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언더-그 라운드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채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7년 차에 접어든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농산물 유통구조는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외모 지상주의'가 농산물 시장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크기가 작거나 못생긴 과일을 차별하지 않는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했다.
언더-그 라운드의 시작
농산물 유통을 하는 4명의 아저씨가 만나서 '농사 안 짓는 농부들'이라는 프로젝트 팀을 결성하기까지의 과정과 우리의 활동들. 그리고 2017년 4월 7일 첫 녹음을 시작으로 9월 30일 마지막 공개방송 녹음까지 숨 가쁘게 달렸던 네 남자의 팟캐스트 언더-그 라운드. 2부작으로 기록한 이 글은 농사 안 짓는 농부들의 시작과 언더-그 라운드 1주년을 자축하는 의미로 방송 6개월간의 여정을 정리한 기록지다.
땅(ground)에서 시작하는 농사. 그러나 그동안 땅속에 갇혀 있던 농업과 먹을거리에 관한 불편한 진실들. 각 분야의 숨어있는 전문가들을 초대해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본 방송을 통해 불편한 진실들을 공론화시키고자 합니다. 농사 안 짓는 농부들의 '언더-그 라운드' - 오프닝 멘트
농사 안 짓는 농부들의 저품격 해적방송 언더-그 라운드는 이런 오프닝으로 시작한다. 언더-그 라운드라는 이름을 지은 것도, 오프닝 멘트를 쓴 것도 나다. 조금 올드한 느낌이지만 다소 세운상가스럽고, 불법까지는 아니지만 음지의 이야기를 다루는 비밀스러운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 어디에서도 하지 않았던 농업 분야의 이야기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쏟아내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말이다. 마치 영화 '볼륨을 높여라'(Pump Up The Volume, 1990) 크리스찬 슬레이터가 된 느낌이었다.
언더그라운드는 총 12화로 기획을 하였고 1화는 1부와 2부로 나눠서 방송을 하였다. 각 화 별로 주제를 정하고 1부는 우리 네 명이 자유롭게 토론을 하는 방식, 그리고 2부는 게스트를 초대해서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으로 구성했다. 12개의 주제는 이미 방송 시작 전에 모두 기획이 끝난 상태였다. 주 1회 업로드 총 24주(6개월)의 방송 여정은 이렇게 시작했다. 아무도 듣지 않아도 중간에 방송을 멈추는 일은 없기로 약속하고 말이다.
우리가 방송에서 하고자 한 이야기는 오프닝 멘트에서도 밝혔듯이 농업과 먹을거리다. 농사, 농부, 유통, 음식, 요리 등 모두 농업의 범주안에 들어있지만 잘 인식하지 못했던,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게스트를 섭외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섭외하기 편한 게스트보다는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분들을 모시고 싶은 욕심이 컸다. 다행히 4명의 브로들은 온갖 인맥을 동원해서 각 회별로 우리가 원하는 게스트를 모두 초대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언더-그 라운드와 함께 해주신 모든 게스트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농잘알 아재와 농잘못 처자의 만남
2017년 4월 7일 미아리 어느 골목에 있는 우리들의 아지트 둘러앉은 밥상에서 첫 방송을 시작했다. 첫 화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사실 우리끼리 수다나 떨어보자고 시작한 방송이 아니었던가? 사회를 맡은 김나영 씨와 첫 호흡을 맞춰보는 자리이기도 했고, 앞으로의 방송 계획과 포부를 밝히는 설레는 첫 방송.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늘 업계의 새내기인 것만 같았던 우리들이 벌써 이 바닥에 뛰어든 지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우리 뒤를 버텨주고 있는 엄청나게 많은 20, 30대 청년 농업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우리가 중간에서 정말 잘해야겠다고 말이다. 우리의 선배 농업인들이 지켜온 농업의 가치를 계승하면서도 지금의 20대에게도 본받을 수 있는 선배의 역할을 해야 하는 묘한 책임감도 생겼다. 그냥 우리끼리 수다나 떨자고 시작한 방송은 막상 마이크를 잡고 전파를 타기 시작하니 엄청난 부담감과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2017년은 여기에 이 방송에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우린 열정적으로 방송에 임했다.
