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6 첫 회사지만 퇴사는 하고 싶어
비이커는 항상 다이나믹한 일이 많아 지루할 틈이 없는 팀이었다. 한 시즌에도 다양한 브랜드들과 함께 일하다 보니 앞에서 얘기한 에피소드들 외에도 다양한 재밌는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회사에 그것도 같은 팀에 계속 있다 보니 반복되는 일과가 지루하진 않지만 지겨워졌다.
매주 월요일마다 제출하는 자료들,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리뷰하는 판매 데이터, 브랜드를 오더하는 프로세스까지 어느새 나에게 새로울 게 없는 일들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회사 밖에는 재밌는 일이 많아 보였다. 문득 내가 계속 회사에 남아있을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을지 결정해야 하는 타이밍이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사 10년 차였다.
그러던 중 나의 퇴사를 부추기는 듯한? 사건들이 몇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사내 인플루언서 가이드라인이 생기면서(나 때문인 것 같았지만 자의식 과잉인 것 같아 가만히 있었음) 나의 다소 자유분방했던? SNS 채널 운영에 대한 제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순히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회사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나의 착각이었다고 생각하니 서운한 감정이 들었고, 이에 따라오는 불편함은 권태로움으로 이어졌다.
두세 달간의 극심한 회사 권태기를 겪으며 언제 어떻게 퇴사를 하는 게 좋은 걸까. 정작 나에게 퇴사할 용기가 있는 걸까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중 당시 한 선배와의 면담 후 나는 생각보다 빨리 퇴사를 결심할 수 있었다.
2023년 12월이었다.
막상 퇴사를 결심하고 나니 무겁고 고민됐던 마음이 굉장히 가벼워지고 후련해졌다.
문제는 이 퇴사를 언제 어떻게 얘기하느냐였다. 연초는 연계획을 마무리하느라 팀이 가장 바쁜 때였고, 여느 때처럼 1월, 2월 연속으로 중요한 발주 출장을 앞두고 있었다. 모두가 가장 바쁘고 힘들 때 퇴사를 얘기해서 혼란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안 바쁠 때는 딱히 없는데 말이지.
그래.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밀라노, 파리 출장이 있어 이 발주 출장만 마무리하고 퇴사하는 것으로 나만의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이 출장을 다녀오자마자 퇴사 의사를 말씀드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2014년 2월 28일 입사했으니, 나름 만 10년을 채우고 나에게 전환점을 준다는 나쁘지 않은 계획 같았다.
다른 목표는 없었다. 나의 목표는 퇴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