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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씨아저씨 Jan 11. 2023

사과의 힘

2023. 1.11

명절이라는 게 참 오묘합니다. 없어졌으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핑계 삼아 평소에 감사한 분들께 작은 마음이라도 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잘 보일 거래처 사장님은 없고 제가 잘 보일 분들이라곤 협력해 주시는 농민들뿐입니다. 그분들 덕분에 먹고살고 있으니까요. 물론 회원 여러분들 덕분이기도 합니다. 


올해는 레드향을 돌릴까 하다가 명단을 보니까 어쩌다 보니 제주에 계신 분이 다섯 분이나 계셔서 그냥 사과로 통일시켰습니다. 사과 농민께만 레드향을 보내드렸고요 ^^ 사실 저도 올해 매출과 이익률이 대폭 하락한 탓이라는 구차한 변명도 늘어놓습니다. 쿠폰만 200만 원 넘게 발행했더라고요. 괜찮습니다. 누구든 행복하면 그만입니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에서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 [내가 내것을 누구에게 주었다는 생각조차 버리는 것]을 배웠으니까요.


사과받으신 농가에서 어제부터 전화가 옵니다. 


청도는 올해 겨울 가뭄이 좀 심해서 비가 좀 내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시고, 제주도는 지금 완전 봄날씨라고 이러다 벌레들 창궐하겠다고 걱정이라는 이야기에서부터 부산 대저 토마토는 작년 여름에 너무 더워서 파종하는 시기가 좀 늦어져서 올해는 작년보다는 수확이 대략 2주 정도 늦어질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지난달에 제주 갔을 때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신 친환경연합사업단 대표님께도 사과하나 보내드렸더니 도움은 오히려 저희가 받는데 이런 걸 보내주셨냐고 너무 감사해하십니다. 농민들과 유통인과의 관계는 같은 배를 탄 동반자 같은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늘 농민들은 유통인들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구조가 되어있습니다. 


어느 농가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친환경 농가는 판매처 수급이 제일 어렵습니다. 아무리 계약이 되어있어도 생협도 발주가 안 들어오면 물량이 붕 떠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을 합니다. 올해 처음 인연을 맺을 예정인 유기농 천혜향 농사짓는 농민이 지난달에 출장 갔을 때 저를 되게 반가워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친환경 하고 싶다고 찾아와서 저한테 농사를 배우는 후배들이 좀 있는데 '너 팔 곳은 있어?'라고 제가 대뜸 물어봅니다. 생협으로 납품하면 되지 않냐고 쉽게 대답을 하더라고요. 그럼 생협이 니 농산물을 어떻게 믿어줄 건데? 그리고 생협 납품 루트는 어떻게 접근할 건데?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작은 업체라고 갖고 있어? 물어보면 대답을 못해요. 그럼 전 이야기합니다. 대답 못할 줄 알았다고 왜냐하면 저도 대답을 못하거든요. 저도 오랜 시간 거래하고 있는 생협이 있지만 그쪽에서 갑자기 물건 못 가져가겠어요 하면 할 말이 없어져요."


제 SNS 벗 중에는 농민들이 많습니다. 오늘도 소비 부진으로 생협 쪽에서 발주가 안 들어와 SOS를 청하는 유기농업을 하는 농민의 포스팅을 접합니다. 생산에 대한 책임과 소비에 대한 책임을 함께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농업 생산비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경기는 안 좋은 이 상황에 농민이나 유통하는 사람이나 걱정이 한가득입니다. 가격이 당연히 올라야 되는데 소비부진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죠.


사과 한 박스로 전국 8도까지는 아니지만 각 지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좋은 소식들만 듣는 건 아니라 마음이 무겁습니다. 한줄기 빛이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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