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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씨아저씨 Sep 08. 2021

스티로폼 백사장

2021.05.27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제주에 있는 모 해변. 한겨울도 아닌데 백사장에 하얗게 눈보라가 치는듯한 광경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잊히지가 않습니다. 범인은 발포스티렌(스티로폼)이었습니다. 


녹색연합이 조사한 자료를 보면 제주 해변 미세 플라스틱 (1-5mm) 중 약 94%가 스티로폼이라고 합니다. 이제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한 해변의 풍경은 해외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의 제주 해변도 병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과일 장수를 하면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이 세아유 스티로폼 박스를 무코팅 종이박스로 전면 교체한 일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2017년 초반까지는 세아유 토마토도 스티로폼 박스에 포장을 했었습니다. 



토마토 등 신선식품을 포장할 때 스티로폼 박스를 쓰는 이유는 사실 기능적인 부분 때문입니다. 보온 보냉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크긴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스티로폼 박스를 써왔습니다. 


그러나 '미생' 오상식 과장의 말처럼 관습에만 충실하다 보면 드러나야 할 것이 가려지는 수가 있지요. 굳이 스티로폼을 쓰지 않고 종이박스를 써도 가능한 방법을 찾겠다고 마음을 먹고 준비를 하다 보니 사실 별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스티로폼 포장과 종이 박스 안에 500g 단위의 투명 플라스틱에 이중으로 포장을 하는 관습은 하루빨리 개선되길 바랍니다.  


이 일을 하면서 농가로부터 종종 연락이 옵니다. 입점 관련 문의도 있지만 90% 이상의 문의는 '종이 난좌' 어디서 구매할 수 있나요?입니다. 브런치나 제 SNS 포스팅을 보시고 연락을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사실 종이난좌 공장 찾는 것도 어려웠는지 지금은 종이 난좌를 사용하는 농가들도 많이 보입니다. 사실 제 SNS 계정은 일반 소비자 분들도 많이 보시지만 농민들과 농업 관련 업종 분들도 많이 보십니다. 저의 영향력이 미미하게나마 있었구나 싶은 마음에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올해는 5월 날씨가 참 요상합니다. 장마도 아닌 것이 비도 너무 많이 오고 기온도 너무 낮습니다. 강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모든 작물이라는 것이 햇빛을 잘 받아야 잘 크고 맛도 좋아지는데 날씨가 이 모양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여름 과일들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하네요. 


며칠 전 세아유 정기배송 회원 한분이 포스팅에 '기후 환경에 따른 맛의 가변성을 인정하고 그와 상관없이 소비하겠다는 의미의 정기배송 신청인데, 꼭 그렇게 비장한 일도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참 감사하더군요. 


오늘은 토마토 수확 및 출고 작업이 있는 날입니다. 하루하루 농가와 통화하며 토마토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면 6월에 접어드는데 다가올 여름 과일들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하네요.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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