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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치와 플라스틱

2021.07.16

by 공씨아저씨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어제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 이미지를 보고 문의를 주신 분이 한분 계셨습니다.


"토마토 주스 용기 입구의 플라스틱이 없으면 안 되나요?"


IMG_9034.JPG


제가 작년에 토마토 주스를 만드는 과정을 포스팅하며 이 부분에 대해서 이미 설명해드린 바 있고, 사실 상품 상세페이지에도 나와있는 부분인데요.


저희도 토마토 주스를 만들면서 포장 방법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환경 및 포장 자재에 대한 고민은 사실 이 일을 처음 시작하기 전 아주 오래전부터 고민하던 부분이고 일을 하면서 하나하나 조금씩 실천해가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그 속도가 무척 더디다고 느끼실지 모르지만요.


저희가 토마토 주스를 만들면서 실천한 부분은 종이의 분리배출 시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종이 박스는 코팅 처리를 하지 않은 박스로 제작한 것이 있고(코팅 박스는 재활용률이 많이 떨어집니다) 아직 실천하지 못한 부분이 바로 파우치 부분입니다.


사실 파우치 만드는 것 자체가 이미 반환경적인 일이기 때문에 토마토 주스를 만드는 시작 단계에서부터 저는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가공품을 가급적 취급하지 않습니다. 현재 취급하고 있는 가공품인 토마토 주스와 복숭아 병조림도 작년부터 판매를 시작했고요.


여기서는 가공품 판매의 문제를 따로 말씀드리지는 않고 파우치 부분에 대해서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현재의 스파우트 파우치(꼭지가 있는 방식)는 비닐과 플라스틱이 함께 들어있는 방법입니다. 스파우트 파우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친환경 학교 급식 납품 때문이었습니다.


스파우트 파우치는 비닐과 플라스틱(HDPE)을 별도로 분리배출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재활용되지 못하고 일반 쓰레기로 처리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장 좋은 플라스틱이라는 표현 자체가 모순이 있지만 한 가지 재질(동일 소재)로 만든 플라스틱(비닐) 포장재가 실제로 재활용을 하기 가장 쉽다는 이야기 또한 들었습니다. 그래서 향후에는 1가지 재질의 비닐로만 되어있는 포장재로 개선을 하려고 이미 작년부터 논의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닙니다. 보통 여러분들이 흔히 보시는 저런 주스(즙)류의 파우치는 롤(roll) 단위로 제작을 하는데 최소 1 롤 단위로만 인쇄가 가능합니다. 1 롤을 찍으면 저희 주스 파우치가 12만 장이 나옵니다. 저희 주스 1박스에 20포가 들어가니 6,000박스가 나올 수 있는 분량의 파우치입니다.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파우치 타입을 바꾸려면 주스 공장에서 사용하는 장비도 바꿔야 하고 작업 라인 자체가 달라지는 부분 때문에 저희 의지로만 일을 진행하는 데는 무척 어려움이 있습니다. 대규모 공장이 아닌 소규모 공장에서는 더더욱이요


상품페이지를 자세히 읽어보시면 아마 저희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노력을 해서 이 토마토 주스가 나오게 됐는지 조금은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포장재의 개선은 저희도 계속 고민하고 있고 공장 측과 계속 이견 조율을 하고 있는 중이지만 언제부터 포장 방식을 바꾸겠다고 확답을 드리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계속 노력은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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