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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중보 Jan 17. 2022

월국 건축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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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골이 다 끓어서 바닥이 드러날 동안 술자리는 끊이지 않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한월을 아울러 건축 이야기에 한창이었다. 그들이 제대로 서로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어차피 상대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는 사람도 없었기에 상관은 없어 보였다.

유리는 짐짓 나에게만 조용히 술을 따라주며 이따금씩 말을 걸었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간단하게만 대답하며 복잡한 대답이 나올만한 질문만 골라 역으로 던졌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잠깐씩 한국어와 월국어가 머릿속에 섞이는 듯 미간을 좁게 찌푸리며 생각을 하곤 온전한 문장으로 대답했다.

유리는 한국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낸 월국인이었으며 짧은 십 대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꾸준히 한국어 공부를 했다고 했다.

“ 영암에 살았었어요. 아버지 일이 그쪽이었기 때문에. 만 15살부터 17살까지.”

유리는 종종 과하게 문법을 지킨 한국어를 구사했다. 짧게 말할 때는 전혀 티가 나지 않았지만 긴 대화를 나누자 그녀가 외국인임이 느껴졌다.

“영암 어디 쪽이요? 저 군대에 있을 때 거기 잠깐 있었는데.”

“영암… 삼학동? 상학동? 미안해요. 이제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상함동이요?”

“네! 맞아요. 거기서 학교를 다녔어요.”


상함동이면 휴가를 나와 술집이나 카페를 가던 번화가 동네였다. 지금도 영암 집값은 끝 모르고 오르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상함동이 있었다.

“좋은 곳 살았네요.”

“좋은 곳…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점점 빌딩 만들어지고 아파트 생기더라고요.”


그녀가 한국에 있을 시기 상함동은 재개발을 앞둔 동네였다고 한다. 듣자 하니 그녀의 아버지는 디벨로퍼인 듯했다.


 처음에는 그들이 왜 화를 내고 싸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며, 그렇게 반대하는데 굳이 건물을 부수려고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월국에선 좀… 헐거우면 헐거운 대로 낡으면 낡은 대로 사는 경향이 있으니까. 내가 살면서 첫번째로 본 분노하는 사람들이었어. 있지, 월국어에는 분노라는 표현조차 없거든. 그래서 한국어를 공부하며 화와 분노의 차이는 뭘까, 했는데. 바로 알게 되었지.

우리 학교가 산 위에 있었기 때문에 매일매일 볼 수 있었어. 결국 그 동네 주변에 펜스가 쳐지고 건물들이 부서지는 것. 그리고 새 건물들이 꼬물꼬물 자라나는 것.

식물 같다고 생각했어.”

한국에 언제 있었냐는 질문에 유리는 조잘대며 긴 이야기를 시작했고 나는 어차피 좋은 이야기꾼도 아니었기 때문에 마냥 듣고 있는 것이 좋았다.

내가 말을 끊지 않고 들어주자 유리는 여유가 생긴 듯 어려운 한국어 표현을 고민해서 써가며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이상한 일이지만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건축을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어.


유리는 매일 20분씩 걸어 등하교를 했다. 초여름이 시작되었지만 아직 하복을 사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춘추복을 입은 채였다. 아침이었지만 걸으니 땀이 셔츠 안으로 옅게 배었다. 영암은 바다가 보이지 않는 도시였지만 바람이 불며 나무 사이를 흔드는 소리가 파도의 부서지는 소리 같아 고향 생각을 하던 차였다. 공사장 가림막 위로 거대한 포크레인이 부서지다 만 건물 꼭대기에 위태롭게 자리해있는 것이 보였다. 공사장의 깡깡대는 금속음과 인부들의 소리 지르는 소음이 아득하게 들려왔다. 유리는 인부 중 하나가 무너지고 있는 건물 위에 올라 아득히 그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유리는 그가 애도를 하고 있다고 믿었다.


깡깡 거리는 금속 기계음이 절의 목탁소리처럼 들렸다. 혹은 미사 속의 종소리 같았다. 유리는 어떠한 신도 믿지 않았고 어떤 종교의 의식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어디서 본 대로, 유리 나름의 식으로 손을 모으고 기도 비슷한 것을 했다.

그녀에겐 타국인, 역사를 알 수 없는 어느 한 건물의 마지막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사실 별 볼일 없는, 크게 신경 써서 짓지 않은 소규모의 상가였을 것이다. 그 1층에는 위생에 크게 신경 쓰진 않지만 대학생 단골을 조금 가지고 있는 제육볶음 집이 있었을 것이고, 2층에는 누가 다닐까 싶은 초등생 수학/과학 교실, 3층에는 싸구려 벽지로 도배한 고시텔이 있는. 사라지고 나선 원래 어떤 건물이 있었는지 누구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흔하디 흔한 상가 건물.

반쯤 허물어져 단면을 너저분하게 보여주고 있는 그 폐허는 내장을 쏟아내며 죽어가는 거대한 산짐승 같았다. 또 한 번 더, 크레인이 손길을 스치며 건물은 크게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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