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감을 수 없는 이야기
퇴근길,
비가 갠
골목에서
나는
낡은 가방 옆에
떨어진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봤다.
‘MIX TAPE – 2002’
흰 스티커 위에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요즘 누가
이런 걸 쓸까 싶었다.
‘카세트 플레이어를
본 게 언제였더라.’
지나가던 남자가
발끝으로 테이프를
살짝 차며 웃었다.
나는
괜히 그것을
집어 들었다.
테이프 안쪽엔
자그마한 리본 모양의
끈이 풀려 있었다.
손끝으로
감아보려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 번 엉킨 리본은
완벽히 되감기지 않는다.
기억도
마찬가지겠지.
근처 카페에 들어서자,
창가 자리에 앉은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어폰을 낀 채,
아이패드로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그는 아마
나보다 조금 어려 보였다.
세상은 이미
디지털로 옮겨왔지만,
나는 손에 든
이 테이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남자는
화면을 스와이프하고,
나는
테이프를 뒤집었다.
그의 펜슬 소리와
내 손끝의 감김이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PLAY’ 버튼을
누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리본을
한 번 더 돌려봤다.
그건 마치,
되감을 수 없는
이야기의 끝을
억지로 붙잡는 행위 같았다.
그 남자가
일어나 나갈 때,
아이패드 화면은
이미 꺼져 있었다.
그리고 내 손바닥엔
풀리지 않은
리본 한 조각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