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다시 가는
여행을 못 가는 상황이 생각보다 많이 길어질 것 같다. 못 간다고 생각하니 더 가고 싶고 더 간절해지는 요즘이다. 특히 파리가 눈에 아른거린다. 파리를 위해 유럽을 간 적은 없었다. 파리는 항상 지나가는 도시였다. 어디 간 김에, 어느 도시 지나가는 김에 들리는 그런 도시였다. 파리에 도착하면 다른 도시보다 더 긴장했다. 워낙 관광객이 많은 도시이기도 하고 최근 테러 위협으로 공항 내 보안 수위도 높아졌다. 비행기에 내려 나라의 첫인상이라고 할 수 있는 공항에 무장경찰, 군인이 있다는 것은 현재 적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의미와 동시에 그만큼 위험하다는 걸 반증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파리에 가면 나 또한 긴장하고 예민해진다. 유럽 다른 도시에 비해 다소 지저분하고 불쾌한 느낌도 종종 받는다. 그런 파리인데 항상 돌아서면 다시 가고 싶은 도시 1순위도 파리다. 정말 묘한 매력이 있다.
스쳐 지나간다고 생각했는데 어딜 가든 꼭 집어넣는 걸 보니 어쩌면 파리를 가장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파리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느강변을 산책하고 그러다 느지막이 카페에 들어가 아침에 갓 나온 빵과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는다. 한두 시간 여유를 부리고 오늘 무얼 할까 어딜 가볼까 생각하다 다시 정처 없이 걷는다. 걷다 보면 미술관이 나온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미술관은 오르세이. 갈 때마다 새롭고 매번 황홀한 장소다. 그렇게 오르세이에서 위로받는다.
다시 또 걷다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거나 분위기 좋은 곳에서 천천히 흘러가는 식사를 음미한다. 혼자 여행해도 외롭지 않은 이유는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한 두 마디 혹은 긴 대화가 외로울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처음 본 이들과 그렇게 첫인사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서면 다시 센 강에 도착한다. 석양이 지고 자연스럽게 바토 뮤슈를 탄다. 파리지앵처럼 머물다 가는 파리에서 가장 관광객스러운 유람선을 타며 다시 나의 정체성을 찾는다. 석양을 뒤로한 파리, 비에 젖은 파리는 그 어느 도시보다도 아름답다. 그렇게 하루의 마무리는 언제나 에펠타워.
제대로 계획을 짜지 않고 가다 보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문을 닫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요즘은 도심 집회로 교통이 통제되는 경우도 많고 보안상 시설물을 폐쇄될 때도 많다. 그럴 땐 아쉬워하지 말고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파리에 다시 올 이유를 남겨두었으니까. 그래서 파리는 몇 번 가도 가장 모르는 도시로 남아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그냥 '지나가는' 도시라고 하기에 사실 너무 사랑해서 '어떻게든' 다시 가는 도시 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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