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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리 Apr 29. 2020

강원도는 나의 힘 <1> 감자

강원도 아이덴티티 1. 감자


나는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찐 감자를 안 좋아하는 멤버다. 찐 감자를 마지막으로 입에 댄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감자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선호하는 식품 목록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런 애다. 엄마는 유년시절 감자를 물리도록 먹은 탓에 내가 뱃속에 있을 때 감자를 먹지 않은 게 그 이유인 거 같다고 하고 나도 이 이론이 가장 유력하다고 여태 믿고 있다. (이 이론에 힘이 있다고 생각한 나는 향후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 나와 태아를 대상으로 비슷한 임상실험을 하리라 마음먹었으며 이렇듯 나는 요상한 생각을 가끔 한다.) 그러나 강원도 지천에 널린 게 감자인지라 어릴 적부터 우리 집 식탁엔 감자채 볶음 감자볶음 감잣국 감자전 감자밥 감자 샐러드 등 감자를 이용한 반찬이 옷만 바꿔 식탁에 올랐고 감자에 흥미가 없는 나는 그렇게 감자를 무시하며 엄마와는 대조되는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이 또한 엄마 덕분이다. 


허나 시간이 지나면서 입맛은 변하고 입맛이 변한다는 게 어쩌면 참맛을 알아가는, 미각이 살아나는 느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릴 적 멀리한 감자요리가 이제는 이따금 입 안에 아른거린다. 그리고는 집에 갈 때마다 대놓고 요구한다. '어머니 이거 저거 해주세요'가 아닌 '엄마 나 이거 먹고 싶어'라고 매번 말하니 부탁이 아닌 뻔뻔한 요구라 하는 게 마땅하다. 신기하게도 엄마의 감자볶음은 입에 넣자마자 짭조름한 간장소스에 감자가 으스러져 마치 치즈 녹듯 입안에 퍼지는 반면 감자채 볶음은 서걱서걱한 식감이 살아 기름과 소금이 어우러져 고소하고 담백하다. 혹 기억할 수 있다면 엄마에게 두 볶음을 대하는 차이점을 물어봐야겠다. 



얼마나 맛있게요.


감자는 주로 못생긴 얼굴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사실 고구마보다 반질하고 호박보다 아담하니 감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듯싶지만 이것도 어찌 보면 비교인데 못생기기로 손꼽는 작물인 고구마와 호박에 비교하고 있으니 감자에 두 번 상처인가? 그래도 찐 감자는 호박과 고구마보단 손에 묻어나지 않고 깔끔하게 먹을 수 있고 손에 잡히는 '그립감'이 좋은 게 장점이라고 꼽는 거 보면 앞으로도 찐 감자를 찾아서 먹을 일은 별로 없을 듯싶다. 


할아버지 밭은 언제나 감자 고구마  풍년이었다.  밭에서 보물찾기 하듯 나오는 구황작물을 꺼내 아궁이에 구워 먹은 기억은 평생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유년시절의 추억이다. 구황작물 수확철엔 더 자주 할아버지 댁에 갔고 앞 밭에서 고구마 감자를 캐다가 지루하면 오디 산딸기를 따먹었다. 그러다 개구리 거미를 발견하면 짓궂게 장난을 쳤는데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미안하다. 할아버지는 밭에서 작물을 캐는 듯 마는 듯 뛰어다니는 손녀에 눈을 감아주고 직접 고구마도 구워주고 집에 갈 때마다 항상 2000원씩 챙겨주셨으니 정말이지 꿀알바가 따로 없었다. 당시 2000원이면 콘칩 치토스 4 봉지를 살 수 있는 물가였다. 요즘으로 치면 5000원 정도 될까. 그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기엔 당시 나는 너무 어렸고 지금이라도 기억하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쓴다. 



이제 할머니도 할아버지 곁으로 가고 나니 밭에는 감자 새싹만 덩그러니 남았다. 주인은 가고 없는데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걸 보니 감자의 의리가 눈물겹다. 주인이 떠나고 자리를 맴도는 충견만 있는 게 아니라 식물도 자연도 우직하다. 어찌 보면 최고의 반려식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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