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IC # 17
‘원두를 볶는다’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보셨죠? 날것의 커피 생두를 가열해 원두 상태로 만드는 과정으로 ‘로스팅’(Roasting)을 의미합니다. 생두는 열을 받아야 화학 반응이 일어나 맛과 향이 더해지는데요. 가열하는 온도와 시간에 따라 천차만별의 원두가 완성되죠. 입맛에 맞는 커피를 수월하게 고르고 싶다면 ‘로스팅’의 원리를 알아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가 늘 접하는 고기를 굽는 것에 빗대어 쉽게 설명해드릴게요.
원두 로스터와 고기 불판
원두를 볶는 기계를 ‘로스터’(Roaster)라고 합니다. 기종마다 생김새는 다르지만 커다란 드럼통이 중심부를 이룹니다. 드럼통에 커피 생두를 넣고 열을 가하면 로스팅이 진행되죠. 가열된 불판에 생고기를 올리는 것과 동일합니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익어가듯 날것의 생두 역시 드럼통 안에서 익어갑니다. 로스팅을 시작하면 드럼통이 쉴 새 없이 회전하는데요. 고기를 앞뒤로 뒤집으며 굽는 것처럼 생두를 고르게 익히는 과정입니다.
마이야르 반응과 캐러멜화
생두를 가열하면 두 가지 화학 반응이 일어납니다. 바로, ‘마이야르 반응’과 ‘캐러멜화’입니다. 음식을 조리할 때, 단백질 성분이 열에 반응하면서 재료의 색이 갈색으로 변하고 맛이 나타나는 현상을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일컫는데요. 프랑스 화학자인 ‘루이스 카밀 마이야르’가 발견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로 인해 생두에 열을 가할수록 밝았던 색이 어둡게 변하고 숨어있던 다양한 향미가 나타나는 것이죠. 이어서 ‘캐러멜화’도 진행되는데요. 커피 특유의 달고 씁쓸한 맛이 원두에 코팅되는 현상입니다. 고기를 구우면 빨간 속살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겉 부분이 바삭해지는 것과 동일합니다.
‘마이야르 반응’은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캐러멜화’는 높은 온도에서 발생합니다. 마이야르 반응이 효과적으로 발생하는 온도는 약 120ºC이며, 약 175~180ºC에 최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온도가 그 이상 높아지면 마이야르 반응은 줄어들고 캐러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데요. 이때 단맛을 끌어올릴 수 있지만 온도 조절을 잘못하면 원두가 심하게 타서 쓴맛만 남을 수 있습니다.
원두 맛을 결정하는 로스팅 정도
소고기 안심과 삼겹살은 가장 맛있게 구워지는 시간도 다르고, 과도하게 구워서 겉이 타버리는 시점도 다르죠? 커피도 마찬가지입니다. 종류마다 표현되는 향미와 성질이 달라서 온도와 시간을 달리하여 로스팅 해야 맛있는 원두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또, 같은 생두라도 로스팅 정도에 따라 다른 맛을 끌어낼 수도 있죠.
전문용어로 로스팅 정도를 ‘배전도’라 일컫는데요. 원두를 볶는 정도에 따라 ‘약배전-중배전-강배전’ 3단계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배전도를 이해하면 취향에 맞는 커피를 고르기 수월해지죠.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주문할 때 ‘레어/미디움 레어/미디움/미디움 웰던/웰던’ 5단계로 입맛에 맞는 구운 정도를 선택하는 것처럼요.
1) 약배전 (Light Roasting) : 베이지 톤의 엷은 갈색으로 볶은 정도입니다. 생두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로스팅 포인트죠. 산미가 뚜렷하면서 생두 본연의 향미가 부각되는 지점입니다. 과일처럼 상큼한 산미가 특징인 에티오피아 커피를 주로 약배전으로 볶습니다. 고기 굽기 기준, 생고기의 육질과 육즙을 최대한 유지하는 ‘레어’ 단계와 비슷합니다.
2) 중배전 (Medium Roasting) : 약배전보다 진한 갈색으로 적당하게 볶은 정도입니다. 카라멜화로 발생한 단맛이 산미와 조화를 이루면서 향미의 밸런스가 가장 우수하게 발현되는 로스팅 포인트죠. 다양한 향미을 보유하면서 개성을 표현하는 스페셜티 원두들을 주로 중배전으로 볶습니다. 고기 굽기 기준, 지방이 녹고 고기가 질겨지면서 고소한 풍미와 육즙이 일품인 ‘미디엄’ 단계와 비슷합니다.
3) 강배전 (Dark Roasting) : 중배전보다 어두운 갈색으로 강하게 볶은 정도입니다. 산미는 거의 사라지고 생두의 특징보다는 로스팅으로 인한 진하고 씁쓸한 맛이 극대화되는 로스팅 포인트죠. 대중적으로 무난하고 균일한 맛의 원두를 대량으로 생산할 때 주로 강배전으로 볶습니다. 고기 굽기 기준, 속살이 거의 다 구워진 ‘웰던’ 단계와 비슷합니다.
원두 배전도로 주문하기
어렵게 느껴졌던 ‘로스팅’을 고기 굽기와 연결 지어보니 이해하기 쉽죠? 앞으로 커피를 주문하거나 원두를 구입할 때 ‘배전도’를 고려해보세요. 레스토랑에서 ‘등심-미디움 레어’를 주문하는 것처럼, 카페에서 ‘에티오피아-약배전’을 요청하는 거죠. 자기 취향에 맞는 배전도를 알고 원두를 꼼꼼하게 고르다 보면 커피를 더욱더 폭넓게 즐길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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