- 마르쉐 친구들 이보은
대화하는 농부 시장 마르쉐
2화의 주제는 파머스마켓. 우리 방송의 첫 게스트를 누구로 모실지 고민이 많았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파머스 마켓의 중심에 마르쉐@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르쉐 친구들을 이끌고 있는 이보은 대표를 초대했다. 마르쉐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나라 파머스마켓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보통 외부에서 보면 굉장히 잘 운영되는 것 같은데 막상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간신히 유지만 하고 있거나 마이너스를 내고 있는 회사나 단체를 어렵지 않게 본다. 많은 지역의 농부들이 벤치마킹을 위해 마르쉐를 찾을 정도로 마르쉐는 이미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대화하는 농부 시장을 표방하고 있는 마르쉐는 농부들의 판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단순한 유행인지 우리는 짚고 넘어가야만 했다.
마르쉐가 하고 있는 고민은 우리가 하고 있는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마르쉐는 끊임없이 고민하며 진화하고 있었다. 매월 다른 주제를 정해서 장터를 열었고, 토종의 문제 그리고 1회용품 없는 장터를 만들기 위한 그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디테일은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사실 오프 더 레코드를 요청하셔서 방송에 나가지 못했던 민감한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우리가 알지 못했던 마르쉐의 뒷 이야기를 듣기에는 충분했다.
- 아부레이수나 하미현
수요 미식회의 인기 탓인지 '미식'이라는 단어가 일상화되었다. 언제부터인가 평양냉면을 먹어야 미식가이고 함흥냉면을 먹는 것은 촌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여전히 한 끼를 때우고 있고 누군가는 매 끼니마다 미식을 찾아다니는 시대다. 진정한 '미식'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한 번은 이야기를 꺼내야만 했다.
미식거리는(메슥거리는) 미식 이야기
다소 민감한 주제이기도 한지라 어떤 게스트를 모실지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입말 한식을 연구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하미현 요리사를 게스트로 초대해 미식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게스트를 섭외했을 때 사실 약간의 걱정이 앞섰다. 내가 섭외한 게스트이고 이 분이 하는 일을 개인적으로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이번 방송의 주제와 약간 결이 다르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뭔가 터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어찌 보면 이 주제에 대한 가장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마음속에는 있었던 것 같다.
사전에 꽤 많은 준비를 했다. 대본도 꽤 짜임새 있게 짰다고 생각했는데, 방송 시작하고 30분 정도 지나 나의 뇌는 마비되었다. 마치 질문지를 사전에 보기라도 한 듯. 우리가 하려고 했던 질문들을 먼저 툭툭 던지는 하미현 요리사. 그리고 단 한 번도 틀에 박힌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 모두의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이야기 나눈 '미식'이라는 것은 그다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 농촌 사회학자 정은정
농산물을 판매하면서 우리는 늘 농산물의 적정 가격을 고민한다. 그렇다면 치킨 한 마리의 적정 가격은 얼마일까? 치킨의 적정 가격을 찾아가는 과정은 곧 우리의 농산물과 식품의 산업을 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청취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재. 닭!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치킨'의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하우머치 치킨(How much chicken)
1인 1닭 시대. 배달의 민족 어플로 프랜차이즈 치킨 1마리를 시킨다고 가정을 해보자. 15,000원이라는 치킨 가격 중 닭을 키우는 농가에게도 돌아가는 비용은 얼마일까?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은 얼마나 남는 장사일까? 배달의 민족에게 내야 할 비용은? 프랜차이즈 본사에 돌아가는 금액은? 가장 많이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우리나라 식품 산업 구조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대한민국 치킨전'의 저자이자 농촌 사회학자 정은정 작가와 함께 치킨 산업으로 바라본 우리의 식품산업을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정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사이다 같은 발언은 우리의 할 말을 잃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방송의 마지막에 농촌 사회학자 정은정 작가에게 물었다.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정은정 작가의 대답은 몹시 충격적이었다. 다소 불편하지만 우리가 마주해야만 했던 명확한 현실. 하우머치 치킨 편에서 다뤄보았다.
아름다운 소멸
정은정 작가는 2018년 4월 10일부터 '굿모닝 FM 김제동입니다' 매주 화요일 8시 방송하는 '리틀 포레스트'코너에 고정 출연을 확정 지었다. 조중동 꿈나무를 외쳤던 언더-그 라운드의 연습생 출신 정은정 작가의 첫 공중파 진출을 축하하는 바이다.
