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no farmers but farmers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채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7년 차에 접어든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농산물 유통구조는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외모 지상주의'가 농산물 시장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크기가 작거나 못생긴 과일을 차별하지 않는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했다.
농사 안 짓는 농부들
농산물 유통을 하는 4명의 아저씨가 만나서 '농사 안 짓는 농부들'이라는 프로젝트 팀을 결성하기까지의 과정과 우리의 활동들. 그리고 2017년 4월 7일 첫 녹음을 시작으로 9월 30일 마지막 공개방송 녹음까지 숨 가쁘게 달렸던 네 남자의 팟캐스트 언더-그 라운드. 2부작으로 기록할 이 글은 농사 안 짓는 농부들의 시작과 언더-그 라운드 1주년을 자축하는 의미로 방송 6개월간의 여정을 정리한 기록지다.
농산물 유통을 하는 젊은 청년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처음 만날 때는 모두 청년들이었지만 이제 중년이 된 멤버도 있다. (참고로 통용되는 청년의 기준은 만 39세까지다.) 처음 만난 시점에 각자의 차이는 있지만 2011년 즈음하여 네 명의 완전체가 탄생하였다. 우리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이 바닥에 젊은 청년들이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또래의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자석에 이끌리듯 만나게 되었다.
농사를 안 짓는데 웬 농부? 말이냐 방귀냐?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 넷은 서로 경쟁업체의 관계였지만 처음 만날 때부터 우리는 서로를 '경쟁자'로 생각하기보다는 같은 길을 향해 걸어가는 '동지' 바라보았던 것 같다. 시간은 조금씩 흘러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소중한 친구다. 우리 넷을 하나로 만든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가 바라보는 공통의 본질적 가치에 있었다. 그것은 농업의 중심에 '농부'가 있다 는 상식을 바탕으로 농부와 호흡하며 농산물을 판매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렇게 알고 지낸 세월이 4~5년 즈음 지난 때였을까? 2014년 우리가 무엇인가를 같이 해보면 어떨까?라는 가벼운 이야기를 던졌고, 때마침 우리가 회원으로 있는 국제 슬로푸드한국협회에서 주관하는 '2014 슬로푸드 위크' 개최 소식을 듣고 함께 부스를 얻어 참가해 보자는 합의를 하였다. 당시 어프로젝트 천재박은 쌈지농부라는 회사의 소속이라 별도 부스로 참여를 한 관계로, 한민성, 박종범, 공석진 이렇게 세 사람만 한 팀으로 출점을 하였다.
팀 이름이 필요했고 급작스럽게 만든 이름이 '농사 안 짓는 농부들'이다. 비록 우리가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농부'의 마음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박종범이 아이디어를 냈고 우리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오케이를 외쳤다. 훗날 박종범이 대표로 있는 농사펀드의 시작도 이 작은 모임에서 출발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이 주목할만한 콘셉트가 필요했고 당시 유행하던 배달의 민족 광고 카피를 패러디해서 대형 현수막을 제작해서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우리는 이듬해인 2015 슬로푸드 국제 페스티벌에도 함께 팀으로 참가했다. 아쉽지만 2015년에도 천재박은 회사 소속이었던지라 함께하진 못했다.
2016년 1월호 '행복이 가득한 집'. 2015 슬로푸드 국제 페스티벌 특집 코너에 우리의 이야기가 소개되기도 했다.
함께 팀이 되니 더 많은 에너지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활동을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는 분들도 늘어나서 2016년 5월에는 성북구 친환경 급식 학부모 모니터링 회원분들을 대상으로 작은 특강을 하기도 하였고, 종종 장터에서도 러브콜이 들어왔다. 그 해 봄에는 노들섬에서 열린 노들장에 함께 출점을 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 천재박과 한민성을 장가보냈다. 천재박은 작년에 쌍둥이의 아빠가 되었고, 결혼식에서 육체가 허락하는 한 생산을 멈추지 않겠다고 공약했던 한민성은 아직도 알콩달콩이다.
