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정 Oct 23. 2024

우울과 불안 사이에서 행복한 삶을 바라보며

행복의 기원

이 글은 행복에 관한 글이다. 우울과 불안 사이에서 삶을 이어나가면 과연 결국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가? 우울과 불안을 이겨내면 과연 달콤한 삶이, 행복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고찰이다.



행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어렸을 때는 없이 살았기 때문에 행복한 인생이 금전적으로 풍족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했고 행복으로 이어지리라 기대했다. 버는 돈은 늘었지만 행복하진 않았다. 그저 돈을 더 벌게 되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 순간부터 우울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혼자 살며 이러한 고민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서은국 작가의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는 행복을 부산물이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생존할 수 있도록, 생존과 관련된 경험을 할 때 발생하는 부산물이라고 말이다. 그래야 행복을 느끼기 위해 생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할 테니까.


그렇다면 생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이란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과 함께하는 행위이다. 사람 때문에 마음을 다치고 우울증과 불안증을 겪는 사람이 태반인데 행복이 사람과 함께하는 행위의 부산물이라니?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양날의 검이자 컨트롤할 수 없는 자연 현상과 다름없다. 사랑과 만족감을 주기도 하지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사람이라는 울타리에 속한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울증이 심했을 때는 일부러 사람을 멀리했다. 시간이 지나니 외로웠다.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만큼. 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살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우울과 불안 사이에서 삶을 이어 나가면 과연 결국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가? 그렇다. 삶을 이어 나간다는 것은 우울과 불안을 등에 업고서라도 이 사회에 속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분명 올 것이다.


행복은 부산물이다. 그리고 지속되기 어려운 감정이다. 시스템적으로 다음 기쁜 일에 똑같이 반응하기 위해 초기화되기 때문이다. 영원한 행복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한 행복은 주관적이고 사적인 현상이다. 행복의 종류를 나눠 우위를 가릴 필요도 없고 행복하면 행복하구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이러한 행복의 특성을 생각했을 때 행복한 삶을 목표로 인생을 사는 것은 어찌 보면 평생 이룰 수 없는 목표를 품에 안고 사는 것과 같다.



행복은 언제든 찾아오고 언제든 떠날 테니.



우울과 불안이라는 고통 때문에 행복이 너무나 크고 달콤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은 결국 끝없이 움직이는 시소와 같다. 이따 금 평행을 이룰 때만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너무 찰나이며, 인생이라는 파도 위에서 영원한 평행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우연히 살게 된 이 인생에 우연히 찾아오는, 행복이라는 찰나의 반짝임을 너무 신성시하고 떠받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고통도 행복도 영원한 것은 없다.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을 짊어지고 서라도 이 사회에 속해 살아간다면 분명 행복의 순간은 찾아오고 그때가 되면 우울과 불안을 내려둔 뒤, 충분히 행복해하고 다음 행복을 기다리면 되겠다.

작가의 이전글 부모님과 화해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