- 주인호 (한농대 졸업, 사과 농부), 정영환(풀무학교 졸업, 젊은 협업농장 매니저) / 원승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 전공, 그래도 팜 농부)
2016년과 2017년은 '청년 농부'라는 키워드가 대한민국 농업계를 휩쓴 해였다. 2016년 'K-CROWD X 농사펀드 X NAVER'가 함께 진행한 '가업을 잇는 청년 농부' 프로젝트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 이후로 청년 농부가 농업계의 키워드로 부상했고, 2017년은 청년 농부의 해로 기억해도 좋을 만큼 청년 농부들이 언론에서 주목받았다.
그만큼 많이 '소비'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조금 더 거칠게 말하면 기업과 정부에 의해 청년 농부들이 '이용'당했다고 우리는 보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마치 외계에서 새로 나타는 종족인 것처럼 매체와 정부에서는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다. 우리는 3명의 농부를 초대했다. 다양한 성향을 가진 청년 농부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이 번 회의 핵심이었다. 농업계의 금수저라고 이야기하는 한국 농수산대학교 출신의 농부, 그리고 전혀 다른 시각으로 농업을 바라보고 있는 풀무학교 출신의 협업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농부. 그리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업에 뛰어든 디자이너 출신의 농부까지.
각기 다른 시각으로 농업을 바라보는 이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농촌 고령화 문제의 해법, 농민 기본소득, 직불제에 대한 생각, 현재 농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 청년 농부의 지역정착을 위한 방안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이들은 그냥 농부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이들의 손에 우리 농업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점이다.
- 농업법인 도담 이원영
언제부터인가 제철 과일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겨울에 딸기가 나오고 봄에 참외가 나온다. 그렇다면 딸기의 제철은 언제이고, 참외의 제철은 언제인가? 왜 매실은 초록색일 때 유통이 되고, 우리는 마트에서 맛있는 과일을 찾기가 어려워졌을까? 작고 못생긴 과일은 마트에서 볼 수 없고, 수입산 과일은 갈수록 늘어만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비자들도 정확한 팩트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냥 돌고 도는 소문, 떠도는 이야기 말고 정확한 핵심을 짚어서 이야기를 해야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과일 부동의 1위가 바나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물론 우리도 농산물 유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 부분에 대해 정확한 핵심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대형 유통업체에서 일하는 분을 모셔야만 했다. 대형마트, 백화점, 생협 등의 상황을 모두 꿰뚫고 계신 유통 전문가를 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친환경 농산물은 일반 관행 농산물과 어떻게 다른지. 과일을 통해 바라본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규모 있는 친환경 과일 유통을 하고 있는 농업법인 도담의 이원영 대표를 게스트로 초대했다. 업계의 현실을 가감 없이 그대로 이야기해줄 수 있는 최고의 게스트였다. 맛있는 사과 고르는 비법만 터특해도 이번 방송을 들은 큰 소득이다.
총 12회 중 6회 방송 녹음을 마쳤다. 아무도 안들을 것 같았던 우리 방송은 농부들이 일하면서 듣는 나름 인기 있는 방송이 되었고, 팟빵에서 선정한 주목할만한 7월 팟캐스트 1위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 실미원 농부 신순규
앞서 농사 안 짓는 농부들이라는 팀명을 짓게 된 배경을 설명드렸듯이 우리는 농산물을 판매함에 있어 농부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농업에 관계된 모든 이야기는 '농부'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전반기와 후반기를 연결하는 중심이 되는 7화에서는 '농부'의 이야기를 해 보자 했다.
때로는 '농업 경영인'으로 때로는 'CEO'라는 호칭으로도 불리는 농부들. 왜 농부(農夫)라는 좋은 말을 놔두고 이런 호칭들이 등장했을까? 그만큼 이 땅에서 농업의 가치가, 농부의 평가가 땅에 떨어져 있음을 반증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수많은 농부 중에 어떤 농부를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대통령 표창, 신지식인 선정, 대한민국 스타팜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오랜 기간 유기농 인증을 받고 농사를 짓던 그는 모든 타이틀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자연 농법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스마트 농업, ICT 농업 등의 이슈가 농업계를 뒤덮고 있는 때에 오히려 시대를 역행해서 농사를 짓고 있는 신순규 농부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농번기 농사일로 바쁜 농부를 서울 스튜디오까지 모시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무의도 실미원으로 찾아갔다. 한때는 관행농이기도 했고, 많은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화려한 지난날을 뒤로하고 진정한 유기농업의 삶을 살며 농사라는 행위를 업으로 살고 계신 한 농부의 진솔한 이야기.
