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 안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나라 이탈리아
#002. Italy.Rome_day2
오전 6시 30분. 비둘기 소리에 잠을 깼다. 가족들은 모두 잠들어 있고 나는 잠시 동안이지만 나 혼자만의 로마에 취한다. 로마의 숙소는 건물 4층에 위치하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조금은 힘들지만 4층에서 창문을 열면 보이는 풍경은 모든 것을 다 괜찮게 만들어 버린다. 숙소 바로 맞은편에도 작은(?) 성당이 하나 있다. 그 앞에는 주로 집시들이 노숙을 한다.
숙소 창문을 열고 1층을 내려다보니 가지런히 주차한 차들과 오토바이들의 풍경이 이색적이다. 특히 영화에서만 보던 귀엽고 깜찍한 경차들이 많고 오토바이 주차장이 별도로 있는 것이 재밌다.
어젯밤에 처음 보았던 콜로세움. 아침에 보니 이런 모습. 한 블록만 걸어가면 언제라도 볼 수 있는 콜로세움이라니...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심리적 편안함이 콜로세움을 한층 더 친숙하게 느끼게 한다.
오늘까지 비 소식에 좀 있는데 하늘은 잔뜩 흐리지만 그래도 구름의 모습을 보니 맑을 것도 같다. 일기 예보를 보니 다행히 내일부터는 일주일 동안 맑음이다. 로마의 색감은 딱 내 스타일이다. 오래된 도시가 안겨주는 잔잔하고 차분한 도시의 컬러가 이 도시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옛 모습을 최대한 간직한 채 이렇게 도시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 부수고 새로 짓기에 바쁜 우리나라와는 문화가 자꾸 비교될 수밖에 없다.
아침 9시 숙소를 나섰다.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는 판테온이다. 본의 아니게 판테온 가는 길에 어제 택시 안에서 처음 만났던 조국의 제단과 베네치아 광장을 접했다. 로마의 거리는 사람이 다니는 인도가 그리 넓지는 않았다. 거리의 양옆은 거의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었지만 거리에서는 언제나 사람이 우선이다. 사람이 보이면 차들은 무조건 선다. 우리나라 도로에서 차들을 만났을 때의 위협은 느껴지지 않았다. 설사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클랙슨 소리 대신 차들은 본능적으로 그냥 정차한다.
우회전하면 트레비 분수 가는 길 아래로 내려가면 조국의 제단이... 가운데 파란 포스터에는 무슨 내용이 있는가 봤더니...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이름이 너무 흔하게 보여서 동네 아저씨 같이 친숙한 느낌이 든다. 코너에 있는 서브웨이 간판에 왠지 한국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어제 공항에서 숙소로 오는 택시 안에서 처음 접한 조국의 제단을 이렇게 우연히 만났다. 이른 아침이라 관광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로마의 거리는 그냥 한마디로 예술이다. 셔터만 눌러도 작품이 되는 마법 같은 곳이라고 할까? 주위의 모든 풍경이 그저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판테온 앞에 도착했다.
보통 어떤 장소를 찍을 때 앞에 사람이 막고 있으면 사진의 방해 요소로 취급하곤 하는데 로마에서는 사람들의 모습조차 장소와 함께 너무나 멋진 풍경 그 자체였다. 남자들도 뭐 그리 하나 같이 멋있고 잘생겼는지 패션의 나라 이탈리아 인정.
이른 시간에 판테온에 와서 그런지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바로 앞에 있는 타짜 도로가 아직 문을 열지 않아서 근처에 있는 지올리티로 향했다. 건너편에 있는 그롬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는데 다행히 지올리티는 문을 열었다. 공사원들은 애플과 망고 나와 부인은 라이스와 피스타치오로 이탈리아에서의 첫 젤라토를 시작했다. 3대 젤라토 중에 하나라고 하는 지올리티의 젤라토는 사실 그리 감동적이진 않았다. 한국의 카카오봄 젤라토가 얼마나 위대한 젤라토인지 느낀 순간이라고나 할까?
