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휴식이 필요하다면 보르게세로 가라

로마 안의 작은 천국

by 공씨아저씨

#005. Italy.Rome_day5


그동안의 시차와 피로가 쌓여서였을까? 어제 바티칸 투어에서 돌아온 이후에 가족 모두 떡실신하여 침대행. 밤 10시쯤 한 번씩들 깨고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침대행 그리하여 오늘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일찌감치 아침을 먹었다.


이탈리아의 음식은 과연 입에 잘 맞는가? 굉장히 짜다는 후기들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다만 연이어 2끼를 파스타와 피자를 먹는 것은 쫌... 특히 두 아들의 입맛이 완전 한식에 최적화되어있는지라... 한국에서 올 때 햇반을 딱 8개 가지고 왔는데 온 지 하루 만에 모두 소진. 어제 한인마트에 가서 햇반 20개 공수. 숙소 1층에 있는 중식당이 음식 맛도 괜찮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어서 구내식당처럼 이용하고 싶었다. 관광지의 레스토랑의 음식 가격은 그리 싸지 않았다. 4명 가족이 자릿세 있는 식당에서 한 끼 배불리 먹으려면 60유로 정도는 들더라는.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 팔라티노 언덕 3종 세트 입장권을 구입했는데 48시간 이내 사용해야 하는 티켓이었는데 아시시와 바티칸 투어 때문에 일정상 콜로세움만 보고 포로로마노와 팔라티노 언덕에는 올라가지 못했다. 그래도 어제의 꿀잠 덕에 컨디션은 회복되었다.


트레비 분수


트레비 분수에서 분수 소리를 듣기 위해 아침 일찍 트레비 분수로 향했다. 참고로 오전 10시면 로마의 모든 관광지들은 도떼기시장이 된다. 집에서 트레비 분수 가는 길은 이미 구글 지도로 여러 번 숙지했었고, 며칠 로마 시내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대강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졌다. 집에서 7시 10분쯤 출발했더니 트레비에 7시 35분 도착.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상쾌한 기분으로 트레비 분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구글 지도에서 본모습과 100% 일치했다.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가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거대한 조개껍질 모양의 마차에 올라서 있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다. EBS 세계 문화기행으로 사전 학습하고 오니 기분이 남달랐다. 실로 이른 아침의 트레비 분수는 고요한 바다 같은 느낌이다.



트레비 분수 소리 듣고 가실게요



로마에서의 둘째 날에 판테온에 갔을 때는 안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잘 안 들었는데 바티칸 투어를 다녀온 이후 판테온이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내부가 궁금해져 트레비에서 판테온으로 향했다. 판테온 오픈 시간은 오전 8시 30분. 로마는 관광객들이 많아서 그런지 주요 유적지의 오픈 시간이 비교적 빨랐다. 트레비에서 판테온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판테온에 도착하니 아직 오픈 10분 전.


타짜 도로에서 에스프레소를 한잔 입에 털어놓고 판테온으로 입장. 입장료는 없다. 에스프레소 한잔이 나의 피로 세포들을 잠재우는 듯했다. 사실 판테온 내부에 있는 라파엘로의 무덤을 보고 싶었던 것이 판테온 안으로 우리를 끌어들인 이유이기도 했다.


판테온 입구와 출구


판테온 내부
라파엘로의 무덤
늘 마차가 대기하고 있는 판테온


역설적으로 오늘 본 판테온은 둘째 날 왔을 때 보았던 것보다 작게 느껴졌다. 큰 것만 계속 보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그리 느끼는 듯싶다. 처음 본 판테온이 2XL 정도의 크기로 느꼈다면 오늘 본 판테온은 M 정도라고 할까? 이제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의 모든 것들이 당분간 작게 느껴질 것만 같다.


판테온에서 나오니 오전 9시 30분이 채 되지 않았다. 로마에 와서 가장 많이 본 곳이 조국의 제단이다. 다른 곳에 왔다 갔다 하는 길에 항상 통과하게 되는 곳인데. 마치 서울의 시청 같은 느낌이다. 도로의 구조도 그렇고 차들도 엄청 많다. 오늘은 조국의 제단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판테온에서 걸어서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거리를 거닐면 마주치는 다양한 풍경과 사람들은 차를 타고 다녔을 때는 느낄 수 없는 도보 자유여행만이 주는 큰 기쁨이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 출근으로 분주한 사람들로 붐비는 전형적인 도시의 모습. 시간이 너무 일러서인지 조국의 제단은 아직 오픈 전이다.



