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대 밴드 수선관 그 밴드 / 밴드 크루즈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균관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 재학 중인 21학번 김성민이라고 하고요, 수선관 그 밴드에서 2년 동안 활동했고, 유학대 소모임인 피크닉에서 객원으로 1년 반 정도 활동한 경험이 있습니다.
성민 님이 어떻게 밴드, 혹은 악기를 접하게 됐는지가 궁금합니다.
악기는 드럼으로 처음에 시작했던 거 같아요.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부모님이 다니시던 교회를 같이 다녔는데, 거기서 어머니가 부목사님께 드럼을 배웠었거든요. 드럼을 배우는 거를 옆에서 보면서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 하면서 드럼을 조금씩 쳤어요. 근데 중고등부로 올라가니 이미 드럼을 치던 형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하고 있다가 그 당시 교회 부목사님이 베이스 세션이 비어 있으니 베이스를 쳐보지 않으련? 하며 베이스의 계이름을 알려주시고 그 다음주부터 찬양을 하라고 하셔서... 뭐 그렇게 베이스를 지금까지 거의 10년 동안 치고 있는 것 같네요.
그렇게 베이스를 쭉 독학하며 교회에서 반주를 하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밴드부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말만 밴드부지 그냥 동아리 시간에 모여서 농땡이 까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근데 그래도 축제 무대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축제 무대를 준비하다가, 하필 축제 이틀 전에 제가 독감에 걸려서 무대에는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가면 좀 제대로 된 밴드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대학에 들어왔던 거 같아요.
그렇게 사회과학대학으로 입학을 했는데, 사실 저는 사회과학대학 소속이면 사과대 동아리에 들어가야 하는 건 줄 알았어요. 중앙 동아리의 존재를 모르기도 했고, 다른 학과 동아리에 들어가면 안되는 줄 알았어서, 사과대 소속인 헤게모니와 수선관 그 밴드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그 수선관 그 밴드 특유의 ‘짜치는 이름’이 약간 와닿았어요. 약간 내 감성에 맞는, 개그 욕심 많은 밴드일 거 같다? 밴드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면 ‘수선관 그 밴드요’라고 답할 수 있는 그런 재치 있는 밴드 일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부터가 아마 본격적인 밴드 경험의 시작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럼 밴드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상황은 어땠나요? 기대했던 것에 좀 맞았나요?
제가 입학했던 해에는 아직 코로나 때문에 인원 제한 이런 것도 있던 시기라 공연을 일단 못 했어요. 1학기와 여름방학 때까지는 공연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공연을 못 하니까 사실 뭐 공연에서 오는 뽕 맛을 잘 몰랐어요. 공연 뭐 우리끼리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래도 제가 재수를 해서 나이가 한 살 많기도 하고, 수그밴이 2년 동안만 활동할 수 있어서 부원들도 거의 다 친구 아니면 동생들이어서 적응 자체는 편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 밴드 활동을 하고 싶으니까 제가 막 취미 합주를 잡았던 것 같아요. 이 곡 하실 분, 하실 분 하며 사람들을 모아서 같이 합주하고, 곡 얘기도 하고. 그러면서 제 실력이 엄청 늘기도 하고 제가 몰랐던 밴드, 쏜애플, 잔나비 같은 밴드들도 더 많이 접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밴드에 대한 로망을 처음 실현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2정공(2학기 정기 공연), 저의 첫 공연이자 위 기수의 마지막 공연이었습니다. 물론 그때도 관객은 코로나 때문에 받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오피들(수그밴 졸업 기수들)만 구경 오시고, 우리끼리의 발표회 같은 느낌으로 공연을 했는데 그마저도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베이스라는 악기가 묵묵하고 조용한 악기라 막 주목받거나 칭찬받는 악기가 아닌데, 마침 2정공 때 베이스가 좀 튀는 노래가 있었어요. 쏜애플의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라는, 베이스 인트로가 있는 곡이었는데, 제가 베이스로 인트로를 들어가면 사람들이 ‘우와 성민이 잘한다’이러니까 그게 기분이 너무 좋았던. 