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hn Mar 04. 2016

1년이 지났다

아빠가 아주 애기때, 몸이 너무 아파 곧 죽어버릴것만 같아 할머니가 그냥 그대로 죽어버리라며 아빠를 방 한쪽 구석으로 밀어놨다고 한다.
먹을것도 주지 않았고 돌보지도 않았지만 아빠는 죽지 않았다.
죽지 않고 날라리 장발 백수가 되어 온 동네 남자들이 흠모하던 엄마를 온갖 방법들을 동원하여 낚아 채버렸다.
엄마는 동네 최고의 미인이었고 그만큼 눈독을 들이는 집안이 많았다.
아빠만 아니었으면 엄마랑 결혼하게 됐을 그 부자 아저씨는 그 후 아빠네 집 옆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얼마나 잘사나 보자! 하는 원망어린 마음으로 시작된 분노는 한동안 쭈욱 이어졌고, 결국 좋은 여자를 만나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그 집에서.
그 후 오랫동안 참 열심히도 살았던 아빠는 그만큼 오랫동안 많이 아팠다, 마치 아플 운명을 타고 난 사람처럼.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나이가 들수록 병원에서의 시간들을 외로워했다.
어느날은 나에게 한숨을 푹푹 쉬며
"옆 침대 아저씨는 손주가 벌써 둘이더라. 아까 손주가 왔다 갔는데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는게 어쩜 그렇게 예쁘냐?

난 언제 할아버지 되는겨?"
치.
그게 뭐 내 맘대로 되는건가.
어느날엔 그냥 순서없이 어디가서 애를 먼저 하나 만들어올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도 뭐 내 맘대로 되는건가.

그게 제일 미안하다.
그렇게 듣고 싶어했던 할아버지 소리를 못들려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덟살이 되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열일곱이 되면 고등학교에 입학을 한다.
예외적인 상황들을 제외하고 본다면 모든것에는 때가 있다.
스물일곱에 만났던 그 남자랑 결혼했다면, 스물아홉에 만났던 나 좋다던 그 남자랑 결혼했다면, 이라는 후회는 가슴이 아프다.
그렇게 듣고싶어하던, 어쩌면 너무 어렵지는 않았을 그 얘기를 한번도 듣지 못하고 날 떠났다.
나는 여전히 그게 제일 미안하다.

아빠는 된장찌개를 좋아했고 순댓국을 좋아했다.
엄마는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순대가 영 마뜩잖았고, 나는 늘 바빴다.
아빠는 우리 식구들 중 그 누구와도 순댓국을 먹지 못했다.
순댓국을 좋아하는 나는 이제 순댓국이 맛이 없다.
그래서 아빠가 좋아하던 된장찌개를 끓였다.
삼십오년 인생에 처음이다.
마치 된장찌개를 맛있게 만들 운명을 타고난 사람처럼 도통 처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이고야 말았다.
한 냄비를 뚝딱하고서는, 눈물이 났다.
이게 뭐라고.. 이게 뭐라고...
이게 뭐라고 한번도 끓여준적이 없었을까.
아빠가 좋아하고 원했던것들을 참 열심히도 모른척하고 살았고, 이제서야 아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들리지만 보이지가 않는다.
그래서 지금 나는,
기억나는 모든게 다 아프다.
아빠의 목소리에 목이 메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3월7일은 아빠가 하늘로 돌아간지 꼬박 1년이 되는 날이다.

1년동안 나 없이 산 아빠에게도,

아빠없이 살아낸 나에게도,

이번 봄은 더이상 서로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계절이길 바란다.

미안해하는 대신 이제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지켜낼 수 있는 진짜 가족이 되길 바란다.


부디 아빠가 있는 그 곳에도 봄이 왔길...


작가의 이전글 달걀과 병아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