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는 판타지 입니다. 신입이랑 퇴사해서 손잡고 회사를 차린다는 점에….
“팀장님. 저 퇴사하겠습니다.”
아니 왜?
“저는 회사에 맞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아요.”
아니 그럼 회사 맞춤형 인간도 있단 말인가. 싶다가 너무 장 소장 같은 생각이라 쑥 집어넣었다. 나는 이제 막 입사 3달을 넘긴 신입사원 영우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회사에 딱 맞는 인간은 없겠지만 적어도 영우는 아니었다. 금요일 동기 점심 날마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신입사원 무리들 중 영우는 매번 없었으며, 짐짓 모른 척 물어보면 영우는 난처한 얼굴로 은행을 갔다, 병원을 갔다 둘러대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렀다. 원래도 탈모끼가 있던 그의 머리카락은 날로 얇아져가던 참이었고 종종 어깨에 비듬이 내려앉아있는 그의 양복은 상하의 색이 묘하게 달랐다. 영우는 좀.. 별났다. 이상한 애는 아니었지만 어딘가 미숙하고 코드가 맞지 않는 친구였다. 신입사원 환영회에서는 이사에게 제임슨 스코필드보다 필 브라이엄슨의 건축이 더 월등한 이유를 질릴 때까지 설명하는 것을 보고 내심 우리 팀 신입은 아니었으면 했던 것이 그였다.
“그만 두면, 뭐하게?”
“어디든지 갈 곳은 있겠죠. 아뜰리에를 가던지.”
아뜰리에라면 이곳 보다야 낫겠지만, 그곳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데. 영우가 그곳이라고 잘 적응할까 쓸데없는 걱정이 들었다. 애초에 영우 같은 인물이 왜 대형 설계사무소에 지원하고 입사했는지도 문득 궁금해졌다.
“알겠다. 3개월만 더 일해라. 그리고 3개월 뒤에 같이 나가자.”
“네? 제가 왜요? 아니 팀장님이 왜요?”
나도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에 스스로 놀랐지만 이 것이 옳은 일인 것 같이 느껴졌다. 완전하고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나는 건축사를 딴지 3년이 넘었지만 퇴사할 타이밍도 용기도 잡지 못하여 아직도 이 회사에 남아있던 참이었다. 사실은 자신이 없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필 브라이엄슨의 도면을 모조리 손도면으로 따라 그린 작품집을 이사 눈앞에 들이미는 영우의 뻔뻔함이 필요했다.
“나랑 같이 차리자고. 사무실.”
영우는 나의 이러한 제안에,
“팀장님 포트폴리오 보여주세요.”라고 답했다.
영우와 내가 퇴사하기에는 3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영우는 끝내 회식자리에서 술에 만취한 채 이사에게 ‘당신이 고른 입면은 최악’이라며 삿대질을 했고 그다음 날 숙취로 회사에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더 출근을 했긴 했지만 역시 자신은 대형 설계 사무실의 찍어내는 디자인은 할 수 없다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퇴사 한 달 전 통보가 사칙이었으므로, 영우는 그 뒤로도 불편한 한 달을 더 출근하고서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나가던 트럭에 치여 2개월가량을 병원 침대에서 지내야 했으며 그동안 많은 것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내가 공들이던 프로젝트는 다른 실장의 손에 마무리되었고 수많은 세월을 몸담았던 회사가 낯설어졌다. 이번에는 영우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
손영우 : 팀장님. 저랑 재밌는 거 하나 해봅시다. 오전 3:23
손영우 : 영암시 시립 미술관 현상설계 공모 안내. pdf 오전 3:24
몸은 좀 괜찮으시냐, 잘 지내시냐의 일언 반구 없이 들이대는 본론에 예의 없는 연락 시간까지 제정신인 것이 하나도 없었으나 나는 꼰대 같아지지 않기로 했다. 요즘애들이란.
나 : 포트폴리오 내놔봐. 오전 4:08
우리는 일단 터를 잡지 않기로 했다. 21세기의 건축가가 굳이 촌스럽게 사무실을 잡고 엉덩이 붙이며 설계를 해야 하냐는 이유였지만 사실은 돈이 부족했다. 공유 오피스라도 잡아볼까 했지만 영우는 방랑 건축 사무실이라는 아이디어를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했다. 영우가 그토록 기뻐하며 구강구조를 다 보여주려는 듯 화, 하고 웃는 것을 나는 처음 보았다. 그는 웃을수록 못생긴 타입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각 지점의 스타벅스를 거점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오전 10시 반에 스타벅스에서 만나, 오후 1시까지 일을 하고 근처에서 점심을 먹은 뒤 또 다른 지점의 스타벅스를 찾아가 5시까지 일하고 그날 목표의 나머지는 각자의 집에서 숙제처럼 해오는 식이었다. 나는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된다면 어떻게든 영우를 설득해서 반지하라도 좋으니 사무실을 얻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