내가 뭔가 한다는 걸 알아주고, 그 당시에 있었던 마음의 문제를 밴드 활동을 하면서 응원받고 치유받는 느낌이라 ‘밴드 하길 잘했다’, ‘이게 밴드구나’ 했던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 새터 무대도 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1박 2일짜리 새터가 아니고 그냥 600주년 기념관 조병두 홀 이런 데에서 학과 설명회, 동아리 설명회 하고 무대 보는 정도였어요. 사과대 새터에서 ‘좋은 밤 좋은 꿈’이라는 곡을 할 때, 신입생분들께 핸드폰 플래시를 켜서 별을 만들어달라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드렸는데, 방금까지 지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신입생들이 하나하나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서 불빛을 켜고 흔들어주는 모습이, 그게 너무 예쁜 거예요. 그런 불빛은 제가 공연장에 가서 해보기만 했지 직접 보는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정말 너무 예뻤습니다. 또, 예대 새터에서 공연할 때는 사람들이 호응이 정말 좋았어요. 생소할 수 있는 노래에도 다같이 일어나서 호응해 주는.
그렇게 점점 관객의 뽕맛을 느낀 것 같습니다. 우리끼리 하는 게 아니라 관객이 있을 때 내가 더 신나는구나. 관객들이 있는 공연을 더 해보고 싶고 축제도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들이 계속해서 저에게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확실히 당시에 코로나가 밴드의 큰 방해 요소였던 것 같기는 하네요. 밴드는 관객이 많아야 제맛인데.
실제로 그때 밴드를 나가는 친구들도 엄청 많았어요. 점차 코로나가 나아지면서 부원 친구들과 함께 공연도 하고, 공연 참여하지 못한 친구들은 객석에서 호응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훨씬 더 좋고 재밌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그 당시에 많이 했던 거 같네요.
성민 님이 사실 수선관 그 밴드의 기짱(회장)이셨잖아요? 사실 어느 동아리 회장이 안 그러겠냐마는 신경 쓸 것도 엄청 많고 해야 하는 것도 당연히 많은데, 기짱이라는 위치에서 밴드를 운영할 때 힘들었던 점이나 짜증 났던 점이 있었을까요?
제 역량이 부족한 것도 있었겠지만, 기대치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그랬듯, 밴드부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되게 낭만적인 것을 바라고 들어와요. 근데 막상 밴드부를 해보면 낭만만 쫓기는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끼리의 정기 공연이면 모를까, 오디션을 보게 되거나 축제를 나가야 할 때에는 우리만 좋다고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듣는 사람들, 일반적인 대중분들은 사실 밴드에 대한 인지도가 그렇게 높지 않으니 그런 것 사이에서 타협하는 것도 처음에는 좀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동아리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렸어요. ‘밴드는 서로가 좋자고 하는 건데 굳이 스트레스 받으면서까지 완성도를 높일 필요가 있는가? 우리끼리 즐기면서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의견과 어차피 기왕 하는 거 관객들에게 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의견 사이에서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기짱이 된 초반에는 그 두 의견을 모두 끌어안고 가는 게 기짱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낭만과 완성도 모두 챙기고,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는 그런 동아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는데, 정기 공연을 직접 주도해서 하다 보니까 이게 제 역량 대비 과한 욕심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정기 공연이 끝난 뒤 여름 방학 동안 많은 고민을 했죠. 그렇게 나온 결론은 저 스스로가 결단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나머지 동아리 부원들도 낭만과 실력의 사이에서 확신 없이 우왕좌왕했던 거 같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가 좀 더 확신을 가져야겠다 생각했고, 저는 실력 챙기는 것에 집중하자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아요. 어쨌든 축제든 무대든, 우리끼리 하는 정기 공연이 아니면 오디션을 봐야 하는데, 무대를 일단 올라가야 낭만을 챙길 거 아닙니까.