이 일을 언제 그만두실 거냐는 장난 섞인 질문에 "생을 다할 때까지 농업을 놓을 생각은 없다"는 울림 있는 답변. 어찌 보면 외롭고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고 계신 듯 보이나 한편으로는 이 삶이 農夫(土 + 人) 땅과 함께하는 농부의 참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방송 최초로 진행한 로케이션 녹음을 마쳤다.
- (사)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김원일
8화부터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그동안 통통 튀는 사회로 칙칙한 아재들의 재미없는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던 김나영 브로가 급작스럽게 모 회사 인턴사원으로 취업해서 아쉽지만 더 이상 함께 방송을 진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빈자리는 당신의 물건을 진행했던 박향주 씨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우리는 가끔 운동가, 활동가 등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비록 우리가 하는 일이 비즈니스의 영역이지만 농업과 농부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 방향성이 운동으로 비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밥상 운동의 역사에 대해서 한 번은 짚어야 했다. 사실 이번 주제는 우리가 아는 것을 이야기 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조금 더 공부하는 시간을 마련해보자는 취지가 강했다. 박종범이 자료조사를 하고 이야기했던 '암태도소작쟁의[巖泰島小作爭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좋은 먹거리, 건강한 먹거리가 최근 소비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르는 요즘 밥상 운동 백년사와 함께 이야기 나눌 주제는 슬로푸드였다. 자연스럽게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김원일 사무총장을 초대 손님으로 모셨다.
슬로푸드가 무엇인지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곳인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유기농, 슬로푸드, 건강한 먹거리.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이러한 키워드들은 나와는 먼 이야기로 느껴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당장 한 끼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는 부르주아들의 그들만의 리그로 비난을 받기도 한다.
초대 손님으로 모신 김원일 총장은 대한민국 농업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농대 출신이다. 주변 동기나 동문들은 현재 정치적 요직을 맡고 있거나 사업적으로 성공한 분들이 많지만 김원일 총장은 그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곳에서 한 걸음 떨어져 밥상운동의 최전선에 서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STUDIO HUMMING 조혜연
지역에 강연을 다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농부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다. 소농들이 가장 힘들고 어려워하면서도 가장 관심이 많은 분야가 농산물 포장 디자인이다. 예뻐야 사람들이 사고, 젊은 사람들은 디자인까지 예쁜 농산물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지만, 정작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디자인 작업을 누구한테 어떻게 맡겨야 하는지, 디자인 비용이 얼마나 발생하는지도.
서로 언어가 다른 농부와 디자이너가 함께 작업을 하게 되면 결과물이 산으로 가는 경우를 많이 보았고, 서로 의견 조율을 하지 못해서 감정만 상하고 일이 마무리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이야기하고 싶었고 농부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이번 주제는 철저히 농부들을 위한 방송이다.
농산물 포장 디자인이라는 것이 정말 그렇게 중요한 일인지 그리고 작업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 말이다. 일선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는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궁금했고, 농부들이 디자인 작업을 할 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싶었다. 스튜디오 허밍의 조혜연 디자이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방송을 진행하며 나는 내내 생각했다. 농산물 패키징 디자인 분야에서는 어떤 디자이너가 훌륭한 디자이너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나는 방송에서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의사에 한 번 비유를 해보겠습니다. 가난한 할머니가 있습니다. 근데 아파요. 당장 100만원 짜리 치료제를 먹으면 100% 완쾌를 할 수가 있어요. 근데 할머니는 돈이 없어요. 그런데 시간은 좀 더디더라도 음식으로 치료가 가능하기도 한 상황이라면, 100만 원짜리 치료제를 권하는 의사와 먹으면 안 될 음식과 꼭 먹어야 할 음식 리스트를 처방전으로 내려주는 의사. 이 둘 중에 어떤 의사가 더 훌륭한 의사일까요?" 나는 디자인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었다.
- 한국푸드테크협회 현웅재
농촌은 분명히 변화하고 있다. 농촌의 고령화 문제, 농업 인구의 감소 속에 이제는 더 이상 이 땅에 농사지을 농부가 사라지는 날이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스마트 농업, ICT 농업 등의 말들이 자주 등장한다. 누군가에게는 멀게만 느껴지기도 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방송에서는 스마트농업은 과연 스마트할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초대손님으로는 한국푸드테크협회 현웅재 사무총장을 모셨다. Food-Tech, Agri-Tech라고 불리는 농업과 먹거리 분야의 혁신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배달앱 말고는 어떤 사례들이 있는지 들어보았다.