혼자 있을 때는 하지 못했던 일, 보지 못했던 것들을 서로가 함께 있으니 할 수 있었고, 보이기 시작했다. 서로 함께 있음으로 해서 얻는 시너지가 크다는 경험을 통해 내친김에 사무실을 함께 쓰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둘러앉은 밥상이 사무실로 쓰고 있던 재개발을 앞둔 길음동 소재의 모 공간에 우리는 모였다. 농사펀드도 이곳을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나도 잠시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세 남자의 브로맨스가 시작된 공간이다.
재개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곳을 나가야 되는 시점이 왔고, 우리는 함께 일할 수 있는 공동 사무실을 찾기 시작했다. 3회사 모두 스타트업이었기에 자본금이 많지 않아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 이전에 필요한 보증금을 비롯해서 에어컨 등 필요한 설비들을 마련하기 위해 공개 구걸을 시작했다.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기 위해 당시 함께 쓰던 사무실 뒤편의 재개발 철거현장을 배경으로 셀프 포스터 사진 촬영까지 진행했다. 다행히 모든 일은 순조로웠다. 사무실 임대에 필요한 보증금을 선뜻 빌려주신 분도 계셨고, 사무실에 필요한 에어컨을 사주신 분도 소파, 냉장고, 책상, 각종 사무집기의 후원이 이어졌다.
그리하여 2015년 겨울부터 2016년 말까지 우리는 강북구에 위치한 새로운 사무실에서 함께 생활하였다. 그 기간은 참으로 짧았다. 일 년 사이에 박종범이 대표로 있는 농사펀드의 직원수가 부쩍 늘어난 탓에 독립을 해야 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1년간의 세 남자의 동거생활은 막을 내렸다.
늘 잦은 야근과 지방 출장으로 이제 친구들을 만나기도 어렵게 되어버린 농사 안 짓는 농부들. 그냥 서로 답답하고 힘들 때 쓰러지지 않도록 서로 힘이 되고 위안이나 삼자고 네 남자가 모여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기록으로 남겨놓자는 의견이 나왔고 우리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이 업계만의 이야기로 팟캐스트 방송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2015년 말 '당신의 물건'시즌2 팟캐스트에 게스트로 출연한 것이 인연이 되어 만난 김민규 PD가 프로듀싱을 맡아주었고, 새로운 사회자 김나영 씨와 '당신의 물건' 진행자 박향주 씨가 전반기, 후반기의 진행을 나눠서 맡아주었다.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광고도 협찬도 없이 오직 우리 힘으로 시작했다.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서 4채널 믹서와, 마이크 등을 구입했고 둘러앉은 밥상 사무실은 자연스럽게 녹음실로 변신하였다.
우리 모두가 농업분야의 전공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늘 공부하며 좌충우돌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던 터라 우리들이 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조금은 조심스럽고 두렵기도 한 것이 사실이었다. 어쩌다 보니 우리의 입장이 이 땅의 농업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많은 선배들과 이제 농업에 뛰어드는 젊은 청년들 사이에 애매하게 끼어있는 낀세대가 되었고, 그만큼 어떤 책임감 같은 것도 생겼다. 언더-그 라운드는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회사에 소속되어 늘 함께하지 못했던 천재박은 방송 시작 전 자유의 몸이 되어 어프로젝트라는 회사를 창립하였고, 그간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을 로고 디자인과 시그널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자신을 뮤지션이라고 소개하는 천재박은 훗날 이 음악이 빌보드 싱글차트에 오를 것이라는 이야기도 남겼다. 뮤지션 천재박이 작곡한 언더-그 라운드의 시그널 음악을 들으며 농사 안 짓는 농부들의 언더-그 라운드의 6개월간의 여정은 2부에서 만나보기로 한다.
나는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아울러 농부들의 수고스러움에 대한 ‘가치’를 ‘같이’할 수 있도록 농부의 마음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려고 한다. ‘농사 안 짓는 농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