정리해서 말하자면, 실력을 키워서 학교 축제에서 오히려 낭만을 챙기고, 수그밴의 정기 공연에서는 실력을 챙겨서 밸런스를 맞추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수그밴에서의 평반이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실력이 좋은 팀들에게는 더 무대를 다채롭게 꾸미거나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예를 들어 어떤 식으로 편곡을 해본다거나, 인트로나 아웃트로를 만들어본다거나 하는 식으로 제시해주고, 약간 부족하거나 노베(처음 악기를 잡아본) 친구들에게는 조금 더 현실적인 조언을 해줬습니다. 축제 같은 경우에는 자유롭게 나가자고 생각했던 것 같고요. 우리가 즐거워야 관객이 즐겁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던 것 같네요. 그렇게 약간 힘들었던 시기를 스스로 좀 확신을 가져야 한다 하는 생각으로 보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2학기에 훨씬 더 부원들의 만족도가 높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러면 반대로, 회장을 하면서의 좋은 기억들은 어떤 게 있었을까요? 이런 기억 덕분에 회장 일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었다고 하는 것들이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거 같아요. 22년도 1학기 정기 공연 시기에, 제 기준에 제가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사건들이 몇 개 있었는데, 하필 그때 공연 날이 제 생일이었어요. 그리고 수그밴은 공연 전날에 총합주를 했는데, 총합주 때의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았어요. 저는 그걸 저의 역량 부족이라고 느꼈고, 총합주가 끝나고 친한 친구의 자취방으로 가서 울었어요. 내가 너무 모자란 사람인 것 같고 부원들이 가지고 있는 불만을 제 힘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너무 모자라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펑펑 울다가 12시가 지나갔는데 옆에서 그 친한 친구가 ‘형 그래도 수그밴 톡방에서 생일 축하한다고 애들이 막 올려준다. 형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도 애들은 형 되게 믿고 따른다.’ 이런 얘기를 해 주면서 카톡을 딱 보여주는데 막 생일 축하해, 우리 기짱 최고야 이런 내용들이 막 올라와 있는 걸 봤을 때 진짜 펑펑 울었어요. 진짜 막 울면서 ‘그래 애들이 날 이렇게 믿어주는데 내가 못 할 게 있겠나. 내가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날 믿는 사람들한테 내가 보답할 수 있다면 뭔들 못 하겠냐.’ 하는 생각이 막 들더라고요.
두 번째는 22년도 여름방학 클럽 공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름방학 클럽 공연은 사실 저는 (그 당시에)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전에는 코로나 때문에 못 했으니까. 근데 이게 저의 위 기수 선배들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굉장히 재밌다더라~’ 이런 식으로 인수인계가 된 거죠.
아, 그 선배들도 ‘야 우리도 해본 적 없는데 재밌다더라~’ 이런 식으로만 인수인계가 된 거군요?
네 그러니까요. (웃음) ‘우리도 해본 적 없는데, 해본 적 있는 선배가 이거 되게 재밌다고 하더라. 꼭 해봐!’ 이런 식으로요. 근데 저는 솔직히 하기 싫었어요. 1정공에서 경험한, 그 준비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너무 있었거든요. 근데 뭐 어떡해, 기짱이면 해야죠... 코로나도 이제 한창 잠잠해지고 다른 동아리들도 방학 공연을 하는 추세였어서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근데, 그때 그 공연을 준비하는 3주라는 기간이 제 밴드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3주였던 거 같아요. 방학에도 시간을 내서 공연을 하려고 하는 친구들이 모여서, 여유롭게 또 열정적으로 공연 준비를 하니까 이게 너무 좋고, 다른 팀 합주에 평반을 하러 들어갔을 때도 피드백을 줘야겠다 하는 압박도 없이 그저 즐겁기만 했어요. 애들 실력이 1학기에 비해서 성장한 걸 보는 것도 좋고, 제 합주를 할 때도 서로 자유롭게 의견 공유하면서 공연을 준비하는 게 진짜 너무 재밌었어요.
