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끝에서 머무는 마음
그 이야기를
들었다.
추석의
저녁 식탁,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
따뜻한 음식
냄새 사이로
말 한마디가
공기를 갈랐다고 했다.
누군가는 그저
상처가 덧나지 않길 바랐고,
누군가는 그 말을
‘말대꾸’로 받아들였다 한다.
같은 순간,
같은 문장이
어쩌면
전혀 다른 온도로
닿은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오래 생각했다.
‘예의’란
무엇일까.
어른 앞에서
조심스러운 것이 예의라면,
내 상처를
지키는 일은 무례일까.
세대의 간극은
아마도 언어의 방향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그들은
‘참는 말’로
사랑을 배웠고,
우리는
‘표현하는 말’로
마음을 지킨다.
그래서 어떤 말은
다정함으로 흩어지고,
어떤 말은
다툼으로 남는다.
하지만 어쩌면
그 차이는 잘못이 아니라,
그저 살아온 방식의 결이
다를 뿐인지도 모른다.
식탁 위에서
엇갈린 말들은
결국
서로의 세월이
부딪히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잠시 말없이
창밖을 보았다.
불 꺼진
창문 너머,
누군가는 여전히
오해를 삼키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믿고 싶었다.
언젠가
그들의 말과
우리의 말이
서로의 온도를
조금은 닮아가길.
그래서
‘말대꾸’ 대신
‘마음의 이야기’로
남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