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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산코끼리 Dec 05. 2017

숲을 보라고 멍청아!

"아 진짜 답답하네 참!"


임원에게 보고하는 회의에 참석했는데 우연히 임원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그날의 안건 하나하나를 보고받으며 회의 자료 전체를 프린트해 놓은 문서를 실시간으로 소화하고 있었다. 다르게 말하면 회의 전에 안건들을 살펴보지 않고 참석한 것 같았다. 임원이니까, 바쁘니까, 그럴 수 있지.

발표자들의 발표 내용 중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쉴 새 없이 프린트된 종이 위에 적는다. 그러다 일정 포인트에서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거기서부터 30분간 회의는 단 한 발자국도 진행되지 않았다. 맴돌고 있는 질문과 대답. 임원은 굉장히 의도가 짙은 질문을 했고 발표자는 그 의도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추가적인 숙제를 받지 않기 위해 열심히 대답을 만들어 냈다.

그러는 동안 임원은 자꾸 답답하다는 말을 혼잣말처럼 다 들리는 소리로 했다. 


우리는 걸어서 숲을 통과하고 있다. 바닥에 있는 돌멩이 하나하나를 관찰하며 보고하는 중이다. 임원은 하늘에 드론까지 띄워놓고 숲 전체를 보며, 바닥에 있는 돌멩이 하나하나까지 다 보고받고 있는 중이다. 그가 숲을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뛰어난 능력을 가져서가 아니라 그것이 임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보고한 단편적인 사실을 다 종합해서 판단을 내리고 결정하며 책임을 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여기 있는 나무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났습니다!라고 보고하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럴 줄 몰랐어? 숲을 보라고 좀 이 멍청아! 전체를 보고 움직여야 할 것 아니야!


회의 시간에 아무런 보고 없이 시작하면 어떤 회의가 되었을까? 임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해보라고 했으면 그는 우리에게 똑같이 숲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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