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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Mar 05. 2022

캐나다 도착 첫날부터, 김밥을 말고 있다니!

지구 반대편에서 어쩌다 김밥

비행기를 이렇게 오래 탄 건 처음이었다. 인천에서부터 11시간을 날아서 밴쿠버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사진으로만 보던 YVR의 트레이드 마크, 두 장승이 반겨주는 걸 보니 밴쿠버에  게 실감 다. 이 순간을 머릿속으로 백번은 더 그려왔지만, 상상만 하던 낯선 곳에 내가 직접 서게 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지.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드디어 캐나다 땅을 밟았구나!

일 년 동안 잘 지내보자!

짐을 찾고, 워크퍼밋을 받아 출구로 향했다. 미리 연락을 주고받던 홈스테이 맘이 마중 나오기로 했었다. 입국장을 둘러보니 귀여운 남자아이가 내 이름과 Welcome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서있었다.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 수줍게 나를 맞이해준다. "Hi, Olivia. Nice to meet you. I'm Mark."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홈스테이 집 아들이었다.


주차장에서는 홈맘이 트렁크를 열고 기다리고 있었.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꼭 안아주는데 우리네 엄마처럼 따뜻했다. 오늘부터 홈스테이 패밀리가 되었다는 이유로 처음 보는 이들이 나를 챙겨준다는 게 기분이 묘하면서도 감사했다.


공항에서 집까지는 약 30분. 수줍은 마크는 말이 없었고, 홈맘이 내게 궁금한 이것저것을 물어봤다. 이제 본격적으로 영어의 세계가 시작된 것이다. 대화에 집중하고 싶지만, 눈은 창밖으로 향했다. 이국적인 풍경에 완전히 시선을 빼앗겼다.


집으로 가는 길에 본 캐나다의 첫 풍경,

차창 내리고 맡았던 캐나다의 공기와 냄새는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Here we are."

<모던 패밀리> 같은 미드에서 나오는 이층짜리 하우스에서 살면 어떤 느낌일까. 언젠가는 단독주택에 살아보고픈 로망이 있었는데! 그런 집에서 살게 되다니! 꿈만 같았다. 앞집, 옆집, 골목마다 다른 형태의 주택이 즐비해있었다.


홈스테이는  650~850$ 정도로 비싸긴하지만, 삼시 세 끼를 제공해준다는 점. 좋은 패밀리를 만나면 마음의 안식처가 될 수 있다는 점. 영어로 소통하며 생활 영어 실력을 늘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두 달 정도는 이곳저곳 혼자 다니면서 적응할 겸 홈스테이 문화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출국 두 달 전부터 'HomestayFinder'라는 사이트를 통해 비교 분석하고 호스트들과 직접 메일을 주고받았다. 유학원을 통하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준비하고 결정했던 만큼, 홈스테이 패밀리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다른 가족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아줌마, 아저씨, 아들, 딸 말고도 중국에서 온 친구, 사우디에서 친구, 일본에서 온 학생이 있었다. 내가 지내게 방도 안내 받았다. 평생 내 의지로는 고를 일 없을 빨간 침구였지만 아늑한 방이 썩 마음에 들었다.

짐을 내려놓기도 전에 홈맘이 마트에 간다며, 살 거 있으면 가자길래 대뜸 따라나섰다. 런던 드럭에서 드라이어를 하나 구매하고, 근처 마트에서 장도 같이 봤다. 외국 여행 가면 마트나 시장 구경은 필수! 현지에서 파는 물품들과 가격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과일 코너, 과자 코너, 육류 코너, 우유 코너를 열심히 둘러보고 있었다.


홈맘이 갑자기 제안을 했다.

"만들 줄 아는 한국 음식 있어?"

이전에 있던 한국인 친구들이 해준 김밥이랑 떡볶이가 정말 맛있었단다. 김밥, 떡볶이쯤이야 나도 할 줄 알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그럼 저녁에 같이 김밥을 만들어 보는 건 어때?"

얼떨결에 또 그러자고 했다.

시차 적응이 안 된 탓인지 눈이 점점 감겨오는 상황. 정녕 오늘 김밥을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자연스럽게 김밥 만들기가 시작됐다. 상황에 적응이 안되면서도 한편으론 시트콤 같았다. 새집에서 첫날 내가 어색해할까봐 한국 음식으로 일종의 아이스브레이킹 하려는 홈맘의 마음이 느껴졌다. 오는 차에서부터 한국에 대해 계속 물어봐주고 말을 이어갔다.


김밥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가족들과 친구들도 다이닝룸에 모였다. 하나둘 손을 보탰다. 홈맘이 식탁에 세팅해준 밥과 재료를 정성껏 올리고, 이제 말기만 하면 되는데! 맞다! 제일 중요한 김발이 필요했다. 아저씨와 마크가 한참 동안 '뱀부! 뱀부!' 거리면서 김발을 찾았으나, 결국 못 찾아서 그냥 도마 위에 올려놓고 둘둘 말았다. 한국에서도 김밥을 말아본지가 언제더라. 엄마 옆에서 자주 거들었지만, 모두가 나만 바라보는 앞에서 그럴듯한 김밥을 만들어내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나는 김밥 고수가 아니므로 모양이 예쁘게 나올 리 없었다. 어찌어찌 김밥을 열 줄 가까이 말고, 싹둑싹둑 칼로 썰었다.

몇 줄은 터지고 들러붙기 일쑤. 모양이 삐뚤빼뚤 어설펐으나, 하나씩 맛보곤 다들 맛있다고 해줬다.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예의였을까.) 김밥만 먹었더라면 어딘가 아쉬운 저녁이었을 텐데 다행히도 홈맘이 라자냐를 해줬다. 어쩌다 '김밥과 라자냐' 파티. 둘의 조합은 훌륭했다. 배를 채우니 눈이 더 감긴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함께한 김밥 만들기 덕분에(?) 긴장이 풀린 듯하면서도 피곤이 잔뜩 몰려왔다. 중요한 임무를 마친 나는 먼저 들어가겠다고 방으로 서 침대에 털썩 누웠다.  


눕자마자 또 웃음이 났다. 현실감이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한국에 있었는데 말이지! 지구 반대편에서 낯선 사람들과 김밥을 말 줄이야! 외국인들에게 K푸드를 직접 만들어 먹였다는 뿌듯함 1/3. 피곤해 죽겠다 1/3. 내일은 또 무슨 일이 펼쳐질까 1/3. 앞으로의 나날들을 기대하면서 깊은 잠이 들었다. 캐나다에서첫날은 그렇게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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