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씨아저씨 Sep 08. 2021

스티로폼 백사장

2021.05.27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제주에 있는 모 해변. 한겨울도 아닌데 백사장에 하얗게 눈보라가 치는듯한 광경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잊히지가 않습니다. 범인은 발포스티렌(스티로폼)이었습니다. 


녹색연합이 조사한 자료를 보면 제주 해변 미세 플라스틱 (1-5mm) 중 약 94%가 스티로폼이라고 합니다. 이제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한 해변의 풍경은 해외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의 제주 해변도 병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과일 장수를 하면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이 세아유 스티로폼 박스를 무코팅 종이박스로 전면 교체한 일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2017년 초반까지는 세아유 토마토도 스티로폼 박스에 포장을 했었습니다. 



토마토 등 신선식품을 포장할 때 스티로폼 박스를 쓰는 이유는 사실 기능적인 부분 때문입니다. 보온 보냉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크긴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스티로폼 박스를 써왔습니다. 


그러나 '미생' 오상식 과장의 말처럼 관습에만 충실하다 보면 드러나야 할 것이 가려지는 수가 있지요. 굳이 스티로폼을 쓰지 않고 종이박스를 써도 가능한 방법을 찾겠다고 마음을 먹고 준비를 하다 보니 사실 별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스티로폼 포장과 종이 박스 안에 500g 단위의 투명 플라스틱에 이중으로 포장을 하는 관습은 하루빨리 개선되길 바랍니다.  


이 일을 하면서 농가로부터 종종 연락이 옵니다. 입점 관련 문의도 있지만 90% 이상의 문의는 '종이 난좌' 어디서 구매할 수 있나요?입니다. 브런치나 제 SNS 포스팅을 보시고 연락을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사실 종이난좌 공장 찾는 것도 어려웠는지 지금은 종이 난좌를 사용하는 농가들도 많이 보입니다. 사실 제 SNS 계정은 일반 소비자 분들도 많이 보시지만 농민들과 농업 관련 업종 분들도 많이 보십니다. 저의 영향력이 미미하게나마 있었구나 싶은 마음에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올해는 5월 날씨가 참 요상합니다. 장마도 아닌 것이 비도 너무 많이 오고 기온도 너무 낮습니다. 강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모든 작물이라는 것이 햇빛을 잘 받아야 잘 크고 맛도 좋아지는데 날씨가 이 모양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여름 과일들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하네요. 


며칠 전 세아유 정기배송 회원 한분이 포스팅에 '기후 환경에 따른 맛의 가변성을 인정하고 그와 상관없이 소비하겠다는 의미의 정기배송 신청인데, 꼭 그렇게 비장한 일도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참 감사하더군요. 


오늘은 토마토 수확 및 출고 작업이 있는 날입니다. 하루하루 농가와 통화하며 토마토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면 6월에 접어드는데 다가올 여름 과일들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하네요. 휴...

작가의 이전글 정당화할수 있는폭력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