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9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최근 조금 불쾌한 경험을 했습니다. 공씨아저씨네의 다음 과일로 참외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언제가 될지는 저도 잘...) 올해는 무작위로 온라인에서 여기저기서 참외를 좀 시켜먹고 있습니다. 오늘로 다섯 번째 주문한 참외가 도착했습니다.
오늘 받은 참외는 제가 좀 의심쩍은 부분이 있어서 확인 차원에서 주문한 참외입니다. 그저께인가 문자 메시지가 하나 왔습니다. '[Web발신] (광고) 참외 XXXXX/재구매 50%/ 10시까지 http://ssskkktttvvv 무료 거부 080XXXXXXX '스팸 문제인가 싶었습니다. 업체명이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재구매'라는 문구에 최근 참외를 주문했던 농가들의 정보를 다시 한번 살폈습니다.
제가 그래도 온라인에서 10년 넘게 장사를 한 사람인데 농민들과 업체들이 어떤 식으로 장난을 치는지 그 유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경로로 문자를 발송했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정리를 하면 제가 구입했던 X생산자의 참외는 Y업체에서 판매를 한 상품입니다. 전 Y업체에서 구매를 했습니다. Y업체는 택배 발송을 위해 배송지 정보를 X생산자에게 넘겼을 것입니다. 그 회원정보를 바탕으로 X생산자가 저에게 문자를 발송한 것입니다. 예전에 동료가 운영하는 N사에서 멜론을 한 번 주문했던 적이 있는데 그 뒤로 멜론 생산자로부터 계속 문자가 오는 일이 있었는데 오늘 이런 일을 또 겪습니다.
일단 여기서 문제 하나! X생산자가 택배 발송을 위해 Y업체로부터 전달받은 회원정보를 저장해놓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관련 위법입니다. 택배 발송 이후에는 파기해야 합니다. 법적 문제 이전에 도덕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실제로 많은 농민들과 영농조합법인 심지어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에서도 이런 행위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지어 잘못인지 인지조차 못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저에게 문자를 보낸 것은 X생산자였고 그래서 이번에는 X생산자가 운영하는 자사몰에서 참외를 주문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상품을 오늘 받았습니다.
여기서 문제제기 둘! X생산자 직판 가격이 Y업체의 판매 가격보다 싸게 할인해서 판매했다는 것입니다. 일반 유통 업계의 상식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제조사 개념의 X생산자 가격이 Y업체보다 싸서는 안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면 나이키 본사에서 운영하는 직영샵에서 나이키 유통 판매점보다 더 싸게 신발을 판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나이키 직영점에 가겠죠.) 오히려 Y업체에서 할인을 해서 판매량을 늘릴 수 있도록 X생산자는 도왔어야 합니다.
Y업체로부터 득한 회원 정보를 바탕으로 본인 자사몰에서는 더 싸게 판다고 광고 문자를 보내는 생산자. 분명 도덕적으로 심각하게 비난받아야 할 행위입니다. 심지어 X 생산자 자사몰과 Y업체에 공개된 농민 이름도 다르게 해 놨더군요. 동일 인물인데도 말이죠. 참외 박스도 다르고 안에 사은품까지 담겨 왔더라고요. Y업체는 저도 모르는 곳이고 X생산자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분이지만 업계 종사자로서 마음이 참 씁쓸하고 불쾌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받은 참외는 참 씁니다.
제가 제조, 유통, 서비스업에 모두 종사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유통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을 상도이자 업체 및 생산자의 도덕성으로 꼽습니다. Y업체로 납품하는 것보다 X생산자 본인이 직접 판매함으로 유통 마진을 더 득할 수 있다는 욕심 때문에 농민들이 저지르는 가장 흔한 실수입니다.
대부분의 농민들이 유통업자들한테 한 번씩 뒤통수 맞고 한 번씩 사기당했다고 이야기를 하시는데 저희 유통하는 사람들도 늘 농민들의 뒤통수에서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다행히 10년동안 저희 협력농가에서는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이 문제는 계약전 명확하게 농가에 이야기를 하고, 제가 협력 농가를 선정할 때에는 무엇보다 농민의 도덕성을 우선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윤리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는 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관계를 끊습니다.
농산물 판매하는 온라인 업체가 최근 몇 년 사이에 크게 증가했습니다. 상도를 지키지 않는 업체들, 욕심이 과한 농민들의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욕심을 조금 버리고 상식적이고 건강한 시장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