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4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여러모로 되는 일도 없고 세상도 뒤숭숭하고 멘탈이 나갈랑말랑하는 요즘 매일 책을 읽습니다.
농산물을 유통하는 일은 농업의 테두리에 있는 일이고 굳이 카테고리를 나누자면 농업인의 범주안에 들어오지만 스스로를 농업인이라고 해도 될지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농사에 'ㄴ'자도 모르는 제가 농업이라는 고귀한 밥상에 밥숟가락 하나 얹어 놓는 것 같은 죄책감 때문이었습니다.
그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해 업계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공부했고 가장 많은 시간은 글로 접한 농업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고 핵심만 뽑아서 귀에 쏙쏙 들어오게 때로는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타 강사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이 있었으니 농촌 사회학을 연구하는 정은정님이었습니다.
농업을 학문적으로 공부해본 적은 없기에 정은정님의 글은 마치 저에게는 바이블과도 같았습니다. 글로만 흠모해오던 그를 2017년에 동료들과 진행했던 팟캐스트 패널로 초대했습니다. 우리 팟캐스트에 출연한 이후 정은정님은 각종 방송계를 넘나들며 떠오르는 블루칩이 되었고 우리는 우리 방송이 정은정님을 키워냈다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글도 잘 쓰면서 말도 잘하는 천상계에서나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저는 앞으로 정은정 라인을 타겠다고 다짐도 했었습니다. 비록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우리를 이빨 털어서 농산물 팔아먹으시는 분들이라는 뼈 때리는 말씀을 남기고 가셨지만 말입니다. 기사 쓰면서 유통의 현업의 목소리를 듣고자 할 때 가끔 저에게 전화가 오기도 합니다.
팟캐스트에 나와서 농업의 미래를 물어본 우리의 질문에 정은정님은 농촌의 아름다운 소멸을 지켜보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저는 그 말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습니다. 최근 탄소 중립과 관련해서 농업 분야에서도 많은 논의가 되고 있지만 결국 전통적인 농업은 소멸하고 식량 생산업이 그 일을 대체하겠구나라는 확신이 최근에 들었을 무렵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정은정님과 저는 같은 해에 태어났습니다.(정은정 라인 묻어가기) 같은 시대를 살아왔지만 그의 책 속의 글을 읽고 있으면 이 사람은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마치 선배에게 한수 아니 여러 수 배우는 기분이 드는 것은 저에게 늘 의문의 1패를 안깁니다.
책 좀 팔아서 살림살이가 얼마나 나아지시겠느냐만은 그래도 책 많이 팔리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농업 이야기이니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5산입니다. 농업의 이야기는 먹고 사는 이야기이고 곧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사회학적으로 바라보는 그의 글은 늘 감동입니다. 적절한 해학과 페이소스는 보너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