 이상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지루한 시골 소도시의 삶을 벗어나고 싶던 나에게 서울의 달은 말 그대로 다이내믹했다. 한강 광화문 대형 백화점 대형서점. 도시 곳곳 처음 가보는 곳이 주는 설렘을 만끽했다. 처음 커피빈에서 먹은 아이스바닐라라떼의 맛을 잊을 수 없다. 선배 동기들과 해 뜰 때까지 퍼마시는 술자리는 또 어찌나 재밌던지 그렇게 한강에서 지나가는 막차를 보며 술을 마시는 게 청춘이라 생각한 시절이 지나고 있었다. 대학교 역 바로 앞에 상태가 좋지 않은 꽃을 싸게 파는 길거리 노상이 있었는데 일 년 내내 싼 가격으로 꽃을 팔다 보니 언제나 사야지 사야지 하면서도 그냥 집에 가기 일쑤였고 5년 동안 그 앞을 지나가면서 거기에서는 결국 딱 한번 빗물 머금은 꽃을 샀다. 항상 그 자리에 저렴한 가격으로 있기에 그 가치를 제대로 봐주지 않았거나 그냥 한번 보는 것만으로 됐다 싶을 정도로 별 사색 없이 살던 때였나 싶다.
그리고 다시 꽃을 샀다. 대학원 준비 기간 동안 꽃을 다시 샀으니 어쩌면 온갖 시험이 내게 꽃을 사라고 그리 고단했나 싶다. 수능은 말 그대로 해야 하니까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시험이었기에 그 거부감에 고단했다. 입시라는 것은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며 멋지게 수능을 거부하기엔 나는 아무것도 없었고 결국 대학을 가고 사회에 나가야 세상이 내 말과 생각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원은 오롯이 내 선택이었다. 너무 가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분야였다. 그러나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길은 예상처럼 쉽지 않았고 그래서 20대 중반의 추억과 기억은 사실상 머리 속에 별로 없다. 좋은 기억 보단 스트레스와 부정적이고 짜증 나는 일들이 더 많아서 나의 뇌가 부단히 기억을 지워준 것 같다. 소위 청춘이라고 하는 시간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집중했다고 해서 언제나 기쁜 건 아니기에 고단했다.
체력도 체력인데 공부가 길어지면서 가장 힘든 점은 심리적인 부분에서 나온다. 이게 맞나 틀리나 항상 셀프 크리틱을 해야 하고 원래 알던 사실도 맞나 다시 확인해야 했고 하면 할수록 나는 정말 무지하구나 깨달을수록 마음이 힘들었다. 그때 나를 잡아준 건 다시 길거리 노상 꽃이었다. 남대문 근처에 있던 이 곳을 지나치다 주인아주머니와 말을 텄고 그렇게 꽃을 3000원 5000원 조금씩 금액에 맞춰 살 때마다 한 마디씩 주고받으니 아주머니 인심도 점점 후해지고 내 지갑에서 나오는 액수도 점점 후해졌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남대문 시장에 갔다. 물 비린내에 활짝 핀 꽃들이 어우러져 신세계가 열린 느낌이었다. 이후 고속터미널 꽃시장까지 진출하면서 꽃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했다. 그 속에 있는 그 순간이 '화양연화'였다.
처음에는 한 다발 두 다발 관리가 쉽고 예쁜 애들로 골라 사다가 점점 취향이라는 게 생기면서, 사는 꽃의 종류와 이파리까지 늘어나 한번 시장에 가면 꽃다발 5~6개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1인가구가 서울에서 방 3개짜리 집에서 사는 것도 아니니 방 책상 바닥 싱크대 위까지 그렇게 한 방 안에 꽃다발이 넘치다가, 안 되겠다 싶어 점점 나눠주기 시작했다. 친구 생일 날짜가 겹치는 날이나 모임이 있는 날에 맞춰서 꽃시장에 가기 시작했고 가장 예쁜 꽃으로 주변에 나눠주고 나는 상처가 조금 나거나 살짝 시들한 애들로 한 다발 만들어 방에 두었다. 그러다 보니 마치 자식들 맛있는 부위 다 나눠주고 생선 대가리를 먹는 어미의 심정이 이런 거겠구나 싶으면서도 나부터 내가 챙겨야지 싶어 내 방에 예쁘고 싱싱한 애들로 만든 꽃다발 하나 먼저 꽂아두고 시들하거나 고개가 간당간당한 애들은 따로 모아서 창틀이나 현관에 두었다.