그래서 그 3주 동안 하면서 내가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운영할 때는 얘네를 보고 가야겠다.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열정이 가득해서 이렇게 자기 시간을 쪼개가면서 준비하는 이 친구들을 위해서 내가 이 밴드를 운영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까 말했던 그 실력과 낭만을 모두 끌고 가려는 생각을 이때 고친 것 같아요. 얘네를 위해서 얘네를 위한, 이 친구들이 만족하면서 활동할 수 있는 밴드를 만들어서 나중에 이 친구들이 행복하게 기억할 만한 밴드를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그때 얻었던 원동력으로 2학기까지 잘 마무리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꾸준하게 수그밴 후배분들이 여러 축제에 올라오고 있잖아요? 뭐 몽키스패너 같은 팀도 수그밴 출신이고, 25년 대동제 같은 경우에는 몽키스패너를 포함해서 수그밴 3팀이 올라오고 이랬으니, 사실 성민 님이 어떻게 토대를 잘 쌓았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네요.
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축제라는 게 재개된 시점이 이제 제가 기짱이 된 시점이었으니까... 물론 코로나 이전에도 다른 수그밴 선배님들이 축제에서 멋진 무대를 만들었다는 기록들은 있죠. 근데 저는 못 봤으니까 (웃음).
사실 이제 성민 님은 저에게 ‘기짱 김성민’으로도 남아있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더 큰 기억으로 남아있는 건 ‘크루즈 베이시스트 김성민’이거든요. 혹시 크루즈라는 밴드는 어떻게 모이게 된 건지 궁금해요.
사실 이 크루즈 멤버라고 하는 게, 수그밴 6기 드럼 캡틴 준수, 그리고 7기 기짱인 저, 그리고 7기 부기짱이자 당시 기타 황제였던 범순이, 그리고 범순이의 LC 친구이자 키보드였던 태별이, 그리고 보컬로는 친구 하늘이와 8기 기짱인 세준이까지, 이렇게 여섯 명이 요트라는 팀으로 21년도 대동제 1등 무대를 했었어요. 요트라는 팀도 축제를 위해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그냥 저희끼리 취미 합주를 하다가 결성된 팀이었어요. 근데 이 친구들끼리 나간 요트가 덜컥 대동제 1등을 해버린 거죠. 근데 제가 모종의 실수를 하는 바람에 당시 수그밴 친구들에게 상처가 될만한 말을 해버리고, 요트보다는 수그밴에 더 집중하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을 범순이와 제가 하게 되어서 요트 생활은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수그밴을 졸업한 뒤, 23년에 다시 축제를 나가고 싶은데, 막상 보컬이 없어서 당시 기짱이었던 세준이에게 함께 하자고 물어보고, 세준이도 수그밴 부원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에, 다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팀 이름도 세준이가 합류한 뒤로 요트에서 크루즈로 바꿨고요. 요트는 작은 배지만 우리는 더 큰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를 담아서요.
그럼, 크루즈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크루즈로서의 첫 무대는 금잔디 문화제였죠. 저희는 서로가 친하고 합주도 많이 했고 하니까 저희가 좋아하는 노래도 충분히 대중에게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금잔디 문화제에서 조금 마이너한 선곡을 가져갔어요. 근데 7등을 해버린 거예요. 저희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성적표였고, 그걸 기점으로 생각을 바꿨죠. 축제는 우리가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래에 있는 관객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해야 한다고 말이죠. 근데 저희는 모두 이렇게 해도 충분히 잘할 수 있는 팀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들. 그렇게 이제 다음 대동제랑 에스카라에서는 완전히 대중적인 픽을 가져와서 (물론 파란에게 계속 지기는 했지만) 2등을 매번 했었죠.
