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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Mar 12. 2022

캐나다 머핀 가게 면접 후기

진심은 통하는 법이니까! 나의 때는 오기 마련이니까!

밴쿠버에 온 지 3일째 되던 날, 그랜빌 아일랜드를 찾았다. 이름만 섬이지 고립된 외딴섬은 아니다. 다운타운 남쪽의 다리 하나만 건너면 도착한다. 만남의 장소라 불리는 런던드럭스 사거리에서부터 그랜빌 스트릿을 따라 걷다가, 그랜빌 브릿지를 건너 내려오니 그랜빌 아일랜드가 보인다. 


한두 시간이면 둘러볼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한나절을 보내도 심심하지 않을 만큼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다. 한번 발을 들이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밴쿠버의 매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고, 그래서 누군가 밴쿠버에서 갈만한 곳을 묻는다면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은 곳이다.

퍼블릭 마켓을 중심으로 맥주 양조장, 레스토랑, 키즈마켓, 키즈파크 등이 모여있다. 예술 디자인 학교가 있어서 소규모 갤러리와 공방들도 많다. 아트 클럽 극장에서는 뮤지컬이나 콘서트를 즐길 수 있다. 여름이 되면 페스티벌도 빈번히 열린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공장지대였던 곳이 이렇게 근사한 문화 상업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니. 마치 문화 창고 같은 보물섬에 와 있는 듯했다.

그중에서도 퍼블릭 마켓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곳이다. 어느 도시 시장을 만나면 반갑다. 장바구니를 들고 오가는 사람들 틈에서 현지인이 된 것 같은 기분. 북미나 유럽의 마켓들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고유의 냄새와 풍경이 있다.


퍼블릭 마켓에는 싱싱한 채소와 컬러풀한 과일들, 해산물, 햄과 고기, 온갖 종류의 치즈, 유기농 꿀,  각종 향신료, 빵집, 꽃집, 비누 가게 등등 없는 거 빼고 다 있다. 푸드코트에서도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데 가장 인기 있는 건 클램 차우더.

한 가지 인상 깊은 건 마켓에서 일하는 대다수가 젊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역동적이면서도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좋았다. 이곳을 자주 들를 게 분명했다. 한편으로는 이곳에서 일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캐나다까지 왔는데!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런 생동감 넘치는 시장에서 일해보고 싶다!

그런데... 세 달 후에 진짜로  일터가 되었다.


평일 네 시간씩 하는 파트타임 잡에 익숙해져서 일을 하나 더 구할 무렵이었다. 워홀러가 두드리기 쉬운 곳이 카페였고, 외국 카페에서 일하면 재밌는 경험이 될 것 같았다. 레주메를 스무 장 가량 프린트해서 다운타운의 여러 카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인터뷰까지 이어진 건 두 군데뿐. 팀홀튼과 블렌즈였는데 결국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내 자리가 아니었나 보지! 분명 내 자리도 있을 거야!'

긍정 회로를 돌리면서도 얼른 구하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매일 같이 보던 구인 사이트에서 좋은 기회를 발견했다. 그랜빌 아일랜드라니 !!!

 그랜빌 아일랜드에 위치한 '머핀 그래니'에서 풀타임 코워커를 구합니다!

