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듯 독립했다.

여행과 독립의 닮은 구석 '나홀로 낯선 곳에'

by 오월

2019년 11월, 런던 여행이 마지막이었다.

여행 갈 틈이 나면

비행기에 몸을 싣고

시간적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는 한

갈 수 있는 만큼 멀리 날아가서

마침내

낯선 세계에 툭

나홀로 착륙하는 기분.

어서와, 이곳은 처음이지?

모든 것이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감각을 일깨움으로

늘어져있던 감각마저 톡톡 깨어나는 경험.


사회적 자아를 접어두고

본질적 자아에 집중하며

나를 알아가는 시간.


이방인이 된 것 같은 낯선 그곳에서

온전히 나로서 나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의 여행의 경험을 통해 확신하게 됐다.

이곳을 여행지로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죽는 순간까지 평생 마주하지 못했을

다채로운 삶의 조각들을 관찰하는 것도

크나큰 여행의 묘미다.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

나에게 주는 보상이라는 흔한 여행의 이유.

그 이면에는 더 '넓은 세상'에서 더 '깊은 나'

만나고자 하는 욕구가 꿈틀대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들 자꾸만 여행을 가나보다.

여행이 고파서

오랜만에 책장에서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꺼내들었다.

인천공항에서 구매해

런던 가는 비행기에서 읽었던 책인데

첫장을 펼치니 3년 전에 쓴 메모가 있었다.

'여행하는 삶을 멈추지 않기를.'


삶이 아무리 바빠도

여행을 멈추는 일은

부디! 제발! 없길 바라는 마음을

스스로에게 신신당부해두었던 것이다.

여행 가는 길이 그토록 신이 났었나보다.

안타깝게도

코로나로 인해 여행길이 막혀버렸다.

모두의 여행이 멈춰버렸다.

때가 되면 (일년에 한 번은) 나가줘야하는데

그 기분을 햇수로 3년째 못 느끼고 있으니.

잠잠했던 좀이 다시 쑤시기 시작했다.

결국

오래 품고 있던

'독립'이란 카드를 꺼내들었다.

왜?

여행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나홀로 낯선 곳에 툭'

여행의 주된 이유가 이것이었다면

독립도 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른이 되면 독립을 해야지.

막연히 생각만 하면서

경제적 득과 실을 따진지 오래.

신중한 성격에 시기를 미뤄왔다.


어느새 서른을 훌쩍 넘겼고

이제는 때가 됐다는 걸 직감했다.

아니, 지금이 아니면 안됐다.

인생의 결정적 순간마다 촉을 곤두세우는데

나의 온감각이 전심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이야!

삼십년 넘게

오랜 흔적이 베어있는 정든 우리집을 떠나

여행 캐리어를 꾸리듯

꼭 필요한 짐들만 챙겨서 내집으로 왔다.


새로 이사 온 집에서는

저 멀리 공항 활주로가 내다보인다.

오분마다 비행기가 나는 하늘을 볼 수 있다.

해가 뜰 때, 노을이 질 때, 캄캄한 밤에.

이륙하는 비행기 풍경이

(아직까지는) 매일 매일 새롭다.

구름 사이로 지나는 비행기를 보면서

코시국 이후 첫 여행이 될 다음 여행지도 그려본다.

선택에는 책임이 뒤따르기에

나이가 들수록 선택이 부담스러워진다.

독립한 걸 후회하면 어쩌지 걱정도 있었지만,

결론은 후회하지 않는 선택으로

내가 만들어나가면 되는 것이다.


새로운 집에서 여행하는 마음으로 지내는

요즘이 참 만족스럽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내가 선택함으로써

순간순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

이런 선택의 순간들이 모여 결국 내 인생이 되겠지.

십년 전 캐나다에서 고작 일년 머무는 동안,

다양한 집의 형태와 주거 환경을 경험하고 싶어서

외곽 지역에 있는 주택가 홈스테이부터

다운타운 한복판, 해변가의 집, 공원 앞집으로

무려 네 번이나 자발적으로 이사를 다녔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덕분에 그 일년간은 이야깃거리가 한가득이다.


지금은 그 때만큼의 열정과 체력은 없지만

여행의 본질과

여행의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은 나라서 다행이다.

대학생 때 참 좋아했던 헤밍웨이의 문장.

"만약 당신이 젊은 시절,

파리에 살 수 있는 행운을 누린다면

당신이 평생 어디를 가든 파리는

'움직이는 축제'처럼 당신 곁에 머무를 것이다."

이십대 때 쌓아온 여행의 경험이

살면서 시시때때로 '움직이는 축제'가 되어

위로와 응원을 더해주었듯이,

삼십대에도 새로이 꺼내어 볼

기분 좋은 기록들을 부지런히 쌓아가야지.


다음엔 과연

또 어느 낯선 곳에 떨어지게 될 지.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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