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7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올해로 11년째 과일가게를 하면서 회원분들의 성향도 참 다양해졌다는 것을 많이 느끼는 요즘입니다. 10년 전에는 단지 맛있는 과일을 찾아서 오신 분들이 주였다면 지금은 제가 추구하는 방식과 가치에 공감해주시고 재밌어하는 분들이 많이 늘었다고 할까요?
1년 365일 중에 판매하는 기간보다 판매하지 않은 날들이 더 많은 이상한 과일가게. 썰렁하기 그지없는 웹사이트에 방문하시는 분들께 작은 재미라도 드릴 요량으로 흔히 시장에서 통용되는 문구가 아닌 공씨아저씨네만의 마이크로 카피에 조금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신상품, 품절, 세일, 베스트, MD 추천, 주문 폭주, 판매 대기' 기본적으로 쇼핑몰에서 통용되는 문구들입니다. 웹사이트에서는 뱃지라고 하는 아이콘에 들어가는 문구들인데요. 소비자들에게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도 상품의 상태를 설명하는 공통 언어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구들이 저에게는 너무 평범하고 식상했습니다. 저희 몰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온도가 조금 다른 언어들인 것 같았거든요.
아무리 돈이 되는 일이라도 재미가 없으면 하기가 싫고 제가 재밌으면 돈과 상관없이 열정을 불태우는 이상한 성격 탓에 저만의 마이크로 카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별거 아니지만 종종 이 마이크로 카피에 변화를 주기도 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 완성 중인 작업이기도 합니다. 사각으로 해보기도 하고 라운딩을 주기도 하고 최근에는 컬러를 입혀보기도 했습니다.
저의 지인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저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사람입니다. 위트라고는 1도 없는 사람이죠.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한 탓에 10년 전 장사를 시작하며 포스팅을 올리면 제 친구들이 니 포스팅은 신문기사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조금씩만 덜 딱딱하게 글을 쓰자고 스스로 노력한 결과 여전히 딱딱한 콘텐츠들만 생산하고 있지만 오늘은 '위트 있게'라는 찬사도 다 들어봅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걸 누가 관심 있어해? 이렇게 장사하다간 망할 거야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지금은 이런 작은 노력들을 재밌고 관심 있게 느끼시는 회원님들을 종종 만날 때면 가슴이 월렁 월렁 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