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왔지만,
다시 올 싸움을 알고 있을 때

조용한 평화, 그 뒤에 오는 불안

가끔 평화는 너무 갑작스럽게 온다.


방금까지도 서로의 표정은 얼어 있었고,

말이 오가면 또 금세 싸움이 날 것 같았는데

문득 전화가 오고, 장을 봐서 집에 오라는 말이 들려온다.


그 사람은 사과하지 않았다.


"미안해"라는 말은 끝내 하지 않았고,

나는 그 말이 듣고 싶었지만,

그가 보여준 행동에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다시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건 익숙한 흐름이다.

갈등이 있고, 침묵이 있고,

갑작스러운 평화가 찾아오는 것.


그리고 나는 매번 이 평화를 놓치고 싶지 않아

사과를 요구하지도, 내 감정을 꺼내지도 않는다.


그런데 알고 있다.

이건 오래 가지 않는다는 걸.


다시 몸이 예민해지는 시기가 오고,

감정의 결은 한층 더 날카로워진다.


작은 말 한마디가 다시 균열을 낸다.

우린 또 그 자리에 서서 서로를 밀어내게 되겠지.


그걸 알면서도 지금의 평화에 안도하는 내 마음이

조금은 슬프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나는 오늘도 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나를 접고 있지는 않은가?”


화해는 왔지만, 상처가 사라진 건 아니다.

나는 오늘도 괜찮은 척 평화를 받아들이고,

다시 올 감정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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