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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리 Sep 19. 2020

같이 걸어요.

군중 속의 고요를 느끼며.

날씨가 좋다. 


가을볕이 따뜻하면서도 서늘하다. 걷기 좋은 날씨다. 하루 30분 산책으로 23시간 30분이 달라진다면 밖으로 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헛되이 보내는 30분을 아낀다면, 하루 산책은 '시간을 내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하루에 '나를 위한,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시간이 정말 없는 걸까. 혹은 나 스스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 조차 아까워한 것은 아닐까. 


누구나 똑같은 24시간과 365일이 주어진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내 시간의 주인도 바로 나 자신이다. 시간 낭비하며 흘러 보낸 지난 시간을 후회하다 보면 되돌리고 싶고 결국 불가능한 걸 알기에 짜증이 나서  걷잡을 수 없는 절망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기에 앞날은 무한하며 심지어 나 스스로 바꿀 수도 있으니, 과거에 나로 살 지 현재와 미래의 나로 살지는 각자 결정에 달렸다. 잊지 말자 과거는 없다!


인생을 4계절에 비유한다면 30대인 지금의 나는 3~4월을 지나고 있을 것이다. 즉 봄의 풍요로움, 여름의 장마, 가을의 수확, 겨울의 첫눈도 아직 만나지 못한 셈이니 지나간 인생을 후회하기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제 막 새해의 꽃샘추위, 갑자기 내리는 3월의 폭설을 지나 완연한 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다행히도 몇십 번의 사계절을 경험한 덕분에 자연의 순리와 흐름은 이미 알고 있다. 꽃이 피고 지고 해가 뜨고 비가 내리고 장마가 지나면 단풍이 지고 눈이 내리는 불변의 진리를 몇십 년에 걸쳐 연습했으니, 과거의 내가 흘러 보낸 시간은 앞으로 다가올 4월 이후의 시간을 준비하기에 훌륭한 '시행착오'였다고 나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어차피 장마는 오고 폭설은 내릴 텐데 오늘처럼 볕이 좋은 날 하루라도 제대로 쉬고 즐기며 좋은 에너지를 비축하는 게 앞으로의 풍파를 버틸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는 것. 올해 유난히 길고 강렬했던 장마가 내게 알려준 사실이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산책을 하다 떠오른 생각을 적어본다. 커피 한 잔에 좋아하는 음악이 귀로 들어오니 군중 속의 '고독'이 아니라 군중 속의 '고요'였다. 모두와 함께 걷지만 하늘과 바람과 나만 존재하는 나만의 시간. 나는 오늘 시간을 귀하고 값지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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