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며칠 앞두고

다시 사그라든 의욕, 함께 딸려오는 무기력함

by uncommon jerry
시간의 춤

퇴사를 며칠 앞두고, 끝이 좋아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건만, 엊그제 사장님께서 술기운에 못내 아쉬워하며 악수를 청하던 모습이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리기도 전에 어제는 겨우 회사에 나가 얼굴만 비추고 1~2시간 일하다 왔으며 오늘은 아예 못 나갔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비싼 비타민 영양주사를 맞고서는 ‘어랏! 진짜 몸이 좋아졌네?’라며 링거 효과로 또 새벽 3시까지 잠을 안 자고 무수히 글만 읽다가 알람을 꺼버리고는 또 염치없이 “팀장님, 죄송합니다..”라는 톡을 날리고 자기를 반복한다. 이틀 째 반복되는 12시간의 수면, 생체리듬이 깨져버렸으니 비싼 링거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결국 다시 걸린 감기몸살.


겨우겨우 집 밖을 나와 빵과 우유로 첫끼를 때우고 약을 먹기 위해 저녁 10시가 다되어서야 라면으로 두 번째 끼니를 때운다. 어제 들어온 월급이 당분간의 마지막 월급이 될 거라 생각하니 괜히 마음은 불안해진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몇 주 전 설레던 마음, 모험심 가득한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사라져 버린 의욕, 무기력함, 우울함과 슬픔, 자기연민으로 가득 찬 나 자신이 더 안타깝다.


왠지 모르게 해낼 수만 있을 것 같았던 퇴사 후의 생활을 현실적으로 고민하고 할수록 안될 것만 같았다. 감사하게 부모님께 경제적 지원을 받는다면 금전적 문제는 조금 해결이 되더라도 내 마음은 계속 편치 않을 것 같았다. 진정한 자유란 모든 것으로부터 얽매이지 않음에 있는 것이라는 말처럼.

그렇다고 약한 내 몸을 걱정하시는 부모님의 걱정처럼 내가 과연 워홀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끈기도 없고 자존심은 더럽게 센 내가? 솔직히 지금까지 자식 고생 안 시키려고 편하게 살 수 있게 모든 여건을 마련해주신 부모님 덕분에 한국에서 편하게만 자라온 내가?


하지만 정말 편하게 살고 싶다면, 역설적으로 편함을 거부해야 한다는 한 작가님의 생각에 너무 공감이 되기도 했다. 내가 편함을 추구할수록, 내 삶은 편함으로부터 멀어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워홀’이라는 검색어로 된 브런치 글을 죄다 찾아 읽고, 결국 또 새벽 3시가 되어 겨우 잠을 잔다.


저번 주말에는 후배가 통 기운이 없고 아프기만 한 나를 한의원에 데려가 처음으로 봉침이란 걸 맞고 사주를 보러 갔다. 외국에서 평생 살 사주는 아닌데?라는 말에 영주권 취득에 대한 생각까지 한건 오버였을까.. 그럼 그 많은 돈을 들여서 공부에 투자를 하는 건 다 물거품일까? 그냥 한국에서 살아야 되나? 등등.

정말 나란 사람의 줏대 없음이 또 한 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운명이란 큰 골자가 정해져 있다 해도 결국 자신의 노력으로 그리고 선택으로 자신의 삶이 달라지는 것인데 저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지독하게도 여유로운가 보다.


사주를 다 믿을 수 없지만 확실히 맞는 것 한 가지.

나는 많이 흔들리는 사람이라 마음을 먹었으면 확 밀고 나가야 된다는 것이었다. 정말 맞는 말.

수없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랴.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기적이라고 했거늘.


이제 친구가 선물해준 일기장도 퇴사를 며칠 앞두고 끝이 났다. 답답하고 우울한 내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내 비밀 장소 같은 곳이었는데 이제 정말 브런치로 거처를 옮겨야 될 때니 다시 한번 의욕을 갖고 새로운 마음으로 내 앞날에 대한 실행도, 글쓰기도 계속해보자! 뭐든 되겠지, 굶어 죽기 야하겠어!라는 마음으로.


“시간의 춤”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

그리고 오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던, 회사 출근 대신 본 독립 영화, “시간의 춤.”

내레이션은 잔잔하게 흘러간다. 멕시코로 가면 돈 많이 벌 수 있고 3년 뒤에는 다시 한국에 돌아올 수 있다는 말에 사기를 당해 1000명의 한국인이 승선했다. 그중에는 남편이 중국인에게 팔아넘겨버린 한 아이의 엄마도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멕시코가 아닌 쿠바. 체 게바라, 혁명의 땅 쿠바. 배에 묶인 밧줄의 촉감을 기억하는가? 농장에서 가시 돋친 식물을 베고 말려서 밧줄을 만드는 일을 노예처럼, 죽지 않기 위해 살기 위해 했어야 했던 1세대..


1세대, 2세대를 거쳐 3세대가 살고 있는 지금, 그들은 한국에 사는 나보다도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한국을 어떻게든 뜨려고 발버둥 치는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떨어지는 동전 소리에, 차의 클랙슨 소리에도 맞춰 춤을 추는 쿠바 사람들.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풍족하지는 못해도 그들의 여유가 순간 부러워지기도 했다.


발레를 너무 사랑하는 3세대 소녀는 키가 작아 국립 단원에 선발되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치나(중국인)라고 놀려도 난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그녀가 존경스러웠고, 영화의 마지막 Fin y Salsa. 끝 그리고 살사. 의 자막과 함께 자유로이 파도의 물결과 함께 춤추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영화 시청 후에 본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핀란드 친구들이 짐을 풀고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이촌 국립중앙박물관. 한국에 왔으니 한국의 역사부터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선사시대부터 대한제국의 역사까지 구석구석 둘러보고 구텐베르크보다 일찍 발명된 직지에 감탄한다.


이런 그들을 보고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나는 한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도 않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려 하지도 않고, 외국에서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왜 이토록 자랑스러운 나라를 떠나려고만 할까..라는 생각에 한번 더 부끄러워졌다.


이런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결국 난 잠시 동안이라도 어딘가로 떠나겠지만 오늘 이들이 준 교훈은 이따금 떠올려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 몇 가지를 끄적여본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시간은 죽지 않는다.”
시간이 죽지 않는 삶.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지금 삶을 살고 있는 바로 이 순간.”


이어 시청한 또 다른 프로그램 “내방 안내서”에서 네덜란드에 간 혜민스님이 세금을 60%나 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네덜란드 남자는 이렇게 답한다. “미국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많느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차라리 세금을 많이 내겠어요.”라고. 내가 이전에 생각했던 진정한 부르주아의 모습에 가까웠다.


실직해도 살 수 있는 집이 있으니 걱정을 안 해도 되고 그만큼 행복지수가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회적 제도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 하지만 그런 사회적 제도를 가능케 하는 건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사회가 지속 가능하고 발전할 수 있음을 아는 선진 시민의식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여행에 대한 경치보다 여행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한 혜민스님의 말에도 공감이 됐다. 나처럼 흔들림이 많은 사람은 특히 더 누가 옆에 있느냐에 따라 확확 달라지지만 좋은 사람, 좋은 기회를 만나기만 한다면 그만큼 적응력이 좋은 사람도 없기에 나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며 오늘을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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