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는 날씨부터 뜻밖이었다. 누군가는 "내가 겪은 가장 쌀쌀한 겨울은 샌프란시스코의 여름이었다."라고 말했다는데 단번에 공감했다. 8월임에도 불구하고, 샌프란시스코의 여름은 쌀쌀하다 못해 추웠다. 그날 찍은 사진만 봐도 당시의 추운 감각이 되살아나는듯하다.
미국 서부 끄트머리, 샌프란시스코 만에 위치한 도시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게다가 북태평양의 한류가 지나면서 만들어진 안개가 기온 상승을 막아서 춥다고 한다.
이렇다 할 계절이 없고, 일 년 내내 우리의 초봄 정도. 샌프란시스코의 날씨를 요약하자면 #Summer-chill #Foggy. 햇볕이쨍하다가도 안개가 드리우거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옷을 한껏 여미게 된다. '그래 봤자 여름인데 추우면 얼마나 춥겠어?'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큰코다친다. 샌프란시스코에 가시게 되거든, 바람막이나 후드 하나 정도는 꼭 챙겨가시길!
밴쿠버에서 SF까지 비행기로 두 시간. 유나이티드 항공을 이용했다. 공항에서 나가 미국 땅을 밟던 기분이 생생하다. '아메리칸 스멜이 이런 건가. 진짜 미국이네.' 시애틀 갔을 때도 느꼈지만, 캐나다와 미국은 같은 영어권의 북미 국가인데 느낌이 사뭇 다르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바트(BART) 타고 30분. 캐리어를 끌고, 사촌오빠가 있는 몽고메리역 회사 근처로 갔다.
역사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분다. 겨울처럼 막 매섭게 추운 건 아니지만, 공기가 차다! 살면서 '추운 여름'을 이날 처음 느꼈다. 밴쿠버의 여름은 천국으로 불릴 만큼 화창하고 습기 하나 없는 쾌적한 날씨라, 밴쿠버 사람들은 여름만 손꼽아 기다리면서 산다. 같은 서부니까 비슷할 줄 알았는데 완전히 달랐다.
샌프란시스코는 여름에도 쌀쌀하니까 꼭 겉옷 챙겨 와야 해.
오빠의 말을 흘려들은 것이 후회막심. 이래서 어른들 말씀은 잘 들어서 나쁠 것 없나 보다. 그나마 반팔에 가디건을 걸치고, 얇은 스카프를 두르고 가서 견딜 수 있었다.
머나먼 여행지에서 만나는 가족은 존재만으로 든든하다. 한국에서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보던 사촌 지간이지만, 오빠가 결혼해서 미국으로 이민 가고는 처음 보는 거라 무척 반가웠다. 오빠네가 사는 동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쪽으로 다리 건너 버클리였다. 퇴근 시간쯤 다시 만나기로 하고 캐리어만 맡기고 나왔다. 짐을 맡겨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는데, 뜻밖의 선물까지 받았다. 사촌 동생 놀러 왔다고 '베이 크루즈 티켓'을 미리 예매해둔 섬세함! 나는 열심히 즐기고 경험하는 것으로 보답해야지.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혼자만의 반나절 여행을 시작해본다.
파웰 스트릿 (Powell Street)
케이블카 (Cable Car)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케이블 카! 도시 자체에 가파른 언덕이 많아서 교통수단으로 케이블 카가 운영되고 있다. 평일이었는데도 관광객들로 붐벼서 줄이 꽤나 길었다. 파웰 스트릿은 종점인데 회차하는 지점에서 트램이 혼자 저절로 돌 수 없기 때문에 성인 남자 여럿이 붙어서 회차를 도와준다. 이런저런 새로운 삶의 모습들을 구경하느라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았다.
여행자의 시간에는
기다림의 순간조차 풍경이 되고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세상을 흡수하는 특별함이 있다.
느리게 가는 롤러코스터처럼 경사진 길을 타고 오르면 낭만적인 그림이 펼쳐진다. 빌딩 사이로 마주 보고 서 있는 울창한 나무가 이 도시의 풍경과 잘 어우러져서 고유의 분위기를 뿜어낸다. 나무가 없었더라면 아마 삭막한 풍경이었을 것 같다. 오르막길은 나무와 하늘을 보면서 간다면, 내리막길은 서서히 바다로 이어진다. 중간중간 하차하는 곳이 있는데 나는 '피셔맨즈 워프'를 가기 위해 끝지점까지 왔다.
피셔맨즈 워프 (Fisherman's Wharf)
피어 39 (Pier 39)
'어부들의 부두'라는 뜻의 피셔맨즈 워프. 샌프란시스코 대표 관광명소이다. 19세기 후반 이탈리안 출신 어부들이 어업을 하면서 활성화된 곳으로 지금은 부두에 유람선 선착장, 쇼핑가, 기념품샵, 레스토랑, 카페 등이 즐비해있는 종합 쇼핑몰이다. 피어39의 상징, 일광욕을 즐기는 '바다사자' 무리는 다소 신선한 충격이었다. 생각지 못한 비주얼과 냄새, 울음소리에 웃음이 났다.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많아서인지, 바닷가 옆에 있던 회전목마는 디즈니 만화의 한 페이지처럼 참 예뻤다.
클램 차우더 (Clam Chowder)
해산물 레스토랑이 많아서 갓 쪄낸 게부터 다양한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혼자 여행 중에는 메뉴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안그래도 추운데 바닷바람까지 맞느라 몸을 녹일 필요가 있었다. '클램 차우더'가 유명한 베이커리로 갔다. 시큼한 사워도우로 만든 둥그스름한 빵. 그 속을 파서 넣은 조갯살과 각종 해물이 듬뿍 들어간 따끈한 수프. 서둘러 한 숟가락을 뜨자 입안이 따뜻해졌다.
클램 차우더는 샌프란시스코의 추위를 견뎌내는 든든한 한 끼가 된다.
베이 크루즈 (Bay Cruise)
따뜻한 한 끼를 배불리 먹고 부두를 따라 걸었다. 선물 받은 크루즈 티켓을 가지고 선착장으로 간다. Red & White Fleet은 금문교, 알카트라즈 감옥섬, 베이브리지를 돌고 오는 루트다. 반갑게도 오디오 가이드에 한국어도 있어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크루즈에서 바라본 샌프란시스코 시내 전경.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던 경사진 도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낮 풍경도 좋지만, 밤 풍경도 멋있겠다.
#1. 금문교 (Golden Gate Bridge)
#2. 알카트라즈 섬 (탈출이 불가능한 인류 역사상 가장 악명높은 감옥)
#3. 베이 브릿지 (Bay Bridge)
스카프 휘날리며- 스카프 절대 지켜-.jpg
바닷바람에 정신은 못 차릴지언정 사진은 남겨야 한다.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찰나니까! 남는 건 사진뿐이니까!
한 시간 반 남짓 크루즈 투어를 마치고 향한 곳은 부두 앞 작은 카페. 따뜻한 초코 라떼를 마시면서 바닷바람에 혼미해진 정신을 되찾고 있었다.
바닷가 동네에서만 느끼는 역동적인 여유로움. 가만히 앉아 창밖을 구경하는데- 우연히 바라본 시선에 나른해지는 평온한 풍경이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