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 러닝이 주는 뜻밖의 선물
주말 오전, 지난주 양가 투어를 다녀오느라 빠졌던 학원 보강 덕분에 아이들이 집을 비웠다.
맞벌이 부부에게 아이들의 학원 보강은 때로 이런 근사한 ‘자유 시간’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기도 한다.
오랜만에 찾아온 고요 속에서 나는 망설임 없이 운동화 끈을 묶고 공복 러닝을 위해 나섰다.
체감온도 영하 10도. 칼바람이 부는 강변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가볍게 몸을 풀고 젬코치가 제안한 14km LSD(Long Slow Distance)를 시작했다.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찔러왔지만, 찬란한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강변의 얼음들을 보니 첫걸음부터 마음이 상쾌하게 열렸다.
기분 탓인지, 혹은 공복의 가벼움 덕분인지 첫 스플릿부터 젬코치가 권고한 속도를 훌쩍 앞서가기 시작했다.
다리의 힘을 풀고 사뿐사뿐 달린다고 생각했음에도, 두 번째 스플릿의 기록은 오히려 더 빨라져 있었다.
몸도 마음도 군더더기 없이 비워진 상태에서 오는 특유의 리듬감이었다.
평소 퇴근 후 밤에 달리는 나는 늘 '무거운 몸'과 싸워야 했다.
허기를 참지 못해 급하게 저녁밥을 먹고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소화도 되기 전에 억지로 뛰러 나가야 하는 날이 많았다.
위장에 혈액이 몰려 다리는 천근만근이고 호흡은 늘 버거웠다.
하지만 공복 러닝은 전혀 다르다.
위장에 혈액을 뺏기지 않으니 다리는 깃털처럼 가볍고, 폐는 더 깊은 숨을 들이킨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머리가 맑아진다'는 점이다.
저녁 러닝이 하루의 피로와 잡념을 털어내기 위한 '정리'의 시간이라면, 아침의 공복 러닝은 백지 위에 다시 시작하는 '창조'의 시간이다.
뱃속이 비워지니 생각은 단순해지고, 오로지 달리는 행위 그 자체에만 온전히 몰입하게 된다.
마라톤 훈련 관점에서도 공복 러닝은 훌륭한 전략이다. 지방대사 능력을 키우는 데 이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밤새 탄수화물(글리코겐)이 고갈된 상태에서 달리면, 우리 몸은 살아남기 위해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더 적극적으로 끌어다 쓴다.
42.195km를 달려야 하는 풀코스에서 탄수화물 연료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결국 후반부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지방을 효율적으로 태우는 몸을 만들어야 하는데, 오늘의 14km는 그 엔진을 예열하는 아주 소중한 과정이었다.
물론 공복 러닝이 모든 훈련의 정답은 아니다.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에서 고강도 인터벌이나 스피드 훈련을 몰아붙이면 근손실의 위험이 있다.
하지만 오늘처럼 천천히 긴 거리를 달리는 LSD에는 최적의 궁합이다
.
14km를 완주하고 나서도 피로감보다는 오히려 온몸의 감각이 깨어나는 개운함이 앞섰다.
문제는 역시 '시간'이다.
맞벌이와 육아를 병행하는 일상에서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아침은 그리 흔치 않다.
오늘처럼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 아니라면 공복 러닝은 거의 '그림의 떡'이다.
그럼에도 오늘 느낀 이 상쾌한 감각을 기억해두려 한다.
4월 군산 풀코스를 향해가는 여정에서, 오늘의 이 가벼웠던 발걸음이 분명 든든한 자산이 되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