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 연휴, 가족들과 함께 대만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가오슝에서 타이베이로 이어지는 꽤 빡빡한 일정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가족들의 여행 가이드 역할을 하느라 운동은 일찌감치 포기했겠지만, 이번엔 캐리어 한구석에 잊지 않고 러닝화를 챙겨 넣었다.
아침 기온이 한국의 초여름 날씨와 비슷해 달리기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여행 기간 동안 총 4번의 러닝을 했다. 가오슝에서 두 번, 타이베이에서 두 번.
물론 낮 시간 동안 가족들과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다리에 피로도가 제법 쌓여 있어서 평소처럼 길고 빠르게 뛰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무리한 기록 경신이 아니라, 감각을 잃지 않고 체력을 다지는 ‘유지’ 차원의 훈련이라는 것을 알기에 기분 좋게 나만의 페이스를 즐기기로 했다.
ㅇ가오슝: 아이허강의 낭만, 그리고 뜻밖의 러닝 크루
가오슝에서의 코스는 숙소 근처에 있던 아이허강(Love River) 산책로였다. 강변을 따라 러닝 코스가 제법 잘 닦여 있어서 달리는 기분이 났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다리를 건너 다음 구간으로 넘어갈 때 다리 밑으로 이어지는 연결로가 없었다는 것이다. 뛸 만하면 멈춰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려야 했기에 리듬이 자꾸 끊겼다.
하지만 그 아쉬움을 달래준 건 그곳에서 마주친 현지 러너들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강변을 달리는 거대한 규모의 로컬 러닝 크루들을 보며, 국경을 넘어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에너지에 묘한 연대감마저 느껴졌다.
ㅇ타이베이: 고즈넉한 228 평화공원, 그리고 쓰라린 훈장
타이베이로 넘어와서는 228 평화공원 주변을 맴돌며 달렸다.
명절 연휴라 그런지 도심 한복판임에도 오가는 사람이 적어 무척이나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낯선 이국의 공원을 내 두 발로 누비는 기분은 일반적인 관광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해방감을 주었다.
하지만 이 평화로움 속에서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보도블록들이 우리나라처럼 평평하게 정비되어 있지 않아, 블록이 들뜬 틈에 발이 걸려 넘어져 버린 것이다. 무릎이 시원하게 깨지고 입고 있던 러닝복의 무릎이 찢어졌다.
조금 쓰라리긴 했지만, 이 또한 낯선 환경에서 뛰며 얻게 된 나름의 '영광의 상처'라 여기며 툭툭 털고 일어났다.
명절 연휴에, 그것도 타이트한 가족 여행 일정 속에서 운동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피곤하더라도 이른 아침 낯선 거리를 달리며 맞이했던 대만의 공기는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특별한 기억 중 하나가 되었다.
버스나 택시를 타고 지나칠 때는 절대 볼 수 없는 도시의 민낯과 골목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지에서 러닝화를 신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길게 뛰지도, 빠르게 뛰지도 못했지만 4월의 풀코스를 향한 숙성의 과정에 '대만 러닝'이라는 아주 특별한 조각 하나를 무사히 끼워 넣었다. 찢어진 옷과 깨진 무릎의 훈장을 훈훈하게 쓰다듬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