판테온은 어마 어마하게 컸다. 여긴 다 크다. 판테온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보다 그냥 여기저기 거리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나 보다. 젤라토를 먹고 우리는 건너편에 있는 나보나 광장으로 향했다. 거리의 간판 하나 포스터 하나 뭐 하나 예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판테온에서 5분 정도 걸어서 우리는 나보나 광장에 도착했다.
청명한 하늘 그리고 사람들로 가득 찬 나보나 광장은 예술이었다. '광장'이라는 곳이 주는 북적거림 그러나 사람들이 많아서 싫은 것이 아닌 오히려 사람들로 가득해서 에너지가 넘치는 진짜 '광장'의 의미를 실감했던 것이 나보나가 나에게 준 첫인상이었다.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이건 그냥 아마추어의 수준이 아닌 프로 연주자들의 실력이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벤치에 앉아 음악에 취했다.
광장을 바라보며 레스토랑에서 이탈리아의 첫 외식을 시작했다. 원더풀, 뷰티풀이 입에서 절로 나온다. 광장 주변을 두르고 있는 식당은 가격이 좀 비싸기는 한데, 뭐 비싸면 좀 어떤가? 나보나 광장을 보면서 먹는 밥인데... 점심 메뉴는 베르니니 피자, 파스타, 부팔라 샐러드, 라자냐. 이탈리아 음식은 무척 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리 짜다는 느낌 없이 입맛에 잘 맞았다. 계산서를 보니 80유로. 기분 좋게 기꺼이 지불했다.
점심을 먹고 오전에 문을 열지 않아서 맛보지 못했던 타짜 도로에 가서 에스프레소 한잔을 때렸다. 직원에게 영수증을 주면서 팁을 조금 주면 커피가 엄청 빨리 나온다는 조언에 따라 10센트를 영수증과 함께 바의 직원에게 건네었더니 바로 커피가 나오는 마법이 펼쳐졌다. 참고로 타짜 도로 에스프레소는 한잔에 0.9유로다. 왜 에스프레소를 먹는지 알고야 말았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아침마다 계속 생각날 것 같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느낌이라고 할까. 갈비뼈 사이사이가 찌릿해지는 느낌.
입안에 에스프레소의 향을 가득 머금은 채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소나기를 만났는데 우산을 가지고 가지 않아서 비를 좀 맞았다. 덕분에 중간에 비를 피한다는 핑계로 이 가게 저 가게 들르면서 구경을 하는 재미를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로마의 날씨는 참 얄궂다. 우산과 비옷을 꼭 챙겨야 한다는 말을 이해했다. 맑다가도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도 한다. 비를 맞는 것조차 즐거운 로마다. 우산을 들고 다니는 번거로움 보다 소나기를 만나는 재미가 더 크게 느껴진다.
소나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하늘은 다시 맑게 개였고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집에 오는 길에 골목에서 만난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 담쟁이는 로마에서 지금까지 만난 최애 플레이스.
담쟁이 골목에서 코너만 돌면 저기 콜로세움이 보인다. 그전에 숙소에서 잠시 쉬기로 한다. 로마에서의 일정은 거의 도보로 소화할 예정이어서 중간중간의 휴식은 필수요소라 판단했다. 숙소의 위치를 잡을 때도 이점을 가장 많이 고려했다.
숙소에서 잠깐 쉬고 우리는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콜로세움은 요즘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시스템이 되어서 표를 한국에서 미리 예매하고 갔다.
신호등을 건넌다. 로마의 신호등은 초록과 주황 그리고 빨강으로 되어있다. 다들 예상하시는 것 같이 주황은 남은 시간을 표시하는 용도다.
