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Photolog. 도쿄에서 걷기 02

2025년 6월, 아메요코 시장에서 아키하바라, 긴자를 지나 도쿄역까지

by Undeadoo

시장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식재료를 구경하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다. 요리하는 방법을 상상하고, 맛을 떠올려보고, 눈치껏 식당을 골라 실제로 먹어보며 차이를 비교해보고. 그렇지만 아무리 역사가 깊은 로컬 시장이라도 관광객으로 가득 차 있다면 우선순위가 훅 떨어진다. 내가 관광객이면서 관광객 때문에 현지 느낌이 오염된다고 느끼는 것은 매우 모순되는 사고이기는 하지만, 바르셀로나나 제주 같은 관광 도시에 오래 살면서 오버투어리즘에 일상적으로 시달리는 사람으로서 이 정도 모순은 허용 범위가 아닐까 한다(...)


애니웨이, 바르셀로나에 살 때도 보케리아 시장보다는 산타카테리나 시장을 선호했고, 제주에서도 점심 무렵의 오일장은 금기시하는 편이다. 아메요코는 그래서 처음부터 그리 큰 기대를 하고 가진 않았다. 평일 오후 2시에 시장을 가는 현지인이 얼마나 있겠는가 하며.


tokyo_select-291.jpg
tokyo_best-37.jpg
tokyo_best-38.jpg
tokyo_best-39.jpg
tokyo_best-40.jpg
tokyo_best-41.jpg
tokyo_select-289.jpg


실제로도 현지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빈틈없는 좌판에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는 온갖 물건들과 경험치 만땅인 상인들이 내뿜는 뜨거운 시장 냄새가 싫지 않았다. 가짜나 연출이라는 느낌이 없었다. 점심을 먹고 온 탓이 뭔가 더 먹기가 어려운 것이 아쉬울 뿐. 나이를 먹으면서 배가 작아진 것이 이럴 땐 참 아쉽다.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걸은 터라 벌써 일만 보 이상 걸은 상태였지만, 머리 위에 있는 태양빛이 뜨거우면서도 적당히 보기 좋게 강한 느낌이라 일단 계속 걷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지도를 보니 아키하바라가 멀지 않아서 방향을 남쪽으로 잡았다.


tokyo_best-52.jpg
tokyo_best-49.jpg
tokyo_best-47.jpg


두리번 거리며 걷다가 재미있는 풍경을 발견했다. 도저히 놓치기가 싫어서 서툰 일본어로 사진을 찍어도 되냐 물었다. 흔쾌히 허락을 받았다.


이 오묘한 형광노랑의 깔맞춤이라니.

시크하게 내려와있는 셔터, 그렇지만 수건을 괴어 놓은 본네트에서는 갭모에가,

카메라를 보지 말아달라는 부탁에 능청스럽게 연기하며 담배를 태우는 모습에서는 장난끼와 소년미가 느껴졌다.


tokyo_best-42.jpg
tokyo_best-43.jpg 들어가보고 싶은 킷사텐이 정말 많았다.


두 번밖에 와보지 않은 아키하바라지만, 30년 경력의 덕후에게, 90년대 용산키즈에게 이곳은 늘 마음의 고향과도 같았다. 작년 초행길, 내가 사랑한 역사들이 이제 이곳이 없다는 사실에 상처를 좀 받긴 했지만 그래도 이곳은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정말 많다는,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위안을 주는 곳이다.


tokyo_best-62.jpg
tokyo_best-67.jpg
tokyo_best-68.jpg
tokyo_best-70.jpg
tokyo_best-72.jpg
tokyo_select-351.jpg 마크로스 극장판 LP를 구한 '래어아이템스튜디오'


아키하바라를 지나면서 맛있는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무턱대고 긴자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슬슬 해질녁이 되어 그림자가 깊어지기 시작했다.


tokyo_best-73.jpg
tokyo_best-77.jpg
tokyo_best-75.jpg
tokyo_select-361.jpg
tokyo_select-363.jpg



tokyo_best-76.jpg

여행의 테마 중 하나는 식당을 미리 정하지 않기였는데, 적당히 감으로 들어간 식당치고 이 집은 꽤 좋았다. 정말 육즙 가득한 샤오롱바오였다.



#jjcontentsaward

keyword
작가의 이전글Photolog. 도쿄에서 걷기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