일반부원과 기짱으로 수그밴에서 2년 활동을 하셨고, 요트와 크루즈에서도 2년 정도 활동을 하셨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개인 팀이 많지는 않았던 때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코로나 이루 팀 밴드의 시초 중 하나로서, 동아리 밴드를 할 때와 팀 밴드를 할 때 본인이 느끼는 차이점이 있었을까요?
마음가짐 자체는 큰 차이가 없었어요. 수그밴 때는 수그밴의 대표자로서 내가 제일 열심히, 잘 해야 한다. 크루즈에서는 내가 제일 못하니까 내가 제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준비했어요.
하지만 상황적인 측면에서의 차이점은 있습니다. 수그밴으로 축제를 나가면, 참여하는 사람이 열댓 명이 넘습니다. 곡마다 세션이 바뀌고 그 사이 빈 시간을 멘트로 채운다는 느낌이었는데, 크루즈는 딱 다섯 명에서 컴팩트하게 4, 5곡을 하는 거니까 세션 교체 시간 없이, 멘트를 온전히 호응 유도나 저희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었어요. 뭐 물론, 크루즈는 친한 애들끼리 한 거라 서로가 뭘 원하고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어서 상대적으로 편했던 것도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동아리에서는 편한 것보다도 책임감이 먼저, 더 크게 다가왔고요.
지금은 밴드 생활을 안 하시잖아요? 그러면 2022, 2023년 당시에는 성대의 밴드 씬 중심에 계셨다면 지금은 약간 관찰자인 셈인데, 관찰자의 입장에서 예전 성대에서의 밴드와 지금 밴드와의 차이가 있을까요?
흠... 전체적으로 좀 젊어졌다? 저희가 22년, 23년 축제를 나갈 때는 저희가 제일 어린 팀이었어요. 신입생이 있었던 팀이 거의 저희밖에 없었다고 기억해요.
제 기억에도 OB 분들이 많았던 것 같기는 하네요.
근데 지금은, 뭐 물론 고학번 분들도 계시지만, 1, 2학년 친구 중에서도 잘하는 분들이 많고, 저학년 자체의 비중도 많이 늘어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코로나로 끊긴 세대가 없으니까 그런게 더 있겠죠. 추가로 개인 팀이 많아졌다는 것도 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봐요. 저희가 한창 요트, 크루즈로 활동을 했을 때는 대부분 동아리 내에서 팀을 나눠서 나온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나눠서 나오기보다 진짜 팀 단위의 밴드가 많아진 것 같아요. 물론 동아리 입장에서 본다면 축제 무대에 대한 파이가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발전에 있어서는 이게 긍정적인 자극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축제 무대를 나오는 동아리나 개인 팀들이 1, 2등의 축제 무대를 어떻게 하는지 보면서 스스로도 많이 참고할 거란 말이죠. 개인적으로 크루즈의 내러티브, 곡들 사이의 유기적 연결을 다른 많은 팀이 채용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뭐 물론 그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다 보면, 축제가 결국 관객이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목적이란 것을 고려한다면, 이런 식의 경쟁의 심화는 좋은 현상이지 아닐까 싶습니다.
대학에서 밴드를 하는 사람들이 무조건 겪는, 그런 시기가 있습니다. ‘아 밴드 그만 해야 하나’하는 시기가 바로 그 시기라고 생각하는데, 어쩌다가 밴드를 그만둬야겠다고 마음을 먹으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일단 동아리 밴드를 들어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은 수그밴을 졸업하면서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수그밴이 2년만 컴팩트하게 활동하고 끝나는 동아리인데, 저는 수그밴에서의 마무리가 너무 좋았거든요. 그래서 다른 동아리에 들어가면 그 추억이 희석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당시에 제가 휴학 중이었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동아리에 들어가지 않아야지 생각하기도 했어서, 굳이 새로운 밴드 동아리를 찾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피크닉 같은 경우에도 정식 부원으로는 활동을 하지 않고 동아리 측에서 사람이 부족해서 요청이 올 때만 객원으로 활동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밴드 동아리를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은 수그밴 기짱으로서의 그 기억이 너무 소중해서인 것 같아요.
