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아메요코 시장에서 아키하바라, 긴자를 지나 도쿄역까지
시장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식재료를 구경하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다. 요리하는 방법을 상상하고, 맛을 떠올려보고, 눈치껏 식당을 골라 실제로 먹어보며 차이를 비교해보고. 그렇지만 아무리 역사가 깊은 로컬 시장이라도 관광객으로 가득 차 있다면 우선순위가 훅 떨어진다. 내가 관광객이면서 관광객 때문에 현지 느낌이 오염된다고 느끼는 것은 매우 모순되는 사고이기는 하지만, 바르셀로나나 제주 같은 관광 도시에 오래 살면서 오버투어리즘에 일상적으로 시달리는 사람으로서 이 정도 모순은 허용 범위가 아닐까 한다(...)
애니웨이, 바르셀로나에 살 때도 보케리아 시장보다는 산타카테리나 시장을 선호했고, 제주에서도 점심 무렵의 오일장은 금기시하는 편이다. 아메요코는 그래서 처음부터 그리 큰 기대를 하고 가진 않았다. 평일 오후 2시에 시장을 가는 현지인이 얼마나 있겠는가 하며.
실제로도 현지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빈틈없는 좌판에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는 온갖 물건들과 경험치 만땅인 상인들이 내뿜는 뜨거운 시장 냄새가 싫지 않았다. 가짜나 연출이라는 느낌이 없었다. 점심을 먹고 온 탓이 뭔가 더 먹기가 어려운 것이 아쉬울 뿐. 나이를 먹으면서 배가 작아진 것이 이럴 땐 참 아쉽다.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걸은 터라 벌써 일만 보 이상 걸은 상태였지만, 머리 위에 있는 태양빛이 뜨거우면서도 적당히 보기 좋게 강한 느낌이라 일단 계속 걷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지도를 보니 아키하바라가 멀지 않아서 방향을 남쪽으로 잡았다.
두리번 거리며 걷다가 재미있는 풍경을 발견했다. 도저히 놓치기가 싫어서 서툰 일본어로 사진을 찍어도 되냐 물었다. 흔쾌히 허락을 받았다.
이 오묘한 형광노랑의 깔맞춤이라니.
시크하게 내려와있는 셔터, 그렇지만 수건을 괴어 놓은 본네트에서는 갭모에가,
카메라를 보지 말아달라는 부탁에 능청스럽게 연기하며 담배를 태우는 모습에서는 장난끼와 소년미가 느껴졌다.
두 번밖에 와보지 않은 아키하바라지만, 30년 경력의 덕후에게, 90년대 용산키즈에게 이곳은 늘 마음의 고향과도 같았다. 작년 초행길, 내가 사랑한 역사들이 이제 이곳이 없다는 사실에 상처를 좀 받긴 했지만 그래도 이곳은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정말 많다는,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위안을 주는 곳이다.
아키하바라를 지나면서 맛있는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무턱대고 긴자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슬슬 해질녁이 되어 그림자가 깊어지기 시작했다.
여행의 테마 중 하나는 식당을 미리 정하지 않기였는데, 적당히 감으로 들어간 식당치고 이 집은 꽤 좋았다. 정말 육즙 가득한 샤오롱바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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