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 승진…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 단어들은, 내게 늘 유쾌한 환희보다는 시린 뒷맛을 남기곤 한다. '왜 저 사람일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놓친 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겨울밤의 찬 공기처럼 머릿속을 파고든다.
올해 나를 평가한 상급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역설적이게도 '착하다', 혹은 '선하다'는 말이었다. 회사 밖에서 누군가 나에게 건넸다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을 그 말들이, 이상하게도 회사라는 담장 안에서는 전혀 다른 질감으로 다가왔다.
그 예쁜 말들은 내 귀에 자꾸만 차갑게 번역되어 들렸다. 제 목소리를 주도적으로 내지 못한다는 뜻으로, 동료들을 장악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그리고 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남을 깎아내릴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는 뜻으로 말이다.
물론 일을 하다 보면 날을 세워야 할 때가 있고, 나 역시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지점에서는 나만의 전투를 치르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가 오직 자기 목소리만 높인다면, 그 소음 속에서 누가 누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모두가 제 밥그릇을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서로를 짓밟는 것이 정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성숙한 사회생활인 걸까.
목소리 큰 사람만이 리더가 된다면, 경청의 가치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묻고 싶어진다. 부드러운 리더십, 먼저 듣고 배려하는 리더십은 정말 이 거친 정글에서는 생존할 수 없는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 왜 우리는 꼭 그렇게 날을 세우며 살아야만 하는 걸까.
무엇이 정답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를 평가한 그들의 기준대로 살고 싶지는 않다.
내 주장을 펼칠 때 펼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타인을 먼저 헤아리고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맞다고 믿고 싶다. 착한 사람이 바보가 되고, 그래서 착하게 살지 말라는 말이 선배의 애정 어린 조언이 되는 세상이 조금 슬프다.
숫자와 등급으로 매겨진 평가서 한 장이 내 삶의 온도를 결정하게 두지는 않으려 한다. 비록 세상은 그것을 무능이라 부를지라도, 나는 내 아이들에게 '착하게 살면 손해 본다'고 가르치는 아빠가 되고 싶지는 않다. 정답이 무엇이든, 나는 그냥 나의 다정함을 지키며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가고 싶다. 세상은 씁쓸한 겨울밤이지만, 내 마음속 난로만큼은 꺼뜨리지 않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