밴드 자체를 멈춘 것은 아마 크루즈의 활동 중단이 제일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에스카라 하고 고하노라에서의 무대가 크루즈로 활동한 마지막 무대였던 것 같은데, 그때쯤 저희가 합주가 숙제처럼 와닿는다고 이야기를 했었어요. 우리가 처음에 합주를 한 건 이 곡 같이 합주하면서 놀면 너무 재밌을 거 같아서 시작을 한 거였는데 어느 순간 저희가 축제를 나가고 오디션을 나가는 합주를 하다 보니까 우리가 재밌게 즐기는 합주가 아니라 자꾸 어떤 결과를 생각하면서 완성도에 집착하는 합주가 되어버려서 어느 순간 그런 즐거움이 사라진 것 같았어요. 시기적으로 봤을 때도 다들 미래를 고민할 시기, 군대 갈 시기, 시험 준비할 시기가 되고 하다 보니까, 우리가 이런 상태에서 어영부영 밴드를 계속하다 보면 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다 같이 무언가를 할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쉰다고 생각하고 크루즈와 밴드 생활을 마무리했었습니다. 물론 그 뒤로도 도움이 필요한 후배분들이나 다른 동아리에 객원으로 활동을 하기는 했었지만, 제가 먼저 뭔가 하고 싶은 생각은 잘 안 드는 거 같아요. 결국 제가 먼저 뭔가를 하자고 하는 애들은 크루즈밖에 없을 거 같네요.
지금 성대에는, 축제의 파이가 줄어들었다고 느껴질 만큼 밴드의 붐이 왔잖아요? 혹시 이렇게 많은 밴드가 활동하는 걸 보면서 다시 좀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시나요?
축제 무대는... 약간 반반인 것 같아요. 그 뜨거운 열기를 다시 한번 느끼고 싶은 마음은 사실 죽을 때까지 있을 거 같아요. 너무 찬란했던 순간이었고, 잊지 못할 순간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 준비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힘든 일도 있고, 그리고 예전만큼 시간을 많이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게 됐고. 그때의 열기가 그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고, 또 그립기도 하지만, 정말 큰 사건이 생겨 강한 동기부여를 얻지 않는 이상 돌아갈 일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그밴부터 크루즈까지 정말 많은 공연을 하셨는데, 그 수많은 곡과 무대 중에서 잊을 수 없는 무대가 있으실까요?
제가 안 그래도 제가 몇 개의 무대에서 총 몇 곡을 했을까를 세어본 적이 있어요. 제가 세어보니까 총 81번의 무대를 했고, 중복되는 곡을 제외하면 68개의 곡을 했더라고요. 이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라... 고르기 쉽지 않네요.
그렇다면 어떻게 3개까지 추려볼 수 있을까요?
세 개를 골라보자면 일단 가장 최근에 했던, 수선관 그 밴드 10주년 기념 공연에서의 ‘What’s up’을 고를 수 있겠네요. 이게 역대 기짱들을 모아서 준비한 무대였거든요. 이게 너무 재밌었어요. 공연을 하면서도, 합주를 하면서도 너무 즐거웠어요. 이 곡이 앵콜 곡이었어서 이걸 숨기고,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던 순간마저도 너무 재밌었네요. 이 곡에서는 드럼을 쳤었는데, 곡 자체가 빡세서 힘을 주고 고개를 숙이고 쳐서 객석을 제대로 보지 못했음에도, 느껴지는 에너지가 다 전달되었던 무대였습니다. 나중에 영상으로 보니까 애들이 미쳐가지고 우리 공연 안 보고 지들끼리 뺑뺑 놀고 있더라고요. 그런 게 어떻게 보면 우리 수그밴이 가지고 있는 색깔이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미친 애들끼리 모여서 미친 무대를 하는 게 수그밴의 색이 아닐까를 무대를 하면서도 느꼈고, 아마 제가 밴드 무대하면서 느꼈던 가장 도파민 나오는 무대였던 거 같아서 기억에 남네요.