고개만 돌리면 역사이고 문화이고 예술인 도시 로마. 뭐가 걱정인가? 옆으로 돌아가니 캄피돌리오 언덕(Campidoglio)이 나온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타원형의 광장은 중앙의 별을 중심으로 기하학적인 패턴을 만들어낸다. 알면 알 수록 아름다운 광장.


캄피돌리오 광장
캄피돌리오 광장


어딜 가나 웨딩 촬영을 하는 신부의 모습과 사진사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포로로마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일정이 맞지 않아서 안에 들어가 보지 못한 아쉬움을 이렇게 달랜다. 식수대 아래에 사람들이 서있는 곳이 핫스폿이다.


포로 로마노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내려와 다시 조국의 제단으로 가니 관람객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봤을 때 보다 가까이서 본 조국의 제단은 실로 웅장했다. 어떤 곳이든 무조건 가까이서 봐야 하고 안에 들어가 봐야 그곳의 느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게 로마를 다니며 느낀 점이다. 멀리서 봤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로마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고 해서 올라갈까 말까 고민하다 다행히 아이들은 무료라 성인 입장료만 내고 올라갔다 왔다. 로마 시내가 한눈에 보이긴 하는데 꼭 올라와볼 정도는 아니었다.


조국의 제단으로 가는 길에 만난 앤디 워홀과 잭슨 폴록
전망대 앞 매표소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우리는 보르게세 미술관으로 향했다. 매일 도보로 이동하다가 어제의 피로함과 보르게세까지 가는 길이 걷기엔 조금 멀어서 처음으로 택시를 타봤다. 마이 택시라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에 공통적으로 있는 서비스인 것 같은데 우리나라의 카카오 택시랑 비슷하다. 결제할 카드를 미리 등록해 놓으면 따로 카드나 현금 꺼내서 결제할 필요 없이 요금 확인하고 결제 오케이 슬라이드만 쓱하면 된다. 기사님에게 목적지를 따로 설명하거나 불필요한 대화가 필요 없어 관광객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로마의 택시 요금은 우리나라보다 조금 비싼 편이다. 로마에는 버스와 택시만을 위한 전용차로가 많아서 특별한 정체 없이 잘 갔다. 오늘 만난 기사님은 케빈 코스트너를 닮았다. 기사님에게 이야기해주니 무척 좋아했다. 칭찬은 기사의 엑셀을 꽉 밟게 한다. 보르게세에 금방 도착했다.


버스, 택시 전용차선
보르게세 입구


보르게세는 로마 일정 중에 놓치고 싶지 않은 중요한 일정이었다. 특히 예술하시는 분들이 보르게세는 꼭 가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고, 입장 시간별로 인원 제한이 있어서 티켓은 이미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하고 갔다. 우리는 오후 1시~3시 관람 티켓을 예약했다. 어제의 바티칸에서의 악몽에서 해방시켜준 보르게세는 너무나도 쾌적한 분위기에서 관람을 했다.


Borghese
티켓마다 인쇄된 작품이 다르다 소장욕구 불끈~


가이드의 설명 없이 관람을 한터라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을 듣지는 못했으나 구글의 도움을 받아가며 전시장의 작품들을 비교적 여유 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서양미술사에 대해 차근차근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베르니니의 '페르세포네의 납치'


물론 보르게세에서도 두 아들 녀석은 지겨워 디질라했다. 보르게세는 미술관뿐만 아니라 공원이 엄청나게 컸다. 동네 주민들 산책 나오는 그런 느낌. 로마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하루 푹 쉬어도 좋은 곳이다.


미술관 앞 잔디밭
공원에서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오늘부터는 무리하지 않은 일정으로 앞으로 남은 이탈리아에서의 일정을 소화하기로 결심했기에 보르게세에서 3시쯤 출발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젤라토 가게에 들러 젤라토 한 컵씩 빨면서 숙소까지 걸어왔다. 이탈리아에 와서 생각보다 많은 젤라토를 먹지는 못했다. 정해진 일정들이 있어서 그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젤라토 먹을 기회가 생각보다 자주 없었다.


