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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Log. 오브라 딘 호의 귀환

MoMA가 소장한 게임

by Undeadoo



타이틀 정보

오브라 딘 호의 귀환 (Return of the Obra Dinn), 2018

Lucas Pope


나의 플레이

2023.02.26 - 2023.03.01 (12h)

진엔딩 (도전과제 14/16)

Steam



오브라딘호의 귀환에 대해 알게 된 건 뉴욕현대미술관 때문이다. 2012년, MoMA는 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14개의 비디오 게임을 자사의 소장품으로서 취득한다. 이어 2013년부터 2021년까지 21개의 게임을 추가 취득한다. 여기에는 세계 최초의 콘솔 게임기인 마그나복스 오디세이(Magnavox Odyssey)를 비롯해서 퐁(Pong),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와 같은 고전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마인크래프트(Minecraft), 디스워오브마인(This War of Mine), 모뉴먼트밸리(Monument Valley), 게팅오버잇(Getting over it) 같은 동시대 게임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 중 가장 최신의 것이 오브라딘호의 귀환이었다.


모마가 이런 게임들을 취득한 이유는 이 게임들이 가진 미디어적 특징이 매우 예술적인 상호작용 방식에 기반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모마가 주목한 게임의 인터랙션 디자인 특성은 행동(Behavior), 미학(Aesthetics), 공간(Space), 시간(Time)의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브라딘호의 귀환에서 돋보이는 지점은 이 중에서도 미학과 시간이다.




뉴욕현대미술관 공식 홈페이지의 소장품 페이지


사실 콧대 높은 모마를 움직이게 한 게임들이 꽤나 궁금하긴 했지만 ‘사놓고 플레이하지 않은’ 두툼한 라이브러리 대기열을 뚫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정작 이 게임을 꼭 해보고 싶다는 본격적인 호기심이 동하게 한 것은 한 장의 스크린샷(그리고 때마침 적절했던 스팀 세일)때문이다. 2018년의 게임이라 믿기지 않는 독특한 1비트 그래픽이 늘 치열한 옵션 타협을 해야 하는 현 시대 AAA게임의 피로도를 훌쩍 날려버렸다. 1비트 그래픽은 말 그대로 하나의 픽셀이 단일 비트, 즉 0 또는 1로 저장되기에 두 가지 색 밖에 쓸 수 없다. 단색 펜으로 그린 점묘화와 같다. 거기에 더해 녹색, 황색, 백색 등 초기 개인용 컴퓨터에서 사용되던 단색 모니터 세팅을 제공하며 이 또한 올드 컴덕으로서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ObraDinn 2023-03-14 오후 9_49_38.png 1비트 그래픽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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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토시, IBM 5151, Commodore 1084 등의 컬러 배리에이션을 지원한다.


오브라딘호의 비밀은 시간에 대한 게임이다. 게임에서의 시간은 선형적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세이브와 로드를 통해 얼마든지 비선형적으로 움직일 수 있고, 혹은 턴이 지나기까지 멈춰있기도 한다. 패시지처럼 5분이면 삶이 끝나는 게임, 드워프 포트리스처럼 몇 년 간 지속되는 게임도 존재한다.


오브라딘호는 4년 간 바다에서 길을 잃었다가 신비롭게 다시 나타난 오래된 상선이다. 플레이어는 보험 평가자로서(역시 보험이 제일 무섭다) 이 배에 탑승하여 승객 60명의 신원을 확인하고 그들이 어떠한 종말을 맞이했는지 추적해야 한다.


죽기 전의 시간을 재현하는 회중시계를 활용해서 사건 현장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누가 총격을 했는지,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누가 어떤 악센트를 가지고 있었고,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 어디에서 죽었는지, 그들의 그림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등등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상당히 힘들고 머리가 복잡한 일이지만 단서를 끌어모아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의 쾌감은 상당히 짜릿하다. 플레이 타임을 늘이기 위한 억지 퍼즐과는 전혀 다른, 오롯이 지적인 쾌감을 위해 설계된 치밀함이다. 로컬라이제이션도 상당히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개발자인 루카스 포프(Lucas Pope)는 언차티드 1, 2편의 개발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AAA로도 가장 성공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인디 게임에서도 페이퍼스 플리즈(Papers, Please)를 비롯하여 게임사에 의미 있는 작품들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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