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을 피렌체에서 보내야 하는 이유
#009. Italy.Firenze_day2
피렌체에서의 둘째 날이 밝았다. 오늘은 부활절이다. 의도하고 계획을 짠 건 아니었는데 여행 계획을 잡고 보니 부활절이 피렌체 일정의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었다. 부활절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이라는 것과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기 때문에 밥 먹기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요즘은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문을 연 상점과 식당도 많아서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부활절 기간엔 숙소 가격도 좀 더 비싸고 심지어 기차표 가격도 비싸다.
새벽 5시 30분에 눈을 떴다. 두오모까지 걸어서 산책을 나섰다. 피렌체는 아침 6시면 환하게 밝아진다. 해 뜰 때의 하늘이 마치 석양처럼 핑크빛으로 물드는 것이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조금은 색다른 풍경이었다. 새벽녘 푸르른 기운의 두오모를 만날 수 있었다.
두오모 근처로 가니 벌써부터 부활절 행사 준비로 경찰들이 펜스를 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로마에서도 그랬지만 북적북적한 관광지를 여유 있게 보고 싶다면 아침 일찍 가는 것이 참 좋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서 만난 피렌체의 거리는 아름다웠다. 건물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성화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오래된 벽화들이 가득한 것이 가톨릭의 나라답다.
피렌체에서 만난 인상적인 것 중에 하나가 거리의 쓰레기 분리수거 통이다. 새벽마다 두오모로 조깅 나갈 때마다 쓰레기 어떻게 처리하나 관찰했다. Alia라는 업체에서 전담을 하는 것 같은데 새벽에 저 회사의 거대한 쓰레기차가 와서 저 철로 된 쓰레기통을 (쓰레기통 아래에 거대한 쓰레기 매립 통이 있어서) 통째로 번쩍 들어 올려서 쓰레기를 비우고 다시 제자리에 꽂아놓는 방식으로 처리하는 걸 봤다.
피렌체에서는 해마다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앞에서 피렌체 부활절 불꽃놀이 스코피오 델 카로(Scoppio del Carro)를 하는 행사가 유명하다고 한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리는 그런 곳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성격에 신자도 아닌 탓에 부활절이 나와는 무슨 관계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부활절을 피렌체에서 보내는 최고의 볼거리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했으면 절대 안 갔을 텐데 말이다.
불꽃놀이 행사는 11시에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침을 먹고 9시 30분쯤 광장으로 향했다. 와우~~ 벌써부터 길게 늘어선 줄... 행사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서 펜스 밖에서만 가능한데 최대한 펜스 가까운 곳으로 가기 위해 사람들이 그렇게 일찍부터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신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큰 볼거리일 테니 말이다.
메인광장의 줄을 보니 기다렸다가 가도 먼발치에서나 까치발로 겨우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쪽으로 가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골목을 빙 둘러서 메디체아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을 둘러서 가보니 그쪽에서도 줄이 서있었는데 생각보다 줄이 짧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 없어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아침마다 조깅하며 동네 지리를 머릿속에 담아둔 덕을 좀 보았다.
측면에서 볼 수 있는 줄이었는데 다행히 정문 쪽 보다 조금 더 앞쪽에서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개방하지 않던 문 하나를 열어주더니 성당 바로 옆까지 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거의 펜스 바로 앞에서 행사를 볼 수 있는 위치를 겟했다.
이제 행사가 시작하려나 보다. 세례당에서 세례를 받은 무리들이 사제복을 입은 분들의 뒤를 이어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가 행사장으로 다시 나왔다.
교황님은 아니고 주교 추기경님이 미사를 마치고 광장을 한 바퀴 돌면서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성수를 뿌려주었다. 운 좋게도 성수를 맞고 성수를 맞은 월계수(?) 나무줄기도 하나 받았다. 비록 나는 신자는 아니지만 거대한 인파와 함께 관람한 부활절 행사는 감동적이었다. 주위에 신자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 감격스러워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부활절 불꽃놀이 스코피오 델 카로(Scoppio del Carro)를 시작하였다. 엄밀히 말하면 폭죽놀이에 가까운에 정말 대포가 터지는듯한 큰 소리를 내며 폭죽이 20분 가까이 터지기 시작하는데 장관이었다. 부활절에 피렌체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볼거리를 선물로 받은 기분이었다.