오늘은 동네 젤라토 집에 갔었는데 지금까지 갔던 곳 중에 양을 가장 많이 줬다. 보통 평균 작은 컵 하나에 2.5유로 하는 것이 보통이고, 2가지 맛을 주는 곳이 대부분이었으나 오늘 갔던 젤라토 가게는 3가지 맛이나... 젤라토를 건네받은 아들놈이 코앞에서 젤라토를 땅바닥에 떨어뜨리는 대참사가 발생했으나 친절한 점원이 다시 새 걸로 퍼주는 친절을 베풀어줘서 또 와야겠다는 생각을... 역시 골목상권이 진리다.


The Borgia Steps


집에 와서 빨래도 돌리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5시쯤 동네 산책을 나섰다. 동네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곳곳에 뜻깊은 유적지가 널려있는 곳이 로마다. 우리 숙소에서 걸어서 3분만 가면 되는 곳에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묶여있던 쇠사슬이 전시되어있는 성당이 있었다. 겉에서 보기에는 절대로 성당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내부로 들어가니 박물관이 따로 없었다. 벽화와 천정화는 기본이고 미켈란젤로의 3 대작품 중 하나인 모세상이 이곳에 있다니. 동네 성당의 위엄이란... 성당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참 멋지다. 계단 중간에 아코디언 연주를 하는 거리의 악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뜨거운 박수와 함께 2유로를 놓고 왔다. 다정한 연인들의 모습은 어딜 가나 덤이다.


쇠사슬의 성 베드로 성당 (Basilica di San Pietro in Vincoli)
미켈란젤로 3 대작 중 하나인 모세상
베드로의 쇠사슬


성당 옆에는 무슨 대학교도 하나 있었는데 옆에 피자집이 하나 보였다. 한눈에 봐도 유명한 레스토랑도 아니고 그냥 흔한 동네의 패스트푸드 점 같은 느낌이었지만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다. 한국 기준으로 라지 사이즈 한판에 콜라 1 세트메뉴가 8유로. 이거 어찌 다 먹을까 걱정이 좀 있었는데 웬걸... 그냥 쭉쭉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이탈리아 오기 전에 맛집 리스트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냥 돌아다니다 맛있어 보이면 들어가기로 했었는데... 로마의 음식은 기본빵은 다 하는 듯하다. 이번 여행 중에 음식 사진은 따로 찍지 않고 열심히 먹기만 했다.


성당옆의 대학교와 그 앞에 위치한 피자집


집에 잠시 들어와 쉬다가. 8시가 가까워지자 해가 지는듯해서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콜로세움 야경을 볼 수 있겠다 싶었다. 집 앞에 콜로세움이 있는 장점. 언제라도 콜로세움에 갈 수 있다는 심리적 편안함과 밤길 걱정 없겠다 싶었다. 숙소에서 콜로세움까지는 걸어서 7분 거리? 한 블록 떨어져 있다. 숙소 1층에서 바로 보일 정도이니.

동네 약수터 산책 가듯 다녔던 콜로세움


캬... 때마침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준다. 이런 완벽한 시추에이션이라니... 콜로세움의 야경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는 나는 분명 축복받았음에 분명하다. 아시시에 갔을 때 십자가 목걸이를 하나 사서 하고 다닌 것이 교황님께서 은총을 주신듯하다.



이렇게 오늘 하루가 끝났다. 내일은 기다리던 남부 투어. 하루로 다녀오는 게 너무 아쉬울 것 같긴 하지만 포시타노의 바다는 한 번 보고 싶었다. 바티칸 투어 이후 공사원들과 미술관은 상극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피렌체에서 가기로 예약했던 우피치 투어는 오늘 과감하게 취소했다. 그냥 동네 어슬렁 거리는 게 훨씬 더 로마를 잘 이해할 것 같아서 말이다.


가족 여행이란 그런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는 없는 포기와 타협의 연속...




이 글은 이탈리아에서의 보름간의 개인적인 가족 여행 기록입니다. 여행 정보 전달을 위해서도, 맛집을 소개하기 위해서 쓴 글도 아닙니다. 제가 느낀 이탈리아의 모습을 사진과 함께 하루하루 기록한 개인 일기장입니다. 여행 전 정보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있다면 그냥 가던 길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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