우리의 콜로세움 입장 시간은 오후 4시 15분. 오후 늦은 시간이 사람이 좀 덜 붐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람은 여전히 많다. 콜로세움의 성인과 학생의 입장 요금은 다르다. 여행 전에 유적지 티켓은 100% 사전 예약을 하고 왔는데, 여러 곳에 예약을 하다 보니 학생은 무료이거나 할인이 되는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포로 로마노 쪽의 티켓부스가 사전 예약 티켓 교환 전용 창구라고 안내를 받아 이곳에서 줄을 서서 티켓을 교환했다.
'티켓 가장 빨리 찾을 있는 방법' 뭐 이런 테마로 블로그에 글들 엄청 올라와있는데 가 보면 다 안다. 미리 고민할 필요 1개도 없다. 빠름 빠름을 외치며 살아온 대한민국이 아니었던가 결국 그 빠름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이리 만든 것이고, 느림이 만들어 놓은 역사의 현장에 왔으면 조금 천천히 살아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냥 한 순간순간을 즐기면 될 것을...
아... 이게 콜로세움이구나. 원형 그대로 복원하지 않고 이 모습 그대로 남겨놓았다.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저 잘려나간 콜로세움의 돌들이 어디에 가 있는지를 찾는 것 또한 이탈리아 여행의 재미.
4시 5분 정도가 되니 입장 줄이 열리기 시작한다. 관람객 수를 조절하기 위해 시간대별로 배분해서 사람들을 입장시킨다. 생각보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우리는 콜로세움으로 들어갔다. 콜로세움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야 되는데 로마의 대부분의 유적지들이 보안 검색대를 운영한다. 폭탄테러 등의 위험요소에 대비하기 위함인데 배낭 스타일의 가방은 대부분 맡겨놓고 가야 되는 곳이 많고 작은 힙색은 별 제재 없이 휴대가 가능하다.
콜로세움은 정말 웅장했다. 사실 콜로세움에서 가장 감동을 받은 포인트는 콜로세움 안에서 흡연을 할 수 있는 구역이 따로 있고 재떨이까지 친절하게 놓여 있던 것. 아무리 담배를 사랑해도 유적지 안에서의 흡연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고 화재의 위험과 문화재 파손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이건 그들의 문화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습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흡연자들의 천국이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콜로세움을 보며 담배 한 대를 피는 낭만을 누리고 싶었지만 공사원들과 부인의 뜨거운 눈초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냄새로만 만족하고야 말았다.
콜로세움을 보고 나니 모두들 지쳤다. 아이들이 콜로세움을 보고 느끼는 감동은 딱 10초였다. '와~~~~' 그리고 끝. 잠시 쉬었다 갈까 했는데 하늘에 조금씩 먹구름이 끼더니 우산과 비옷을 파는 거리의 아저씨들이 등장하는 모양새가 곧 비가 올 거라는 예감. 낮에 한 차례의 소나기를 경험했던 탓에 왠지 집으로 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로마의 날씨는 우산 장수 아저씨들이 등장하면 곧 비가 내린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확률 100%. 서둘러서 숙소로 돌아왔더니 숙소에 딱 도착하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숙소 1층에 있는 중식 음식점이 아주 훌륭하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배는 고프고 비도 오고 해서 구내식당 가는 기분으로 1층으로 내려가 저녁을 먹었다. 새우볶음밥, 파인애플 볶음밥, 탕수육 , 볶음면 거기에 물 한 병과 칭다오를 시키니 29.5유로. 무척 훌륭한 가격이다.
아이들은 집에 오자마자 침대로 향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도보로 다니는 것이 꽤나 힘들었던 모양이다. 내일은 아침 일찍 아시시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어야 하는 관계로 나도 어서 꿈나라로 가야겠다.
오늘의 로마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크다' 그리고 '담배'.
이 글은 이탈리아에서의 보름간의 개인적인 가족 여행 기록입니다. 여행 정보 전달을 위해서도, 맛집을 소개하기 위해서 쓴 글도 아닙니다. 제가 느낀 이탈리아의 모습을 사진과 함께 하루하루 기록한 개인 일기장입니다. 여행 전 정보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있다면 그냥 가던 길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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