곧장 레주메를 보냈고, 며칠 후 인터뷰가 잡혔다. 바다 한복판 작은 배 위에서 일하는 아주 기분 좋은 꿈을 최근에 꿨는데! 왠지 예감이 좋았다. 예상 질문을 뽑아서 나름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인터뷰 하루 전날, 그랜빌 아일랜드로 갔다. 머핀 가게의 위치를 확인했다. 출입문 바로 앞에 위치해서인지 가게에서 보이는 바깥 바다 풍경이 마음에 쏙 들었다.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블랙보드에 분필로 그려 넣은 메뉴판이 예뻐서 사진으로 남겼다. 라즈베리 스콘과 얼그레이 티도 한잔 사서 마셨다. 오늘은 손님으로 왔지만, 다음엔 출근하게 되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일하려면 품목별 가격을 얼른 파악해야 할 텐데! 아까 찍어본 메뉴판을 보고 미리 메뉴를 공부하고 그걸 어필하는 거야.' 집에 와서 무지 노트를 폈다. 메뉴판에 적힌 품목과 가격을 그대로 적고, 색연필로 예쁘게 강조도 해주고, 그곳에서 일하는 내 모습까지 그리기 시작했다. 언어가 백 프로 통하지 않으니까 어떻게라도 간절한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진심은 통할 테니까! 스물세 살의 귀엽고도 당찬 열정이었다. 지금에서야 다시 보니, 가장 단순하고도 확실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대망의 인터뷰 날, 캐네디언 매니저가 앞치마를 두르고 나왔다. 에이미라고 한다. 간단한 기본 질문들로 시작했다.


워킹 비자 기간은 얼마나 남아있어?

Sin 카드 보여줄 수 있어?

- 응. 10개월이나 남았어. 

어디에서 살아?

- 다운타운 아파트에서 살아서 아주 가까워.

카페에서 일해본 적 있어?

- 한국에서 파트타임으로 짧게나마 한 적 있어. 커피 종류별로 만들어 봤었고, 뭐든 배우면 금방 익히는 편이야!

빵 좋아해?

- 빵 사랑해! 빵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나? 어제 너네 라즈베리 스콘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더라.

어? 나 강남 알아. 강남 스타일~! 그 강남 맞지?

- 맞아!!

강남 어학원에서 영어 공부했던 걸 적었는데 레주메에서 '강남'이란 단어를 보고 반가워했다. 강남스타일의 인기가 이 정도라니. 싸이가 빌보드 1위를 기록한 12년도라 뜻밖에 싸이 덕 좀 봤다. 내가 더 반가운 마음에 말춤 팔 동작을 살짝 시늉만 했을 뿐인데, 에이미가 너무 좋아했다. 이 분위기를 몰아가야겠다 싶어 얼른 비장의 노트를 꺼냈다.



이게 뭐야?

- 머핀 그래니의 메뉴 보드가 참 예쁘더라. 어차피 일하려면 메뉴를 잘 알아야 하는데 미리 공부할 겸 재미 삼아 그려봤어. 그만큼 여기서 일하고 싶어! 머핀 그래니에서 날 뽑아준다면, 좋은 선택이 될 거야. 난 누구보다 최선을 다할 거니까!


노력이 가상했는지 에이미가 'Lovely'를 외쳐줬다. 그동안 이런 걸 보여준 지원자는 없었다고 한다. 인생을 살면서 결정적인 순간엔 나만의 한방이 있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이 날은 메뉴를 끄적인 노트가 나의 한방인 셈이었다. 이번엔 꼭 붙고 싶었고 기대감도 컸다. 홀가분하게 인터뷰를 마치고 그랜빌 아일랜드를 한참이나 돌아다녔다.

이틀 뒤에 핸드폰이 울렸다. 매니저 에이미였다.

"축하해. 올리비아! 2주 후부터 출근하면 돼! "

드디어, 세 달만에 풀타임 잡을 가지게 됐다. 이렇게 기쁠 줄이야! 다운타운을 돌아다니며 레주메를 그렇게 돌렸건만, 줄줄이 떨어졌던  결국 이곳에서 일하기 위한 준비 단계였을까! 매 순간 큰 용기를 내어 레주메를 건넸던 기억스쳤다. 역시 각자의 기회와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워홀러들이 쉽게 좌절하지 않으면 좋겠다.  진심을 알아봐 주고 나를 믿고 뽑아준 매니저 에이미가 고맙다!

밴쿠버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

그랜빌 아일랜드의 퍼블릭 마켓에서 잠시나마

그들과 섞여서 일할 수 있던 건 큰 기쁨이었다.


주말 아침마다 깨끗한 공기 마시면서

다리 건너 걸어가던 출근길이 가끔 그립다.

그랜빌 브릿지를 건너며 바라본 낮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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