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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Log. 와룡: 폴른 다이너스티

패링의 쾌감, 다구리의 압박

by Undeadoo




타이틀 정보

와룡: 폴른 다이너스티 (Wo long: Fallen Dynasty)

KOEI TECMO GAMES


나의 플레이

2023.03.04 - 2023.03.11 (43h)

1회차 엔딩

PC (게임패스)



팀닌자의 게임은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플스 팬보이였던 시절에 엑박으로만 나오던 닌자가이덴은 그저 남의 집 감나무였고, 데드오어얼라이브는 신혼 시절 차마 거실 TV에서 구동할 수 없었다. 인왕은 게르만 골격의 노랑머리가 일본도 들고 설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인왕2는 처음 나오는 소대가리한테 열 번쯤 죽다가 둘 다 한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접었다. 개발팀에 대한 불신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와룡은 세간의 평과 달리 나에게는 별로 관심 가는 타이틀이 아니었으며, 게임패스 데이원이 아니었다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이 매우 유력한 게임이었다.


그런데 마침 할 게임이 떨어졌고, 마침 주말을 붙인 나흘 간의 휴가가 주어졌고, 마침 휴가 첫 날이 출시 다음 날이었고, 마침 미세먼지 지수가 매우 높아 집밖에 나갈 핑계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막보를 잡고 있더라.


패드를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딱 하나다. 패링의 쾌감이 독보적이다. 한 합, 두 합, 세 합을 지나며 서로의 실력을 가늠하고 승부의 순간을 재는 장수들의 싸움을, 삼국지를 읽으며 상상했던 로망 가득한 전투, 아니 칼싸움의 순간들을 무척이나 낭만적으로 재현했다. 구르기를 하면 무적 프레임이 발생하는 건 좀 멋이 없지 않은가. 한 손에는 장팔사모를 들었는데 나머지 손에는 방패를 드는 건 좀 무례하지 않은가. 정정당당한 와룡의 길은 패링에 있다. 유사 사례로 제다이의 길이 있는데, 지금의 손맛을 유지하면서 라이트세이버 버전을 하나 만들어주면 바랄 것이 없겠다.


소울류 패링처럼 저스트 타이밍을 요하지 않고, 몬헌의 간파베기처럼 조건이 까다롭지도 않다. 가드 혹은 패링의 선택지가 아니라 가드 상태에서 패링이 가능하기에 리스크 또한 매우 낮다. 난이도가 너무 낮아지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는 지점도 있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공격에 회피나 가드를 통한 대응은 무의미하고 패링이 강제되는 만큼 결과적으로는 적절한 타협이라 생각한다. 일부 무기의 적을 상대할 때는 약간의 반응 속도가 필요하긴 하지만 이것 역시 경험으로 충분히 커버 가능하다. 소울류 치고는 난이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적들을 되려 기다리기도 하는데 특히 중보스들에서 자주 나오는, 엇박을 한두 번 섞으며 연속 패링을 요하는 패턴은 그리 어렵지 않으면서도 패링 마스터가 된 것 같은 쾌감을 주기 때문에 나오면 반가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엇박과 시간차, 눈속임이 들어간 다양한 패턴을 구사하고, 그것들 모두를 패링으로 파훼해야 하는 인간형 보스전이 특히 좋았다. 집채같은 공격에도 패링을 강제하는 말도 안되는 거대 요마 전은 지루한 수준이었고, 인상적인 보스 TOP3를 꼽자면 여포(인간형), 장료, 손견(요마형) 정도가 되겠다.


그 외의 전반적인 레벨 디자인은 실패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튜토리얼 보스인 장량은 필요 이상으로 어려웠고, 정작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는 제2절 이후에는 두 번 이상 트라이한 보스가 한 손에 꼽힌다. 일종의 인스턴스 레벨인 사기 레벨이 난이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보통 보스까지 다다르는 과정에서 사기 레벨이 최대치에 달하니 첫 트라이가 제일 쉬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패턴을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대충 딜로 찍어누르는 것이 가능하다. 더 이상한 건 튜토리얼 보스만 2페가 있고, 막보를 제외한 나머지 보스는 다 1페 뿐이라는 것. 또한 가드의 페널티가 매우 높은 시스템 하에서 다대일 전투 구도는 정말 최악에 가까웠다. 자코몹들도 셋 이상 겹치면 드러눕기 일상이었고, 황개/정보/한당과의 3:1 전투, 장양과 십상시의 10:1 전투는 다시는 팀닌자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2회차를 가지 않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삼국지는 세계관 자체로 좀 사기적이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등장 인물에 대한 충분한 교감과 이해가 선행되어 있기에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시작도 하기 전에 캐릭터에 대한 호오가 명확하며, 시그니처 이벤트가 무엇일지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재현될 지를 기대한다. 때문에 프롤로그 따위 필요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다. 와룡도 그렇다. 조작에 대한 간단한 튜토리얼을 지나자마자 서사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데 배경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어도 딱히 불친절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삼국지의 세계관을 차용한 다크 판타지이지만 커다란 줄기는 대부분 유지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주요 등장 인물에 대한 해석이 지극히 평면적인 점은 아쉬웠다. 장비를 그렇게 무식한 새퀴로 그려낸 것은 고전적이다 못해 낡은 냄새가 날 지경이었다. 강동의 호랑이 손견을 진짜 호랑이로 변하게 한 건 좀 웃기긴 했다.


Wo Long_ Fallen Dynasty 2023-03-13 오후 11_35_51.png 정말 오랜만에 남캐를 골랐다.



한줄평 및 평점

패링의 쾌감, 다구리의 압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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