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4
3월~5월은 저 스스로는 반백수라고 표현을 하는 일 년 중에 가장 여유 있는 시기입니다. 이 기간에는 묵혔던 글을 쓰기도 하고 공부도 합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올봄에는 일주일에 책 2권 읽기를 목표로 세웠습니다. 서진이네, 텐트 밖은 유럽 2 같은 프로그램이 제 마음을 자꾸 간지럽혀서 마음을 다잡기 위함입니다.
어제 출근길 지하철 상호 대차로 도서관에서 빌린 책 '라이더가 출발했습니다'를 하루 만에 다 읽었습니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죽음과 애환이 담겨있기에 '재밌다'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단숨에 읽을 만큼 매력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이 책에는 라이더를 포함한 플랫폼 노동자들과 기업들의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결국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배달의민족과 쿠팡은 공유경제를 이야기하지만 이들과 계약을 맺고 있는 자영업자, 라이더들의 소득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구조적인 이유에 대해서도 잘 나와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창조경제'에서 플랫폼은 부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추출'하는 구조이니까요.
플랫폼의 성장으로 짧은 시간에 세상이 많이 바뀌어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그러고 보면 택배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퇴근길 아파트 경비실에 들러서 택배를 찾아서 집에 가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요즘은 사라진 풍경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모습은 모기 힘들 것 같습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사람에게 직접 물건을 배송하는 대면 배송이 '상식'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주로 주문 시 배송메시지에 남기시는 문구의 9할은 '부재 시 경비실에 맡겨주세요'였습니다. 택배 기사의 입장에서는 일일이 가가호호 방문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배송을 처리할 수 있는 손쉬운 꼼수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재 시 문 앞에 두고 가세요'가 국룰이 되었죠.
과거에는 택배 관련 컴플레인의 상당수가 집에 사람이 있는데도 택배 기사가 물건을 경비실에 맡겨두고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10킬로짜리 과일 박스를 경비실에서 집까지 어떻게 들고 오냐며 당신이 와서 가져다 놓으라고 막말을 하시는 분도 계셨고 심지어 2.5킬로짜리 박스 하나를 경비실에서 집까지 가져올 수 없다며 반품을 요청하신 손님도 계셨습니다.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지요.
책을 읽던 중 '별점인생'이라는 부제의 챕터가 가슴 아프면서도 동병상련을 느꼈습니다. 대부분의 온라인 업체들의 매출은 후기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시장 분위기가 되었죠. 저 역시 과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하면서 후기와 별점에 의해 검색 랭킹이 바뀌는 네이버의 알고리즘을 몸소 경험한 바가 있습니다.
이미 상위에 랭크되어 있어서 그냥 가만히 놔둬도 기본적인 매출을 보장해 주었던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와의 과감한 결별을 한 이유 중에 플랫폼의 후기와 별점 노예로 살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2018년 사이트 리뉴얼을 하면서 지금까지 오직 자사몰만 운영하고 있고 자사몰에도 후기게시판은 달지 않았습니다.
가맹점 업주도 라이더들도 별점 인생으로 살아가는 것이 플랫폼 노동자들의 숙명입니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특고(특수형태근로종사자) 형태로 분류가 되기 때문에 엄연한 노동자이지만 법적으로는 사장님이라는 구조를 악용하여 플랫폼 기업에서는 노동자들의 목을 죄어옵니다.
책의 저자는 책의 마지막 취재 후기에 이런 이야기를 남깁니다.
"우리가 누리는 낮은 가격과 편리의 이면에는 누군가의 노동을 부당한 값으로 거래하는 '불의'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해 가는 플랫폼을 바라보면, 한 편의 부조리극이 펼쳐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미 정규직과 비정규직, 파견과 도급, 특수 고용직과 자영업 등의 분리는 작업 분리를 넘어 신분의 분리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엔 플랫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