꽃을 나눠주면서 상대방 혹은 그들은 어떤 꽃을 좋아할까 취향도 생각해보고 그러면서 상대방을 한번 더 생각해보고 꽃을 받았을 때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상대방을 생각한 내 마음이 다시 나를 채워주었다. 물론 꽃을 받을 때는 행복이 배가 되는데 특히 이성에게 받을 경우 그 꽃말을 찾아보기도 하고 어찌 보면 실용적이지도 않은 선물에 귀한 돈을 쓴 그 마음이 전해질땐 사랑도 배가된다(그러니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꽃 선물 많이 하세요).
자연스럽게 꽃은 삶의 행복한 모든 순간을 함께한다. 새로운 시작과 꿋꿋한 마무리를 축하하는 입학과 졸업 시즌은 그야말로 꽃시장의 '꽃'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축하해 주고 싶을 때 예를 들면 고백 프로포즈 출산 승진 생신 환갑 등 행복으로 채우고 싶은 마음을 꽃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인생에는 기쁜 순간만 존재하진 않는다.
가만히 보면 슬픈 순간에도 꽃은 우리 옆에 있다. 더 처절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누군가 떠나보내야만 할 때 이생에서 저생으로 가는 이의 앞길을 꽃길로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을 흰색 국화 한 송이로 표현하거나 생전에 고인이 좋아했던 꽃을 영전에, 무덤에 받치며 '나는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이 좋아한 꽃도 기억하고 있어요'하고 속으로 되뇐다...
사실 나는 고인이 된 소중한 이들에게 흰 국화꽃보다는 그 시즌에 가장 싱싱하고 아름다운 꽃을 주고 싶다. 흰 국화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 보면 국화가 슬픔을 대변하는 것이 국화에게도 억울한 일일 수 있지 않을까. 카라 수국 백합 조팝나무 장미 튤립 카네이션 등 국화 말고도 흰꽃은 꽃시장에 넘쳐난다. 꼭 화려해야만 축하하고 소박해야만 슬퍼한다는 것도 결국 통념이 아닐까 싶다. 경조사를 치러본 사람은 알 거다. 꼭 검은 옷이나 화사한 옷을 '제대로' 차려입는 게 중요한 게 아니는 것을. 기쁨과 슬픔을 나누기 위해 힘든 시간 '기꺼이' 내준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그래서 경조사를 치르고 인간관계가 정리되는 아이러니도 있지 않은가. 물론 의례적인 옷 색상, 꽃 색깔에 신경쓰기 보다는 저승으로 가는 길이라도 편히 향기롭게 가라며 화려한 꽃다발을 건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수백 년 역사를 뒤흔들 순 없으니 결국 '무난'한 국화로 나 또한 애도를 표하겠지만.
그저 오늘 오랜만에 꽃시장에 가서, 올해도 어김없이 이 계절에 화려하게 돌아온 작약과 이제 시즌이 지나고 있는 라넌큘러스로 기분이 다시 좋아져서, 그리고 4월 16일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글이 이렇게 구구절절 길어졌다. 왜 쓸데없는 거에 돈 써?라고 하지 말고 이렇게 비실용적인 것을 '굳이' 사서 보여주고 싶은 우리의 마음과 애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그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게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 행복한 결말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꽃이 지면 마음이 지는 거 같아 이 계절이 끝난 것만 같아 슬픔이 밀려올 때도 있지만 보내야 다시 돌아온다는 걸 이제는 안다.
물리적 거리두기 기간이 길어지면서 제대로 봄을 즐기지도 못했는데 밖에 흐드러진 벚꽃은 이미 초록잎으로 변했다. 물론 누군가는 이 시간에도 창밖 한 번 내다보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소임을 다하고 있다. 그렇게 사회는 다시 정상화를 위해 다시 돌아가고 있고 도시 곳곳에서 조경사업을 시작하니 길거리 화단에 봄이 만개했다. 봄은 그렇게 다시 어떻게든 온다. 4월 16일도 매년 온다.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생각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