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6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올해의 청도 방문은 저에게는 좀 무거운 마음이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양영학 농민이 반가운 얼굴로 기차역에 픽업을 나오셨겠지만 올해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역에서 택시를 타고 마을로 왔습니다. 밭으로 가는 이 길은 제가 참 좋아하는 길입니다. 보이실지 모르겠지만 저기 창고에서 제가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반겨주러 나오시네요.
작년에 소식을 전하긴 했지만 제가 자세히 말씀은 안 드렸습니다. 저희 복숭아를 담당해주시는 양영학 농민이 작년 봄 갑자기 뇌졸중이 와서 쓰러지셨어요. 지난 1년간 자주 전화 통화하면서 양영학 농민의 건강상태는 제가 계속 체크를 했습니다. 본인의 아픈 모습을 보여주시고 싶지 않으셨는지 절 못 내려오게 하시더라고요. 거의 2년 만에 뵙습니다. 그나마 이렇게 뵐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실 저희 가게 전체 매출의 40% 정도를 담당하는 복숭아 이기에 작년 한 해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제 와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작년 봄만 해도 가게문 닫을 수도 있겠다는 각오까지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해주셨습니다. 복숭아 농가 다른데 찾아야 되는 거 아니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으셨어요.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미련하게 장사를 하냐고 하시는 분들도 많으시고요.
저희는 1 품목 1 농가와 협력하며 판매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양영학 회장님의 소식을 듣고 아찔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올해의 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섣불리 행동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올해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실 거라는 믿음 하나로 1년을 기다렸습니다. 사실 올해도 조금 힘들 수 있을 거라는 각오는 하고 있었습니다. 워낙 큰 병이라 그리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작년 1년 동안 회복 속도가 빠른 편이셨고, 무엇보다 본인이 늘 '내년에는 농사 지어야죠'라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셨습니다. 건강이라는 것이 본인의 의지대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본인의 의지가 워낙 강하셨기 때문에 저는 믿고 기다리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아직까지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올해부터 다시 복숭아 밭에 나오기 시작하셨습니다.
6월에 다시 만나 뵐 때는 지금보다 더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를 약속하며 저는 농장을 떠났습니다. 상황은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일단 올해는 여러분들 복숭아 드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복숭아 수확철에 제가 밭에 내려와서 직접 포장 작업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죠.
많은 소비자분들은 누구의 복숭아인지 보다는 공씨아저씨네에서 그저 맛있는 복숭아를 많이 판매해주기만을 바라시겠지만 저에게는 누구의 복숭아냐가 중요합니다. 경매장에서 좋은 물건 떼다가 파는 방식의 과일가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공씨아저씨네 회원분들이 세상에서 제일 심한 극한 직업이시라고요. 파는 것도 별로 없고 팔았다 안 팔았다 변화도 심하고 툭하면 매진되는 상황 속에서도 함께 해주시는 분들이니까요.
올해 전반적으로 예년보다 개화시기가 조금 빠르네요. 영상 속의 좌우측 그리고 창고 옆에 복숭아꽃이 핀 밭이 저희 양영학 회장님의 복숭아 밭입니다. 아직 꽃이 덜 핀 지역은 어린 유목들입니다. 2-3년 정도 후면 여러분들이 드실 수 있게 되실 겁니다. 앞으로의 상황이 어찌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올해 첫 복숭아는 6월 20일 전후로 수확을 할 예정입니다. 6월에 다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함께 기다려주시고 응원 보내주신 회원님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