부활절 행사 관람을 무사히 마쳤으니 이제 점심을 먹으러... 피렌체는 가죽과 함께 스테이크가 유명하다. 가죽이 필요해서 소를 잡으니 고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 먹는 것에 목숨을 걸진 않지만 그래도 피렌체에서는 티본스테이크는 꼭 한번 먹어보겠다고 다짐했었다. 어디를 갈까 하다 zara라는 곳이 좀 유명하다고 해서 갔더니 예약을 하지 않았더니 3시나 돼야 자리가 난다고 해서 동네 근처 할머니가 하는 오래된 작은 스테이크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겉에서 보기에는 그냥 동네 작은 정육점처럼 생겼는데 안으로 들어가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알고 보니 첫날 갔던 소시지 가게 옆집이 바로 정육점과 레스토랑을 겸한 우리나라 치면 정육식당이었다.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식당은 아니었다. 주인아저씨가 직접 스테이크를 뼈에서 발라서 먹기 좋게 잘라주며 어떻게 먹는 게 맛있는지에 대해서 너무도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블랙페퍼에 찍어 먹는 것을 가장 권하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블랙페퍼와 엑스트라 버진을 믹스해서 찍어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이야기해줬다. 역시 시내 중심부보다는 동네 식당이 최고다. 대접받고 식사하는 기분을 느꼈다.
티본스테이크는 정말 예술이었다. 하루 3끼를 스테이크만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맛있었다. 로마에서 먹었던 피자나 파스타가 오... 맛있네 정도였다면 피렌체에서의 스테이크는 감동 그 자체. 둘째 녀석 음료는 grape 주스를 시켰는데 이상한 주스가 나와서 그레이프 주스 시켰는데 왜 이걸주냐고 물었더니 이게 그레이프 푸르트라고 맞다고... 사전을 찾아보니 자몽을 메뉴판에는 grape라고만 표기를 해놔서 우리가 착각을 한 거였다. 덕분에 공부한 과일 장수.
저녁에는 낮에 갔다가 실패한 zara에서 또 스테이크를 먹었다. 입구에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더니 한국어로 되어있는 메뉴판을 딱~~ 그런데 사실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너무 관광 전문 식당 같은 느낌이라... 잘 몰라도 이탈리아어로 된 메뉴판을 보며 어렵게 어렵게 주문하는 것도 여행지에서의 재미라면 재미인데 말이다.
저녁을 먹고 야경을 보기 위해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향했다. 이탈리아 와서 처음으로 버스를 탄 순간이었다. 소매치기에 대한 위험 때문에 가급적 버스나 지하철은 타지 않고 도보로 다니려고 했던 게 이번 여행 계획이었는데 둘째 녀석이 어제부터 발목이 좀 아프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계획 변경. 버스표는 기사에게 사면 조금 비싸고 동네 만물가게 같은 곳에서 파는데 1장을 100분 동안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이라고 한다. 가격은 1인당 1.5유로. 올 때도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에 8장을 구입했다. 로마에서 몇 번 이용하던 마이 택시는 피렌체에서는 운행을 하지 않았다. 피렌체는 택시 정류장이 버스 정류장처럼 거리 중간중간에 있는데 택시를 타는 것이 로마처럼 편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거리에 택시가 자주 보이지도 않았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올라가니 미켈란 젤로 언덕에 도착. 쿠폴라 돔과 함께 피렌체의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 경치는 장관이었다. 언덕에는 아경을 보기 위해 일찌감치 올라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언덕에 자리를 잡고 맥주나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여기까지 웨딩 촬영을 온 사람들도 있었다.
여기는 보통 8시 정도부터 해가 지기 시작하는 것 같아서 7시 30분 정도부터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로마에서보다는 해가 조금 늦게 지는지 8시 20분 정도가 지나서야 야경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어느덧 해는 저물고 작은 불빛들이 도시 전체를 수놓았다. 밤에 보는 피렌체의 모습은 더 아름다웠다.
이번에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것 중에 하나가 관광지에 한국인이 보이면 별로 반갑지 않다는 것. 블로그가 여행을 망친다고 식당에서도 똑같은 메뉴들만 시키고 어딜 가나 지정된 스폿에서 셀카를 찍느라 여념이 없다. 인스타에 올릴 사진과 카톡 프로필 사진을 찍으러 온 듯하다. 나도 한국인이지만 여행을 즐긴다는 느낌보다는 뭔가 임수를 완수하러 온듯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남들이 해보지 않는 일도 해보고 실패도 해봐야 여행을 통해 배우는 것도 있지 않을까? 교과서(블로그)에서 알려준 대로 다니는 여행이 과연 재미있을까?
9시 정도까지 피렌체의 야경을 보고 버스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소매치기로 의심되는 아저씨가 한 명 있었는데 나의 강렬한 눈빛에 이래 꼬랑지를 감췄다. 이렇게 피렌체에서의 두 번째 밤이 지나간다.
이 글은 이탈리아에서의 보름간의 개인적인 가족 여행 기록입니다. 여행 정보 전달을 위해서도, 맛집을 소개하기 위해서 쓴 글도 아닙니다. 제가 느낀 이탈리아의 모습을 사진과 함께 하루하루 기록한 개인 일기장입니다. 여행 전 정보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있다면 그냥 가던 길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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