두 번째는 23년 대동제에서 했던 장미하관의 ‘오빠라고 불러 다오’를 고르겠습니다. 이때 저희가 처음으로 안무 비슷한 걸 했어요. 관객을 조금 더 우리 무대에 몰입시킬 수 있는 방법이 뭘까를 이때쯤 많이 고민을 했고, 우리가 즐거운 게 관객들에게 전달되어 다 같이 노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우리의 노래는 너희들의 축제를 위한 BGM일 뿐이고 너네가 재밌으면 좋겠어’라는 마음으로 했던 게 이 무대였고, 실제로 다 같이 ‘오빠!’ 소리 지르는 것도 시키고 범순이가 머리 뒤로 기타를 칠 때 막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던 것도 기억이 나네요. 그때 주점에 있던 제 다른 동아리 친구들이 영상도 찍어서 보내준 것도 기억이 나고... 그때가 어떻게 보면 크루즈 활동하면서 가장 재밌었던 무대였던 거 같아요.
마지막은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일 거 같네요. 제가 처음 했던 공연에서의 곡이었어요. 그때 당시에 수그밴 사람들에게 제 존재를 가장 크게 각인시켰던 노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우밤’은 제가 오피가 되고 첫 오피 무대에서도 했었어요. 수그밴으로서의 첫 무대와 오피로서의 첫 무대에 우밤이 있었기 때문에 이 곡과 무대가 참 기억에 남는 거 같네요.
이 질문의 연장선으로 혹시 본인에게 대학 밴드 생활을 하면서 의미가 큰 곡은 무엇일까요?
아마 라이프앤타임의 ‘호랑이’일 거 같습니다. 21년에 취소되었던 여름방학 클럽 공연에 제가 받았던 노래였는데, 그때 당시에는 너무 어려워서 못 할 것 같았어요. 근데 결국 제 수그밴 졸업 공연 때 하게 되었죠. 제가 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무대와 공연을 했지만 결국 저한테 기억에 남는 건 수그밴 일 거 같거든요. 수그밴에서의 공연들을 쭉 돌이켜 생각하면 ‘호랑이’가 가장 의미가 크고, 기억에 남는 곡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성민 님의 밴드 인생을 돌아봤는데, 어떠셨나요?
밴드 인생이라고 하니까 되게 거창하네요. 제 밴드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뭐 대학 밴드는 끝났다고 하더라도, 직장인 밴드나 친구들과의 취미 합주는 계속 있을 테니까요.
저는 음악이 가지고 있는 힘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을 해요. 저는 특정한 음악에 특정한 기억이 담기는 경험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이런 경험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계속 있을 거잖아요. 어떤 행복한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음악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어쩌다가 이야기가 이렇게 흘렀죠? 어쨌든 제 밴드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음악 좋아하는 김성민의 인생은 아마 죽을 때까지 음악과 함께 하지 않을까.
뭐 아직 30년도 채 살아보지 못한 인생이지만, 그 가운데 가장 찬란한 시간을 만들어 준 밴드라는 동반자에게 너무 고맙고, 앞으로도 음악, 밴드, 악기... 절 좀 잘 부탁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지금도 동아리나 개인 밴드에서 무대를 준비하고 계실 분들이 엄청 많으실 겁니다. 그런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건 정해져 있는 것 같네요. 당신들이 즐거워야 관객들이 즐겁습니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결과에 너무 집착하지 마시고. 내가 즐겁지 않은 무대를 하는데 그걸 보고 누가 즐거워하겠어요. 본인이 먼저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파이팅 하시고요, 여러분들을 항상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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