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4
아들 키우는 아빠들이 흔히 갖는 로망이 나에게도 몇 개 있다.
첫째, 같이 목욕탕 가서 서로 등 밀어주기
둘째, 같이 캐치볼(운동) 하기
셋째, 거실에 있는 넓은 테이블에서 같이 책 읽기
앞에 두 가지는 이미 이뤘는데 마지막은 우리 집에선 평생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들 1호가 최근 인문학에 관심을 보이는 등 지적 호기심이 강해졌고, 아들 2호는 수학과 과학에 흠뻑 빠져계신 덕분에 최근 세 부자가 테이블에서 같이 책을 읽는 (부인이 꿈에 그렸던) 믿을 수 없는 풍경이 최근 우리 집에서 펼쳐지고 있다.
세 번째 로망에 옵션 하나를 추가하면 녀석들이 어느 정도 크면 같은 책을 읽고 함께 토론을 해보는 것이었다. 대학을 나오긴 했지만 지적 수준이 낮기에 함께 공부를 해서 좀 더 발전된 아빠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의 뒤죽박죽 머릿속을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요즘은 예전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많은 시간을 두 녀석과 보낸다. 진로 문제로 지난달부터 아들 1호와 함께 이야기 나눌 시간이 많아졌는데 녀석이 읽으면 좋아할 만한 책들 찾아서 권해주고, 생각해볼 만한 뉴스와 글들 그리고 영상들 찾아서 보여주고 있다. 아들 2호와는 수학 문제 함께 풀어주고 궁금증 풀어주는데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몸으로만 교감하던 시기에서 이제 머리로 교감하는 시기로 넘어오는 과도기적 단계인 듯하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 집콕할 예정인데 함께 있을 시간들이 많아서 모두가 같이 읽을 수 있는 책을 몇 권 샀다. 이번에 구입한 책에 대한 아들 1호의 만족도는 최상. 지금 자기에게 꼭 필요했던 책이라며 하트를 날려주었다. 녀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려면 나도 공부하고 준비해야 하기에 좋은 시간이 될듯하다.
30대 중반.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며 일보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지금 이 일을 시작했다. 지금껏 그렇게 살고 있다. 보통의 아빠들이 가장 왕성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경제적으로 부의 축적을 이루는 시기에 나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주변의 동료들이 없어서 가끔은 좀 외로울 때도 있다.
돈은 언제 벌거냐고 많이들 묻는데 돈은 오십부터 벌어볼 생각이다. 아직까지는 아이들이 아빠를 필요로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