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30
'감귤도 곧 딸기에 잠식당하겠군' 싶던 게 불과 두세 해 전이었는데 이제 딸기가 겨울 과일의 왕좌 자리에 오른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아직도 딸기는 봄이 제철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라떼 소리 들으시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뭔가 점점 더 앞당겨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요. 복숭아 구입할 수 없냐는 문의가 겨울에도 종종 옵니다. 만감류가 시장에 등장하는 속도도 점점 더 당겨집니다. 레드향과 한라봉이 벌써 시장에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시장에서 의도적으로 시기를 앞당기는 움직임도 있지만 기후 변화로 앞당겨지는 부분도 생각해야 합니다. 올해만 해도 여름 폭염으로 가을과 겨울 과일의 수확 시기가 평균 열흘 정도 당겨진 듯합니다. 제가 10여 년 과일 장수를 하면서 경험한 기후 위기는 겁이 날 정도입니다.
며칠 전 넷플릭스에서 돈 룩 업(Don't Look Up)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영화가 아닐까 싶은데요. 기후 위기로 인한 지구의 멸망을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것에 빗대어 표현한 블랙코미디인데 저는 재난 영화로 느껴졌습니다.
요즘 저의 가장 큰 관심사는 온실가스, 탄소중립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농업 분야이다 보니 농업 쪽에서는 어떤 대책을 갖고 움직이고 있는지 세미나도 듣고 그린피스 COP26 온라인 강연도 들으면서 유심히 살피는 중입니다. 탄소중립 이슈는 아주 가깝게 우리에게 다가온 필수의 영역임에도 아직 많은 분들이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COP26, 탄소중립 2050 이런 말들은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건 우리나라에서만 적용되는 게 아니고 전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이미 선진국으로 분류가 되어있는 대한민국이기에)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겠습니다. 2030년까지 1,800만 톤 2050년까지 1,540만 톤까지 줄여야 하고 당장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를 감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린피스 전문위원의 말을 빌리자면 현재 우리 기업들의 분위기는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서로 너도 안 했지? 그럼 나도 버티면 되겠네. 뭐 큰 일 있겠어? 뭐 이런 식이라는 거죠. 그런데 당장 눈앞의 과제들은 꽤나 시급합니다. 저도 깜짝 놀랐는데요.
2020~2035까지 달성해야 하는 것들은 우선 2025년까지 석유, 석탄, 가스보일러 판매를 금지해야 하고, 2030년까지는 전 세계 자동차 판매 전기차 비율 60% 달성, 2035년까지는 대부분의 가전 기기 및 냉방 장치 에너지 효율 최고 등급만 판매, 대형 트럭 판매 중 전기 트럭 비중 50% 달성,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등을 해야 합니다.
농업 분야에서는 주로 축산업 분야에서 해결해줘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대체육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는 것을 예의 주시해야 합니다. 자본의 움직임을 보면 미래가 보입니다. 비극적인 일이긴 하지만 이제 농업도 식량 생산업으로 바뀌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봅니다. 낙관적으로 미래를 볼 어떠한 근거도 없습니다.
토경 재배 과일이 사라지는 날도, 노지 재배 과일이 사라지는 날도 곧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2021년 현재 우리가 먹는 딸기의 대부분이 고설재배(High-bed) 딸기라는 것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