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를 위하여

붓과 망치로 지키고 있는 바티칸 뮤지엄(Mvsei Vaticani)

by 공씨아저씨

#004. Italy.Rome_day4


노트르담 성당의 슬픈 화재 소식을 들은 다음날 아침 우리는 바티칸 시국으로 입국했다. 가이드를 동반한 프로그램을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바티칸은 워낙 방대한 작품을 소장한 곳인지라 작품에 대한 이해 없이 혼자 관람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함께 했다. 아이들을 고려해서 전일 투어는 무리일 것 같아서 반일 투어로 신청했으나 사실 바티칸은 전일 투어로도 부족할 만큼 규모와 볼거리가 방대하다.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를 위한 곳이라는 가이드의 설명답게 박물관의 거대한 출입문에는 망치를 들고 있는 미켈란젤로와 붓을 들고 있는 라파엘로가 우리를 반겨준다.


원래는 이 문이 입장하는 문이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지금은 출구로만 사용한다고 한다.


물 반 고기반 아니고 작품반 사람반. 부활절 주간을 맞이하여 이탈리아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날로 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 북적이는걸 유난히 싫어하는 내 성격 탓이 아니더라도 이 곳은 정말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가이드님에게 표와 수신기를 건네받고 우리는 바티칸 속으로 들어갔다.


바티칸 뮤지엄 매표소


작품들을 좀 여유롭게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바티칸 뮤지엄이다. 로마에 오는 가장 큰 이유가 바티칸이라면 관광객이 적은 겨울에 오는 방법 외에는 없을 것 같다. 이제 이탈리아는 성수기와 극성수기만 있을 뿐 비성수기는 없는 나라가 되었다. 지금은 성수기에 해당되는 4월인데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정말 숨이 막혀서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던 하루였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당장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 아침 8시에 오픈하자마자 입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바티칸 뮤지엄에서 바라본 성 베드로 대성당
바티칸 뮤지엄 정원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변용' 원작


바티칸 뮤지엄 조각 정원으로 들어섰다. 관람 도중 바깥공기를 맡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잠시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라오콘 군상
벨베데레의 아폴로
비너스와 큐피드


오늘의 최종 종착지 성 베드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 규모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 내부도 규모만큼이나 웅장했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베르니니의 발다키노(baldacchino)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변용' 타일화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변용'. 원본은 박물관 내부에 전시되어있고 이건 레플리카이지만 타일로 만든 거대 모자이크화이다. 멀리서 보면 유화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정교함에 원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아침 7시 30분에 만나 오후 1시 30분까지 6시간 동안 진행되었던 바티칸 반일 투어를 마치고 바티칸을 나왔다. 바티칸 투어는 반일 투어도 종일 투어도 모두 힘들 것이다. 바티칸을 하루에 다 볼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사람들에 끼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직진 그리고 또 직진했던 기억만 남았다.


현재의 시스템 하에서 바티칸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일주일 정도 오전 3~4시간은 바티칸에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매일 와서 조금씩 관람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원본을 보고 엄청난 감동을 느낄 것이라는 상상은 물거품이 되고 그저 나가고 싶다, 앉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던 하루로 남고야 말았다. 관람객 수를 시간대별로 제한하지 않고서는 이 문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부활절을 준비하는 바티칸 광장은 분주한 모습이다.


예상했던 대로 공사원들은 작품에 전혀 관심이 없으시고, 가이드분이 설명을 해주실 때도 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그들만의 세계에 빠져계셨다. 이 분들과 이탈리아는 별로 적절하지 않은 조합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며 투어를 마치자마자 도망치듯 택시를 타고 숙소로 귀가하였다.


집 근처에서 후다닥 점심을 먹고 모두들 떡실신. 일어나 보니 밤 10시... 아이고 망했네. 그냥 자자... 다시 일어나 보니 다음 날 새벽 5시. 지금이다. 이탈리아에 와서 시차에 대해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몸은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4일 차에 찾아온 급격한 피로함. 그것도 하필 바티칸 투어를 하는 날에... 편하게 쉬다 오겠다는 기분으로 방문했던 어제의 아시시 여행이 새벽에 출발해서 밤늦게 귀가하는 일정 탓에 우리의 몸을 많이 힘들게 했던 모양이다. 앞으로의 일정도 조금은 수정이 필요하겠다 느꼈던 4일 차의 로마이다.


처음에 도시별 일정을 잡을 때 로마에 가장 많은 7박 8일의 일정을 할애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인 듯싶다. 로마를 보려면 7박 8일도 짧을 것 같다. 최소 로마만 10일 이상의 일정으로 와야 그래도 로마를 조금은 이해하고 갈 것 같다. 콜로세움과 트레비 분수 앞에서 기념사진만 찍을 계획이 아니라고 한다면 말이다. 이제야 로마의 거리가 조금씩 익숙해지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애초에 가려고 계획했던 곳을 아마 다 가지는 못할 듯싶다. 날이 갈수록 로마의 매력에 점점 빠져든다. 지금까지 이탈리아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다. 식당에서도 친절했고, 택시도 엉뚱한 길로 돌아가거나 동양인을 무시한다거나 하는 느낌은 아직 받아보지 않았다.




이 글은 이탈리아에서의 보름간의 개인적인 가족 여행 기록입니다. 여행 정보 전달을 위해서도, 맛집을 소개하기 위해서 쓴 글도 아닙니다. 제가 느낀 이탈리아의 모습을 사진과 함께 하루하루 기록한 개인 일기장입니다. 여행 전 정보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있다면 그냥 가던 길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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