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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리 Feb 04. 2021

나의 운전면허'학원' 일기

지방살이 운전이란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이라는 표현을 빼면 대화가 안 될 정도로 코로나 때문에 힘든 상황이지만 이번엔 '코로나 덕분에'라는 표현을 한 번 써보고 싶다. 나는 코로나 '덕분에' 10년 숙원사업 운전을 배우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하러 간 날. 검은 패딩 무리가 접수처에 바글바글하다.  수능을 마치고 새해를 맞아 '상경', '새 출발', '처음', '새 인생'을 마음에 품은 20살 친구들의 '새로움'에 나는 잠시나마 '편승'하고 싶다는 얄궂은 생각을 한다. 혹 삼십 대인 지금도 왜 '리셋'이 안 되겠어 라는 가능성을 품으며 세상에서 가장 부질없는 상상도 해본다. '만약 지금 20살이라면'.


(게다가 나는 운전학원을 가는 내내 '뉴발 패딩, 조거 팬츠, 운동화'를 고집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한 강사님들의 호칭은 '~씨는'로 고정될 뿐 결코 '~이는'으로 상향 조정되지 않았다.)


1종 보통 수업이 시작되고 강사분들에게 받는 단골 질문은

 "요즘은 대부분 오톤데 왜 1종을 신청했어요?  보통 남자애들(20살)이 '가오'때문에 1종을 딴 다지만요."

이에 나는 "에이, 여자는 뭐 '가오' 없나요?"라며 받아치자니 강사분들 99%는 부모님 연배의 이 지역 네이티브이자 내 또래의 딸아이를 키우시는 분들이기에 동방예의지국을 실천하며 그저 싱긋 웃는다. 실제로 '가오'때문에 1종을 따는 것도 없진 않지만 사실 나의 진짜 답변은 "코로나, 천재지변, 기후위기 등 알 수 없는 것들이 닥쳐오는 세상과 위기상황에 맞서 길가에 버려진 아무 차량이라도 운전할 수 있는 '퓨리오사'가 되고 싶어서요"였으나 장황한 이유를 설명하며 미주알고주알 강사분들과 수다를 떨기엔, 도로 위에서 나는 이미 유체이탈을 겪고 있다. 왼발은 클러치요 오른손은 기어 변속이요, 내 '신체'가 운전을 하긴 하는데 내 '정신'은 과연 어디에 있는지 바디앤소울이 분리되는 진기한 경험으로 도로주행을 마쳤다.


내가 딴 면허는 단순한 '면허증'이 아니다. 공터에서 연습하다 나무에 박아 일주일 동안 차를 못 쓴 아빠의 희생과 비용, 학원가는 날이면 인간극장 시작 직전 푸짐한 아침밥을 차려주며 며칠이나마 여고시절을 떠올리게 해 준 엄마의 정성과 희생, 똑같은 설명도 짜증 한 번 없이 네이티브 사투리 구사해주시는 아버지선생님들의 가르침으로 일군 '지역공동체 공동육아'의 결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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