좋든 싫든 농업이 마지막 남은 돈 되는 시장으로 이야기되고 많은 기업들이 농업으로의 진출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지금. 어떤 기회가 있고, 문제가 있을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 학사농장 강용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농업에 관련된 정부 정책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왜 농협은 농민들에게 인정을 못 받고 있는 것인지. 언제부터 수입농산물이 개방된 것인지 등등. 청취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주곡자급 농정에서 2000년대 노무현 정권의 UR농정까지의 정부의 농업 정책을 살펴보았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농업의 정책은 곧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의 이중곡가제 시행, 새마을 운동으로 대표되는 그 시절의 어두운 이면. 삼분폭리 사건과 같이 현재 대기업이 성장하게 된 밑거름이 모두 그 시절에 완성했다는 사실을 되돌아보며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근혜 정부 이후의 농업 정책에 관해서는 친환경농산물 자조금 관리위원장을 맡고 계시기도 한 강용 대표를 초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017년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이 또다시 이슈가 되었고 과연 제도의 문제는 무엇인지에 짚어야만 했다. 아울러 박근혜, 문제인 정부의 농업 정책을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맨땅에 헤딩을 해가며 대한민국 유기농을 지켜온 강용 대표의 지나온 날들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라'가 바뀌지 않으면 '나'라도 바꾸자
- 농사 안 짓는 농부들과 방청객 (추석 특집 공개방송 @혁신파크 맛동)
처음 팟캐스트 녹음을 시작하며 나는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우리 마지막 방송은 공개방송으로 한번 가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올림픽 체조경기장 정도는 빌려야 하지 않겠냐는 나의 허풍을 다들 그냥 한 귀로 흘려보냈지만, 청취자를 초대해서 직접 공개방송을 하고 싶다는 열망은 늘 나의 마음 한 구석에 있었다. 이문세 씨가 진행했던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었을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8화에 출연해주신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의 김원일 사무총장이 서울시 맛동 아카데미 9월 프로그램에 우리는 초대해주었다. 그리하여 마지막 방송을 공개방송으로 진행하는 작은 꿈을 이뤘다.
마지막 12회 공개 방송은 추석 직전인 9월 30일에 녹음을 진행했고, 시기에 맞춰 ‘명절과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한 분도 안 오시면 어쩌나 걱정도 많았지만 다행히 많은 분들이 추석 연휴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참석해주셔서 한숨을 돌렸다.
크기와 모양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농산물 유통구조의 이야기, 명절 이후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이야기, 김영란 법 시행 이후에 달라진 농산물 유통 일선의 이야기들 그리고 농부와 소비자의 이중성에 대한 조금은 심각한 이야기,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관심을 보여주신 택배 이야기까지 3시간의 공개방송은 마무리되었다.
'당신의 물건'이라는 팟캐스트의 게스트로 출연한 것이 인연이 되어 시작한 우리들의 팟캐스트 언더-그 라운드. 다소 세운 상가스러운 제목. 천재 뮤지션 천재박의 시그널 음악. 그럴듯한 스튜디오로 변신한 둘밥 카페. 그렇게 겁 없이 시작한 방송이 드디어 12회 공개방송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가볍게 수다나 떨자고 시작한 방송은 6개월을 꼬박 우리의 머리털을 뽑았고, 엄청난 책임감으로 진행한 2017년 최고의 축제가 되었다.
방송은 모두 끝났고 우리 4명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왔다. 부족한 점도,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우리가 2017년에 했던 일중에 가장 잘 한 일로 우리 스스로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 땅에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모든 분들을 존경한다. 그리고 농사 안 짓는 농부들의 언더-그 라운드 시즌2는 없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재결합을 한다면 시즌2를 고민해보긴 하겠다.
그리고 이 글을 보고 언더-그 라운드 팟캐스트 방송을 들어보려고 마음먹은 분들이 있다면 이미 당신은 '농사 안 짓는 농부들'이다.

- iTunes : http://apple.co/2nCPIL3
- 팟빵 : http://www.podbbang.com/ch/13763
MC : 공석진, 박종범, 한민성, 천재박
사회 : 김나영 / 박향주
PD : 김민규
나는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아울러 농부들의 수고스러움에 대한 ‘가치’를 ‘같이’할 수 있도록 농부의 마음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려고 한다. ‘농사 안 짓는 농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